블루 시스터스
코코 멜러스 지음, 심연희 옮김 / 클레이하우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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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찬 믿을 구석..

어디선가..
그런 말 들어보셨나요?

대한민국에서
첫째로 태어난다는 것의 의미.
(비슷한 시리즈로 삼남매 중 둘째,
막내 등등.. 다양하게 있을 겁니다.)

이건 특정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이라는 보편적 구조 안에서
반복되는 이야기 같습니다.
(문화권에 따라 그 차이는
얼마든지 클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모든 가족이 같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안에는
'공통된 서사'가 존재합니다.

그래서 나온 말이 있죠.
K-장녀, K-장남...

어디서 들었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심리학에서도 성격 유형을 분석할 때
비슷한 구분이 쓰이곤 했던 것 같습니다.
(리플러스 인간연구소 박재연 소장님의
어느 강연에서도 본 것 같습니다..)

---

우리가 몇째로 태어났는가는,
의외로 강력한 문화적 압력으로 작용합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불과 한 세대 전까지만 해도
"살림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며
아이들에게 정규 교육 대신
노동을 강요한 일은 흔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그런 시대의 아이였지요.
(산업현장에 내몰려 일했고,
산재사고까지 겪었다고..)

저는 삼남매 중 막내입니다.
그런 제가 이 책을 읽으며
가장 깊이 이입한 인물은
첫째, 에이버리였습니다.

그녀 안에는 'K장녀'의
그림자가 있었습니다.

늘 책임을 짊어지고,
스스로 적응하는 사람 말이죠..

---

우리는 종종 '쏟아내야 한다'는
충동을 느낍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걸.. "너 혼자 감당하라"고 말하죠.

"너만 예민하게 굴지 마.
다들 그렇게 살아." 라면서..

그럴수록 저는,
더 쏟아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나의 고통은 사실
'개인적인' 것이 아닐지도 모르니까요.

그건 사회적 구조, 세대 간 유산,
그리고 우리가 속한 문화의 상처일 수 있습니다.

말하지 못한 고통은 쌓입니다.
그것이 결국 '암'이 됩니다.

'암(癌)'이라는 글자에는
'입 구(口)'가 세 개나 들어 있습니다.

할 말은 많은데,
끝내 뱉지 못하고 삼킨 입들....

그 침묵의 무게가 우리를 병들게 합니다.
그래서 저는, 위험하더라도 말하려 합니다.
아직은 글로, 언젠가는 말도 같이...

---

소설 <블루 시스터스> 역시,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런 류의
'쏟아내기' 기록입니다.

거의 모든 소설이 그렇듯,
이 작품 또한 자전적 흔적이 묻어 있습니다.
(직, 간접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작가 코코 멜러스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은 그들이기에, 나는 나다."
나의 정체성은 형제자매 곁에서 형성되었다.
때로는 그들을 죽이고 싶었지만,
동시에 그들을 위해 죽을 수도 있었다.

이 모순, 숭배와 혐오의 결합이야말로
남매 관계를 끝없이 매혹적으로 만든다.

이 소설은 단순한 가족 소설이 아닙니다.
그건 중독, 부모의 방임, 그리고...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살아남는다"
라는 메시지를 품은 이야기입니다.

---

<블루 시스터스>는 결국 회복의 서사입니다.

사람이 사람으로 인해 다치고,
또 사람으로 인해 치유되는 이야기..
문화적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맞서는 이야기..
어쩌면 그동안 마음 한 켠에 적대감을 품었던
형제 혹은 자매가 나의 가장 큰 우군임을
결국 깨닫게 되는 이야기...

저는 살면서 아주 분명한 내 편을
단 한 명이라도 남길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처한 상황은 저마다 다를테니...)
그게 꼭 가족일 필요는 없겠지만..

가족이 그런 사람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겠지요.

하지만 모든 관계가 그렇듯..
그냥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그에 걸맞는 노력이
동반되어야겠지요.

저는 오늘 또 이렇게..
이야기를 통과하며 노력을 다짐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평안함이 깃들길 바라며..

이쯤에서 줄이겠습니다.

끝!!

#블루시스터스
#코코멜러스 장편소설
#심연희 옮김

가족이 가장 든든한 우군이라는 사실은..
살아가는 동안 얼마나 큰 힘이 될까??

믿을 구석에 대한 생각..
#북스타그램 #바닿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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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닿늘소설



아래에서부터는 해당 책의 내용을
일부 발췌하여 (최소한으로) 수정 되었습니다.



나는 사남매 중 막내지만, 우리 남매는 블루 자매들과는 아주 다르다. 일단 큰언니와 오빠는 나보다 열다섯 살, 열세 살 연상이고 아버지는 같지만 어머니가 다르다. 그리고 내가(남편과 더불어) 이 책을 헌정한 언니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두 같고 나보다 두 살 밖에 많지 않다. 학교 다닐 때는 겨우 한 학년 차이다. 우리는 언제나 가까운 사이였지만, 그렇다고 언제나 좋은 사이만은 아니었다. 난 다른 가족 구성원과는 다른 형제자매에 대해서 쓸 때, 바로 이 불안하면서도 무조건적인 사랑을 포착하고 싶었다.

그건 내가 우리 남매에 대해서 깨달은 게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들은 그들이기에, 나는 나다'라는 점이다. 나의 정체성은 언니 오빠 곁에서 형성되었다. 마치 숲속 어린 나무가 다른 나무들 사이로 비치는 빛을 향해 자라나는 것과 같다. 때로는 그들을 죽이고 싶었지만, 동시에 그들을 위해서 죽을 수도 있었다. 이 얽히고설킨 모순,
이 강렬한 숭배와 혐오의 결합이야말로 내가 남매 관계를 끝없이 매혹적으로 여기는 이유다.(…)
『블루 시스터스』는 엄연한 가족 이야기다. 하지만 동시
에, 가족 안에서 우리가 많이 말하지는 않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중독이란 것이 대를 이어 어떻게 나타나는지, 슬픔이 어떻게 우리를 갈라놓는지, 또 어떻게 하나로 모으기도 하는지, 그리고 부모의 방임을 각 자매가 얼마나 다른 방식으로 경험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또한 (내가 나이기에, 어둠이 없으면 빛을 글로 옮길 수가 없기에) 형제자매 사이에서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어리석고 유치한 부분들, 고향으로 돌아가는 기쁨, 또 가족 안에 존재하는 끈적하고 지저분하면서도 아름다운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p. 7~9

_한국어판 서문에서 부분 발췌


"혹시 알아넌 가족 모임에 가본 적 있어?"
(*알아넌 모임: 알코올 중독자 가족·친구가 서로 지지하며 회복을 돕는 익명 자조 모임)
이건 잘못된 접근이었다. 엄마의 목소리가 대번에 반 옥타브나 올라갔다.
"거기 가서 자기 문제가 모두 남 탓이라며 질질 짜는 사람들 이야기나 듣고 앉아 있으라고? 가서 남편이랑 이혼하라는 소리나 들으란 거니? 아니, 고맙지만 사양하겠어!"
에이버리는 탁자 위에 손을 포개고서 이마를 얹었다. 패배감이 느껴졌다. 어쩌다 또 이렇게 됐지? 무슨 논리를

택한대도 여전히 답이 없는 상황으로 되돌아오기만 했다. 이게 소송 사건이었다면, 오래전에 포기했을 텐데. 지금도, 앞으로도 영원히, 난 엄마를 바꿀 수가 없을 거야. 에이버리가 지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런 게 아니야."
"그 모임이 뭔지 설명하려 들지 마. 이미 가본 적 있어."
"에이버리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엄마가 갔다고? 언제?"
"에이버리, 그 사람들은 나를 평가하더라. 그 여자들이 날 아주 비판했다고. 나한테 자꾸 돌아오라고 하잖아. 아주 거룩한 척은 다 하는 년들이."

에이버리는 하마터면 웃을 뻔했다.
"그게 거기 슬로건이라서 그래. 새로 온 사람들한테는 다 그렇게 말할걸."
"난 무슨 문제아 취급 받는 거 싫다. 다 큰 애들을 넷이나 둔 성인이라고. 뭘 계속하니 마니 이런 말 안 듣고 싶어."
"이젠 셋이잖아."
"뭐?"
"자녀는 이제 셋이라고."
"너희 직업군에서는 그런 꼼꼼한 자세가 유용할지 몰라도, 일반적인 대화를 나눌 때 들으니 무척 짜증스럽구나, 에이버리."

에이버리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데 왜 못했어?"
"뭘 못해?"
"왜 돌아가지 못했느냐고."
"내가 말했잖아…."
"아니, 엄마를 위해서 말고, 우리를 위해서라도 돌아갔어야지. 아빠랑 엄마가 안 가르쳐 주면, 괜찮게 사는 법을 누가 가르쳐 주는데? 우리가 누굴 보고 배우는데?"
엄마는 놀라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너를 좀 봐. 넌 지금 괜찮게 살잖아. 괜찮은 것 이상이지!

좋은 직업이 있잖아. 듣자 하니 으리으리한 집에 산다던데. 예쁜 아내도 두고, 보니는 세계 챔피언이야. 말해 뭐해? 러키는 온 세상 광고판에 다 사진이 붙은 애야. 그리고 니키는 애들한테 얼마나 사랑받았는데…."
엄마는 잠시 멈췄다가 말을 이었다.
"우리가 그토록 나쁜 부모였다면, 너희가 이렇게 잘 됐을 리가 있어?"
에이버리는 고개를 저었다.
"엄마가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돼."
"뭐? 내가 될 어쨌다고?"
우리가 이룬 성취를 가져다 본인이 능력 있는 부모였다는

증거로 디밀지 말라고. 그건 우리가 이룬 거야. 엄마 아빠가 한 게 아니야."
"아니, 얘! 지금 너희가 이룬 거라고 말하는 거잖아!"
"그리고 내 어린 시절이 어땠는지 말하게 하지 마. 어떻게 살았는지는 내가 잘 알아."
"또 그 소리네. 넌 맞고 자랐니? 굶고 자랐니? 정원 창고에서 살았니?"
"우리 집엔 정원이 없었어."
"말꼬리 잡지 마. 무슨 뜻인지 알잖아. 너희보다 못한 환경에서 큰 애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니? 너희는 나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자랐어! 그런데 이제 와서 우리가

너희를 실망시켰다고 말하는 거니? 미안하지만 말이다. 너는 부모 탓을 할 나이는 지났어. 어린애 우대 카드는 효력이 다했다고."
p. 448~450


그녀는 보니와 러키 쪽으로 몸을 돌리고 말했다.
"너희 둘 다 내 말 들어봐. 우리한텐 니키가 왜 그랬는지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 우리가 좀 더 뭔가를 했으면 좋았을 거라며 자책하는 것도 이해하려는 방법 중 하나겠고. 하지만 우리는 아무도 니키에게 일어난 일을 바꿀 수가 없었어."
에이버리는 엄마가 했던 말을 꺼내어 말했다.
"우리는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아니야."
"하지만 우린 어떻게 이걸 견디며 살아?"
러키가 나직하게 물었다. 지난 1년간 세 사람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스스로 던져왔던 질문이었다. 이 슬픔을 어떻게

지고 살아가나. 니키가 없는 인생을 어떻게 사랑하며 살아가나. 에이버리는 한숨을 쉬었다.
"아빠가 우리한테 말했던 게 답이 아닐까. 장례식에서 했던 말." 러키가 고개를 들고서 중얼거렸다.
"『티파니에서 아침을』 말이지. '훌훌 가거라.' 하지만 어떻게 훌훌 가?"
"넌 벌써 훌훌 가고 있잖아. 술 끊고, 스스로를 돌보고. 그게 훌훌 가는 거지."
에이버리의 말에 보니도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 말이 맞아."
"그럼 언니들은? 어떻게 훌훌 가고 있어?"

에이버리는 보니를 바라보았고, 보니가 입을 열었다.
"음, 나 놀리지 말고 들어…. 그, 난 가끔 하느님이랑 대화를 해."
"하느님?"
에이버리가 되물었다. 그녀에게 하느님은 위안을 주는 존재가 전혀 아니었기에, 보니의 말은 맥도날드 캐릭터와 대화를 한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들렸다. 보니는 재빨리 부연 설명을 했다.
"예수님한테 말한다는 게 아니야. 다른 종류의 하느님이야. 내가 만든 건데,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모르고, 어떻게 지칭해야 하는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나랑

이야기할 수 있는 존재야. 그리고 하느님은 우리가 니키를 다시 만날 때까지 그 애를 돌봐주신다고 생각해."
"정말 하느님이 니키를 돌봐주신다고 생각해?"
러키는 희망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보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어"
"좋다."
러키는 나직하게 대답했다.
"보니, 나도 그렇게 믿고 싶지만… 솔직히 내가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어."
에이버리의 말에 보니가 물었다.

"내가 믿음이 있다는 것까지는 믿어줄 수 있어? 그러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에이버리는 보니의 말을 곰곰이 생각했다. 보니에게도 도움이 되는 게 있다고 생각하니, 자신도 위안이 되는 듯했다. 그 정도는 에이버리도 진실이라 믿을 수 있었다.
"그럴지도. 그럴 수 있을 것 같아."
p. 480~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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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시스터스
코코 멜러스 지음, 심연희 옮김 / 클레이하우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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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가장 오래된 상처이자 마지막 믿을 구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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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최대한 쉽게 설명해 드립니다 누구나 교양 시리즈 6
페르난도 사바테르 지음, 유혜경 옮김 / 이화북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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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생각하는 힘, 철학에서 시작하다

불과 3~4년 전만 해도 제가...
철학을 좋아하게 될 거라곤 생각 못했습니다.

주로 자기계발서나 대중교양서를
읽고 리뷰하던 터라, 철학은 제게
그저 먼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철학이..
조금씩 좋아졌습니다.

이제는 적극적으로
철학을 찾아 읽게 되었으니,
정말 사람 일은 모를 일입니다.

---

돌이켜보면, 모든 배움에는
공통된 흐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시작은 쉽고, 재밌어야 한다는 것.

처음부터 어려운 일을 계획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중도에 포기하게 됩니다.

하지만 '재밌어서 하는 일'이라면
조금 어렵더라도 결국 방법을 찾아내죠.
(대표적으로 게임이 그렇습니다.
규칙이 복잡해도 결국 다 익혀내잖아요.ㅎㅎ)

배움의 본질은 사실 어릴 적
성장 과정과 닮아 있습니다.

뒤집고, 잡고, 걷고, 옹알이하던
그 시절처럼 조금씩 익숙해지며
재밌어지는 과정이 있었을 겁니다.

문제는, 성인이 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그 '재미'가 점점 사라진다는 데 있습니다.

학교에 다니며 배우던 것들이
의무로 바뀌는 순간부터,
배움은 짐이 됩니다.

아이들이 공부를 계속 이어가는 이유는
호기심보다 '해야만 하니까'인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공부를 잘해야 혼나지 않고,
공부를 끝내야 놀 수 있기 때문이죠.

---

부모가 아이를 가르치는 이유는
생각해보면 매우 단순합니다.
결국 '잘 되게 하기 위해서'죠.

하지만 정작
'어떻게 가르치는 게 잘 가르치는 건가'
이에 대해선 깊이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예외는 아닙니다.ㅜㅜ....)

아이의 미래를 향한 걱정이
너무 크다 보니, '지금 이 순간'의
배움이 어떻게 이뤄지는지에 대해
돌아보지 못하게 되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이 지점이 늘 아쉽습니다.
"왜?"라는 질문이 사라지는 순간,
배움은 방향을 잃기 때문입니다.

---

철학의 힘은 바로 그 "왜"에 있습니다.
철학은 정답을 주기보다는,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알려줍니다.

예전에 제가 읽었던 책,
<나는 내가 좋은 엄마인 줄 알았습니다>에
이런 구절이 있었습니다.

"다리가 불편한 사람에게 매번 다리가 되어주는 것보다,
휠체어를 끄는 법을 가르쳐주는 게 더 효과적이다."
(워딩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철학은 바로 그...
'끄는 법'을 알려주는 학문입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게 만드는 힘.

이게 바로 철학이 가진
가장 큰 선물이라 생각합니다.

---

철학이라고 해서
거창하게 시작할 필요는 없습니다.

등산으로 비유하자면,
먼저 동네 공원부터
가볍게 걸어보는 겁니다.

조금 익숙해지면 뒷산을 오르고,
그다음 명산을 찾아가면 됩니다.

시작은 늘 가벼워야 오래 갑니다.

"해야 하나?" 대신 "어떻게 해볼까?"라고
질문을 바꾸면, 생각의 문이 열립니다.

돌이켜보면, 자기계발서 역시
나름의 철학을 품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고민하는 문제들
대부분은 이미 누군가 겪고,
사유했던 문제들이니까요.

우리는 그들의 사유를
'빌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어느 시대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정보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정보가 너무 많아 혼란스러울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건 '안목'입니다.
그 안목을 길러주는 것이 바로 철학입니다.

---

저는 요즘 '결과'보다는
'과정'에 충실하려고 합니다.

결과는 통제할 수 없지만,
과정은 내가 선택할 수 있으니까요.

과정에 충실한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세상은 더 안전하고, 더 예측 가능해
진다고 믿습니다.

철학은 그 과정을 함께 걸어가는
좋은 동반자입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그 여정의 첫걸음을 내딛게
되길 바랍니다.

바램이 하나 있다면..
지금 소개하는 이 책이..
그 길에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

결론을 짧게 요약하자면..
철학은 특별한 사람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왜?'를 묻는 순간,
우리 모두는 이미 철학자가 됩니다.

그리고 그 질문이,
생각하는 힘의 시작입니다.

일부 내용은 피드 내용에,
일부 내용은 댓글로 공유드리며..

이쯤에서 줄이겠습니다.

끝!!

#철학최대한쉽게설명해드립니다
#페르난도사바테르 지음
#유혜경 옮김

#우주서평단
#이화북스

우리 모두는..
저마다 하나의 우주를 품고 있으며,
또한 우리 모두는 철학자이기도 합니다.
#북스타그램 #바닿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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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닿늘철학

★ 북스타그램_우주 @woojoos_story 모집,
@ehwabooks 도서 지원으로
#우주클럽_철학방 단톡방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아래에서부터는 해당 책의 내용을
일부 발췌하여 (최소한으로) 수정 되었습니다.



소크라테스
그는 자신을 변호하면서 훌륭한 연설을 남겼다. 형을 언도받지 않기 위한 변명이 아니라 아테네 시민들에게 그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이 어째서 그런 행동을 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았다. 후회는커녕 질문하고, 논쟁을 벌이는 자신의 영원한 과업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소크라테스는 이 모든 것을 그 유명한 한 문장으로 요약했다.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그에게 있어 인생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 "삶을 어떻게 다루 어야 하는가"를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묻는 일이었다. p. 41


플라톤
가장 정의로운 사회(공공선을 가장 잘 실현할 수 있는 사회)란 이성적 능력이 뛰어난 자가 통치하고, 용감한 자가 도시를 수호하며, 상업적 욕구가 강한 자가 경제 활동을 맡는 사회다. 바로 이것이 플라톤이 그리는 이상적인 국가의 모습이다. 그리고 이 국가에서는 문학이나 음악조차도 공동체의 선을 위해 복무해야 한다. p. 57


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지식에 대한 열망은 우리가 세상을 접하며 느끼는 '놀라움'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놀라움은 곧 '사물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진다. 그에게 있어 가장 큰 경이로움의 대상은 인간사보다는 자연이었다. 그는 의학, 동물학, 식물학, 천문학, 물리학 등 수많은 분야를 탐구했다. 그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물질세계를 단순히 인간 삶의 배경 무대나, 어떤 더 높은 세계의 퇴색된 그림자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그 안에 숨겨진 신비로움에 깊이 매료되었고 그것들의 본질과 작동 방식을 반드시 밝혀내고자 했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과학자'의 개념에 가까운 그는 탁월한 관찰자였다. 예를 들어 그는 고래가 물고기가 아니라 포유류라고 주장했는데, 이 사실이 유럽 생물학계에서 진실로 받아들여
지기까지는 무려 23세기나 걸렸다. p. 59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소크라테스의 위대한 제자들로서 역사상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철학자들이다. 플라톤은 가장 고차원적인 것, 정신적인 것, 영원한 이데아를 지향한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의 주변의 자연, 그것도 가장 소박하고 물질적인 것까지. 살고 일어나고 작용하는 모든 것에 대한 관찰에 집중한다. 예컨대 나타나고 사라지지만 지속하는 동안에는 실재하는 모든 것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두 철학자 이후의 철학자들은 플라톤 학파이거나 아리스토텔레스 학파라고 말한다. 둘의 사상을 절충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엮어낸 철학자들 또한 많다. p. 66


아우구스티누스
그는 인간에 대해 대단히 비관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에 따르면 최초로 도덕적인 범죄를 저질렀던 아담과 이브로부터 시작해서 그들의 아들과 손자와 종손자들도 같은 죄를 저질렀으며 그때부터 온 인류는 단지 '정죄 받은 자들의 무리'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다만 그리스도의 속죄와 하느님의 은총에 의해서만 영원한 징벌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죄 없는 사람만이 구원에 이를 수 있다면, 우리 중 아무도 지옥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우구스티누스는 왜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수많은 인간 세대를 창조하시면서도 결국 그들을 지옥 불 속으로 보내는지를 결코 설명하지 않았다. p. 107~108


윌리엄 오컴
우리의 지식을 늘리고자 한다면 우리는 경험적으로 입증된 것들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는 과학적 사유 영역에서는 아무리 존경받는 것이라 하더라도 교리나 도그마는 통하지 않으며, 오직 경험적 자료에 기반한 검증만이 유효하다고 주장하여 과학에서의 사상의 자유를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더불어 그는 교회의 영적 권력과 국가의 세속 권력의 분리를 주장했다. 국가로부터 교회를 해방시키고 동시에 교회로부터 국가를 해방시키고자 했다. 그와 함께 비로소 새로운 철학적 세계, 나아가 새로운 정치적 세계가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p. 119


마키아벨리
마키아벨리에 따르면 군주는 무엇보다 훌륭한 정치가여야 하지만(유능하고 단호하며 나라를 구석구석 알고 있어야 하고 실현 가능한 계획을 가져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훌륭한 사람'일 필요는 없다. 일반적인 도덕은 사람들 간의 일상적인 관계에서는 좋은 것이지만 사회 전체를 이끌고 음모와 반란을 일으키려는 적과 싸워야 하는 군주에게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기독교는 각 개인의 영혼을 구원하는 데에는 훌륭할지 모르지만, 전체 국가를 구원하려는 상황에서는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물론 마키아벨리가 통치자에게 거짓말을 하거나 상대를 속이거나 반대파를 과감하게 제거하라고 직접적으로 권고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수단들이 정당한 이유로 필요하다면, 과도하게 양심의 가책을 느껴서는 안 된다고 분명히 말한다. 만약 시민들이 군주를 사랑한다면 서로를 위해 그것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 하지만 더 안전한 방법은 시민들이 군주를 두려워하게 만드는 것이다. p. 140


프랜시스 베이컨
베이컨은 사람들이 무지 속에 머무르는 이유는 '우상(idol)'이라 부르는 것들, 즉 널리 퍼져 있는 잘못된 의견들을 맹목적으로 숭배하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는 여러 종류의 우상을 지적한다. 인류 전체가 공유하는 '종족의 우상'이 있고. 특정 개인과 문화가 공유하는 우상도 있다.(…)
우리가 진정한 지식을 얻고 싶다면 모든 사회적, 개인적 우상에서 벗어나 편견 없이 자연을 연구해야 한다. 물론 프랜시스 베이컨의 저작들에서 이러한 생각들이 완전히 체계화된 것은 아니며, 그 자신도 여전히 많은 편견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의 글에서는 이미 근대 과학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우주에 대한 무관심한 관조를 넘어서 인간의 목적과 야망을 위한 지식의 활용이라는 결연한 의지가 느껴진다. p. 145


파스칼
파스칼은 지식이나 과학 그 자체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의 주된 관심은 인간이라는 존재 그 자체였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그는 말한다. 인간은 두 가지 무한 사이에 놓인 존재다. 하나는 우주의 무한한 거대한, 또 하나는 분자와 원자의 무한한 미세함이다. 그러나 인간은 유한한 지성과 경험만을 가졌기에 이 두 극단의 세계를 완전히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존엄한 이유는 사고하는 능력 때문이다. 우리는 우주의 가벼운 바람에도 쓰러지는 약한 같대지만, 생각하는 갈대다. 우리는 비참 한 존재이지만 적어도 우리가 비참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나무도, 허리케인도, 별도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인간은 안다. 무한한 우주는 손쉽게 우리를 파괴할 수 있지만 지적 자각, 즉 자기 인식의 능력만큼은 빼앗을 수 없다. p. 171


몽테스키외
몽테스키외의 가장 중요한 저작은 『법의 정신』이다. 이 책에서 그는 인간 사회를 지배하는 법의 원리를 연구한다. 물론 자연의 법칙(각 나라의 기후. 지형, 농업 등)이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주지만 그렇다고 인간의 행동을 결정짓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자연적 제약을 받으면서도 자유롭고 저항적인 존재다. 각국의 법은 신이나 자연의 명령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그리고 각각의 정치 체제는 시민들에게 요구하는 성향이 다르다. 전제적 독재 체제는 '공포'를, 귀족적 편견 위에 세워진 군주제는 '명예'를, 공화정은 '시민적 덕성'을 필요로 한다. 물론 각 체계는 저마다 장단점이 있지만, 몽테스키외는 입법, 행정, 사법의 삼권분립이 보장된 정치 체제를 공적인 자유를 보장하는 제도로 보았다. p. 192


데이비드 흄
흄은 철저한 회의주의자였다. 다시 말해, 그는 우리가 객관적으로 확실한 어떤 것도 알 수 없다고 의심한다. 왜나하면 우리의 모든 인상은 주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회의주의 자체도 의심한다. 그는 우리가 철학 하는 버릇을 잠시 멈추기만 해도 곧바로 다시 외부 세계에 어떤 속성을 가진 사물들이 존재한다고 믿게 되고, 우리에게는 영혼이 있으며, 인과관계란 확고한 것이라고 여길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신은? 종교는? 흄에 따르면 종교의 기원은 다신교다. 다시 말해, 인간은 자연현상 가운데 자신에게 이익이 되거나 해를 끼치는 것들을 설명하기 위해 유리하거나 불리한 성향을 지닌 온갖 환상적 존재들을 만들어낸다. 우리의 삶은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고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행운과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마법 같은 대상을 상상해낸다. p. 204


칸트
칸트는 쾨니히스베르크(오늘날 러시아 영토에서 칼리넌그라드라 불리는 도시)에서 태어나 평생 그곳을 떠난 적 없이 살다가 그곳에서 생을 마쳤다. 세상을 더 잘 알기 위해선 반드시 여행을 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칸트는 반례를 제시하는 셈이다. 그는 단 한 번도 고향을 벗어난 적이 없었지만, 당대에서 가장 박식하고 지혜로운 인물일 뿐 아니라, 서양 철학사 전체를 통틀어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위대한 사상가가 되었다. 그의 삶에는 특별한 사건이나 파란만장한 일화가 거의 없었다. (…)
칸트는 위대한 전환과 혁신의 순간들을 온전히 책상 앞에서, 고요한 사색과 집필을 통해 이루어냈다. 그는 철학 교수로 생계를 유지하며 오늘날 학계의 주류를 이루는 '사상가이자 교수'라는 전형을 처음으로 연 인물이기도 하다. p. 206


헤겔
가장 고차원적이고 합리적인 철학은 역사보다 앞서 예언처럼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철학은 역사의 뒤를 따라 나타나 이미 일어난 사건들을 사유 속에서 개념적으로 파악하고 정리한다. 헤겔의 비유에 따르면, 철학의 상징인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해가 저물고 하루가 끝난 뒤 황혼 속에서야 날기 시작한다. p. 225~226


마르크스
부르주아 자본가들이 과거에 봉건제와 귀족제를 무너뜨리는 데 역사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존재였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미래 사회의 실현, 즉 계급과 사회적 위계가 존재하지 않으며 노동자들이 해방되고 모든 사람이 공동의 재산을 평등하게 소유하는 사회 (다시 말해 '공산주의'라 불리는 사회)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어버렸다.
따라서 사회혁명은 도덕적 요구나 윤리적 명령이 아니라, 역사적 필연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직 자신이 착취당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이들을 비관과 교화를 통해 반란에 나서게 함으로써 앞당겨져야 한다. p. 229~230


쇼펜하우어
쇼펜하우어는 우리가 현실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존재하는 것의 단순한 표상에 불과하다고 본다. 이는 곧 칸트가 '(사물 자체가 아닌) 현상'이라 부른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 몸에 영향을 주는 모든 외부 사물들을 말한다. 하지만 그 표상은 우리의 이해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본능적 직관에서 비롯된다. 그 이후에야 비로소 이성이나 추상적 개념들이 작동한다. 결국 우리가 보고 아는 세계란 힌두교에서 말하는 '마야의 베일'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욕망과 생의 갈망이 만들어낸 일종의 환상으로, 우리가 관심 없는 것은 감추고 원하는 것은 아름답게 꾸며서 보여준다. p. 234~235


니체
쇼펜하우어는 맹목적인 의지를 현실의 근본으로 보았다. 그러나 니체는 인간에게 '힘에의 의지'라는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이는 곧 창조와 환호를 통해 자기를 초월하려는 능력이자, 더 나은 것을 만들기 위해 때로는 과감히 파괴하는 의지다. 이 힘에의 의지는 위대한 예술가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는 이성적이고 고전적 조화를 사랑하는 아폴론이 아니라 모든 질서를 뒤흔들고 극한의 정신적 위협까지 감수하는 열정과 광란의 신, 디오니소스의 상징 아래에 자신을 둔다. p. 252


프로이트
프로이트에 따르면, 인간의 정신(psique, 그리스어로 영혼 또는 문자 그대로는 '나비'라는 뜻)에는 의식적인 부분과 무의식적인 부분이 있으며 무의식은 의식보다 휠씬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마치 빙산의 대부분이 수면 아래 잠겨 있는 것처럼 말이다. 무의식은 성적 쾌락을 추구하는 본능적 욕망들과, 고통스럽거나 수치스러운 기억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우리는 그것들을 잊어버린 척하며 무의식 속에 묻어두려 한다. 이 무의식의 영역을 프로이트는 '이드(원초아)'라고 불렀고, 여기에 대응하는 것이 의식적인 자아인 '에고(자아)'이다. 에고는 단순한 즉각적 쾌락뿐 아니라 현실과 안정, 안전까지 고려하며 삶을 조직하려 한다. 그러나 이드의 본능적 충동과 에고의 현실 원칙은 자주 충돌하고, 이 갈등이 바로 신경증이나 심리적 문제의 원인이 된다. 여기에 '슈퍼에고(초자아)'라는 세 번째 요소가 개입하는데, 이는 우리가 어린 시절 내면화한 도덕적 · 사회적 관념의 목소리이며 억압과 죄책감을 형성하는 원천이다.
정신분석은 이런 무의식을 언어를 통해 의식으로 불러내어 억눌린 갈등을 풀어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다시 말해, 말의 힘으로 무의식 속 망각된 것을 의식에 끌어올려 우리를 옥죄는 내면의 갈등을 해소하려는 것이다. p. 276


알베르 카뮈
그는 삶에 의미와 조화를 찾으려는 인간의 열망이 불투명하고 침묵하는 세계와 결국에는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종말과 부딪히는 잔혹한 현실을 지적한다. 그 충돌이 낳는 것이 바로 삶의 부조리이며 이는 어떤 것으로도 감출 수도, 없앨 수도 없다.
부조리한 삶 앞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자살을 통해 모든 것을 끝내는 것, 종교적 신앙에 몸을 맡기는 것 혹은 부분적인 이해에 만족하며 전체를 포기하는 이성적 태도다. 하지만 카뮈는 이런 모든 '도피'를 거부한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개인적인 모험이나 타인과의 연대를 통해 스스로 그 의미를 만들어 가는 일이다. p. 290~292


버트런드 러셀
러셀은 우아하고 명료하며 정교한 문체로 철학을 대중에게 알리는 글을 써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소설을 쓴 적은 없지만, 수상 이후 볼테르풍의 풍자 단편을 몇 편 집필하기도 했다. 문학적으로 가장 주목할 만한 저작은 그의 『자서전』으로, 거의 한 세기에 걸친 지적 · 정치적 여정을 담았다. 그는 이 책 첫머리에서 이렇게 썼다.
"세 가지의 단순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열정이 내 삶을 이끌어 왔다. 지식을 향한 추구, 사랑에 대한 열망, 그리고 인간의 고통에 대한 연민" p. 295


한나 아렌트
전통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철학은 관조적 삶을 활동적 삶보다 우위에 두어왔다. 그러나 아렌트는 사회적으로 더 중요한 것은 후자라고 보았다. (…)
그녀의 대표작 『전제주의의 기원』은 반유대주의와 제국주의뿐 아니라 20세기 유럽에 등장한 전체주의 권력의 형태를 정밀하게 분석한 선구적인 저작이다. 아렌트는 볼셰비키와 스탈린주의, 그리고 뒤이은 나치즘에서 대중이 정치에 참여할 권리와 의무를 스스로 포기하는 현상을 전체주의의 토대로 보았다. p. 304


마리아 잠브라노
마리아 잠브라노가 평생 천착한 주제는 시와 철학이라는 서로 다른 지적 전통을 이어주는 '시적 이성'을 세우는 일이었다. 철학은 차이를 단순화하고 제거함으로써 존재의 통일을 추구하는 반면, 시는 있는 그대로의 다양성을 존중하며 사물 하나하나를 어떤 제약이나 추상화 없이 받아들인다. 잠브라노는 이 두 사유의 탐구 충동이 지닌 장점을 모두 살리고자 했다. 그녀는 오르테가 사상의 몇 가지 주제를 자기 나름의 방향으로 전개했다. 예컨대, 인간이 삶을 세우는 토대인 '신념' 아래에는 그보다 더 깊고 중요한 층위가 있다고 보았는데 그것이 바로 '희망'이다. 그리고 그 희망의 어두운 이면에는 언제나 '절망'이 뒤따른다. 철학은 단순히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아니라 끝내 완전히 채워질 수 없는 이 희망 어린 갈망을 향하는 '영혼의 지식'이라고 보았다. p. 306~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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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최대한 쉽게 설명해 드립니다 누구나 교양 시리즈 6
페르난도 사바테르 지음, 유혜경 옮김 / 이화북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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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낯선 당신에게 권하는 단 한 권의 입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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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 이후의 질서 - 트럼프 경제 패권의 미래
케네스 로고프 지음, 노승영 옮김 / 윌북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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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찬 달러 이후의 질서..

(비록 아주 가끔이긴 했지만..)
경제학 관련 책을 리뷰할 때..
저는 요런 문장으로 글을
시작하곤 했습니다.

"경제학에 오랫동안 관심이 없었습니다."

경제 이야기는 여전히 어렵고,
때로는 멀게 느껴집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손이 갑니다.
(먹고 사는 문제를 외면할 수 없기에..)

복잡하고 낯설지만, 세상이 돌아가는
큰 흐름을 이해하려면 결국 '경제'를
피해갈 수 없다는 걸 조금씩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그리고 꾸준히 공부하려 합니다.

제가 알게 된 걸 조금 더 쉽게 풀어서
누군가에게 설명할 수 있을 만큼은요.

예전엔 한 줄 한 줄이
장벽처럼 느껴지기도 했는데,
이제는 챗GPT나 제미나이 같은
도구 덕분에 접근이 훨씬 쉬워졌습니다.

물론 깊이 면에서는 부족할지 모르지만,
이해의 문턱이 낮아진 건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경제가
여전히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너무나 많은 사건과 변수가
얽혀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정답이 명확한 것도 아니고,
단지 조금 더 '선명한 일'과
'덜 선명한 일'이 있을 뿐이니까요.

그래도 포기하기엔 아쉽습니다.
그래서 저는 경제를 이해하기 위한
'굵직한 사건 중심의 독서'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대넓얕 시리즈>, <변화하는 세계질서>,
<빅 사이클>, <질서 없음>, <좋은 불평등>
등의.. 책이 당장 떠오릅니다.

이번에 읽은 <달러 이후의 질서>도
같은 계보에 놓인 책이라고 느꼈습니다.

이 책은 제목만 보면 다소 거창하게 느껴지지만,
막상 읽어보면 현재의 경제 위기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그 속에서 '미래의 질서'를
상상해보게 만들어 줍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달러의 지위가 단순히 '경제력'만으로
유지된 것이 아니라 '역사의 우연'과
'정치적 행운'의 결과이기도 하다는
지적이었습니다.

그 말은 곧, 지금의 질서도..
언젠가 바뀔 수 있다는 뜻이겠죠.

경제학을 잘 몰라도,
이 책은 충분히 흥미롭습니다.

세계 질서의 흐름을 한눈에 조망하고 싶은 분,
혹은 뉴스에 나오는 "달러 강세·약세"의 의미를
조금 더 깊이 이해하고 싶은 분이라면 분명..
읽을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말하진 못하겠지만,

읽는 내내..
"그래서 지금의 세계가 이렇게 움직이는구나"
하는 감각을 조금은 얻을 수 있었습니다.

아마 시간이 지나도 다시
펼쳐볼 책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 더
단단해지길 기대해 봅니다.

책의 일부 내용을 공유드리며..

이쯤에서 줄이겠습니다.

끝!!

#달러이후의질서
#케네스로고프 지음
#노승영 옮김

#윌북

달러 이후의 질서..
원이면 안 되겠니..?? 😂
#북스타그램 #바닿늘

비슷한 주제의 글은..

#바닿늘경제학
#바닿늘빅히스토리



아래에서부터는 해당 책의 내용을
일부 발췌하여 (최소한으로) 수정 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세계 경제 패권은 압도적이었다. 1950년 미국 경제는 세계 GDP의 무려 36퍼센트를 차지했다. 1944년 뉴햄프셔주 브레턴우즈에서 전후 고정환율제가 체결되면서 미국 달러는 전 세계 통화의 중심에 놓였을 뿐 아니라 남다른 특권을 의도적으로 부여받았다. 나머지 모든 참여국은 자국의 환율을 달러에 대해 고정해야 했으며 이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 필요한 달러(소소한 변동에 대비한 충당금)를 보유하는 것은 각국의 책임이었다. 이에 반해 미국은 금리와 물가 상승률 정책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었다. 단 어느 나라 정부가 요구하든 달러를 금으로 바꿔줄 수 있어야 했다. p. 29

일본이 미국의 경제 라이벌로서 뜨고 지는 과정, 그와 더불어 달러와 비교할 때 엔화의 상대적 중요성은 현대 국제금융사에서 가장 뜨거운 논쟁거리다. 일본은 왜 몰락했을까? 1980년대 중반 미국의 강요에 못 이겨 엔화를 급격히 절상했기 때문이라고 많은 사람이 생각한다. 그러는 바람에 수출엔진이 망가졌다는 것이다. 중국 지도자들은 오래전부터 이 견해를 받아들여 자신들은 결코 같은 요구에 굴복 하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일본의 사례에서 보듯 미국은 다른 경제가 잘나가는 것을 어느 정도 내버려두기는 하지만 너무 잘나가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다. 많은 나라가 이 견해에 동조한다. 하지만 나는 오래 전부터 이 해석이 너무 부풀려졌다고 생각했다.
엔화 절상은 대체로 1988년 말 즈음에 일어났지만 일본의 경제 붕괴는 1992년에야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 일본 시장은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만큼 확신하지 못하겠다. 물론 호황이 찾아왔을 때 일본이 금융시장을 더 효과적으로 규제했다면 경제가 결코 그렇게 과열되고서 지독히 정체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일본이 엔화 강세를 자국의 정치·문화·제도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미국의 압력 때문이다. p. 57~58

유수의 미국인 경제학자 중에서 적어도 두어 명(친유럽파라고 부르겠다)은 틀림없이 유로화가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유럽 전역의 학회에서 환영받은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하지만 유로화 운동의 주된 지적 동력은 유럽의 경제학자와 기술관료들에게서 왔다. 그들은 유로화 기획이 성공하리라는 확신을 신념에 기반하여 공유했다. 그들은 언젠가 유럽연합 경제가 미국을 앞지르고 유로가 적어도 달러의 맞수가 될 거라 확신했다. "하나의 시장, 하나의 통화"라는 그들의 구호는 유럽위원회 경제학자들이 1990년 발표한 인상적인 논문의 제목에서 나왔다. 이 논문은 모든 사항을 고려했을 때 이익이 클 수 있다는 논증을 제시했다. p. 80

유럽 단일 통화라는 발상은 1957년 로마 조약에서 등장했다. 조약의 목표는 무역 통합이었으며 최초 참가국은 독일, 프랑스, 벨기에, 이탈리아, 룩셈부르크, 네덜란드였다. 프랑스가 보기에 달러에 맞서는 유럽 통화를 만든다는 발상은 거시경제 관점에서뿐 아니라 유럽(이라고 쓰고 프랑스라고 읽는다)의 권력을 보호하는 방안으로서도 엄청나게 매력적이었다. 금리를 낮추고 시장 유동성을 늘리는 부가 급부까지 얻는다면 금상첨화였다. 무엇보다 유로는 20세기에 두 번의 처참한 세계대전을 치른 나라들 사이에 불가역적 유대를 맺는 방법이었다. p. 81

오늘날 유로는 국제 교역과 금융에서 확실히 달러의 가장 중요한 대안이다. 유럽연합 27개국에서 오가는 교역의 절대다수는 유로로 거래되며 유럽연합과 브렉시트 이후 영국의 교역도 대부분 그렇다. 유로는 중앙은행 비축분에서 단연 두 번째로 중요한 통화로, 58퍼센트인 달러에 이어 20퍼센트를 차지한다(3위 엔화는 6퍼센트, 4위 영국 파운드는 5퍼센트다. 중앙은행 비축분에서 중국 위안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2퍼센트에 불과하다). 비슷한 통계가 여러 지표에서 나타난다. 하지만 유로는 비록 성공을 거두긴 했어도 여전히 대체로 지역 통화다. p. 84

무엇보다 한 나라가 지배적 통화 발행국이 되거나 그 지위를 유지하고 싶다면 대규모 부채 위기를 겪어서는 곤란하다. 1931년 영국 정부는 미국 정부에 채무 불이행을 선언했는데, 이것이 파운드에서 달러로 바통이 넘어가는 중요한 계기였음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유럽 동쪽 국경에서 대규모 전쟁이 벌어지는 것도 불리한 조건이긴 마찬가지다. p. 102

위안-달러 환율이 더 급격히 요동치기 시작하면 사태가 (하룻밤 새는 아니더라도) 급변할 수 있다.
중국이 온전한 변동환율제를 채택하면 이따금 일어나게 될 급격한 변동이 (이미 난항을 겪는) 미중 관계에 마찰을 일으키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 마찰이 어떻게 해소될지는 미지수다. 이론상 IMF는 개입할 수 있어야 마땅하다. 애초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IMF가 설립된 배경에는 환율 분쟁을 해소하려는 취지가 컸다. 하지만 IMF가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 기대하지는 말라. IMF의 친척 UN에 대한 오래된 (아주 공정하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재담(*재밌는 말)이 떠오른다. "작은 나라와 작은 나라 사이에 분쟁이 벌어지면 UN이 개입하며 분쟁이 사라진다. 작은 나라와 큰 나라 사이에 분쟁이 벌어지면 UN이 개입하며 작은 나라가 사라진다. 큰 나라와 큰 나라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면 UN이 사라진다." p. 166~167

2000년대 초 나를 비롯한 많은 경제학자는 아시아가 달러 보유고를 꾸준히 늘리는 바람에 세계경제의 골치 아픈 불균형이 악화한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세계경제'란 미국경상수지 적자를 에둘러 표현한 단어다. 이 적자는 당시 전 세계 잉여의 대부분을 흡수했는데, 그 중 상당 부분이 아시아와 중동에서 발생한 잉여였다. 2007년에 시작된 미국 부동산 위기와 2008년 세계 금융위기로 이어진 과잉은 대규모로 유입되는 전세계 자본에 결국 접근할 수 있게 되면서 악화한 것이 거의 틀림없지만 이후 10년에 걸친 연구에서 부각되었듯 그 전까지 인식되지 않은 여러 미묘한 측면도 있었다. 어쩌면 아시아의 정책 입안자들이 선택한 환율 정책이 (대부분) 옳았는지도 모르겠다. 매우 독창적인 일련의 논문에서 도이체 방크의 세 이코노미스트(마이클 둘리, 데이비드 폴커츠-랜도, 피터 가버는 셋 다 학자 출신이다)는 아시아가 전후 유럽과 같은 발전 전략을 따를 뿐이라고 주장했다. 성장을 북돋우려면 저평가된 환율을 유지해야 하므로 개입과 자본 통제를 혼합하여 구사한다는 것이다. (…)
그들의 관점에 따르면 이것은 위기로 비화할 위협하고 불공정한 체제가 아니었다. 그들은 아시아 경제(와 이를 모방한 몇몇 나라)가 대우 합리적인 발전 전략을 따른다고 주장했다. p. 227~228

규제 담당자들이 무언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기색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것은 아니다. 2000년대 중반 연방준비제도 이사회의 앨런 그린스펀 의장이 다수의 연설에서 지적했듯 미국의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는 미국인들이 앞다퉈 주택에 2차 융자를 받고 개인 저축률이 1993년의 6퍼센트에서 2005년에 1퍼센트로 뚝 떨어진 현상과 나란히 일어났다. 사실상 아시아에서 왔지만 미국 금융 시스템의 중개를 거친 이 대출의 상당 부분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에 일조했다. 애석하게도 그린스펀과 연방준비제도 인사들은 이 주제가 그의 연설에서 반복될 정도로 둘의 상관관계를 고심했지만 이 통찰이 금융 규제 강화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IMF가 대규모 자본 유입을 겪는 신흥 시장에 조언한다면 핵심적 대목 중 하나는 이것이었으리
라. "최초 방어선으로서 금융 규제를 강화하라." 하지만 미국은 그러지 않았다. p. 230~231

딜레마이든 트릴레마이든 환율 유연성은 매우 커다란 충격에 대처하는 데 아주 중요하다.
이 모든 과정에서 달러 패권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엘렌 레이는 세계 금융 주기의 동인이 여러 가지 있지만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적어도 가장 구체적으로 지목할 수 있는 것)은 연방준비제도의 금리 정책이라고 주장한다.
그녀가 보여주듯 이것은 세계 금융 여건과 매우 큰 상관관계가 있다. 미국이 세계 주식·채권 시장에서 차지하는 커다란 비중과 전 세계 부채의 상당 부분이 달러와 연계되었음을 감안하면 연방준비제도의 정책이 중심적 역할을 한다고 믿기 쉽다. 여기에 실제로 인과관계가 있는지, 아니면 연방준비제도가 세계 금융 여건에 대응하는 것과 상관관계가 있을 뿐인지는 아직도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신흥시장이 환율제와 무관하게 세계 금융 흐름에 지극히 취약하다는 사실을 신흥시장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인사들은 이미 예리하게 자각했다. p. 238~239



아래에서부터는 챗GPT 요약

만약 러시아가 1960년대 경제를 개방했거나, 일본이 1980년대 플라자합의 이후 통화 절하로 불안정을 자초하지 않았거나, 프랑스가 그리스를 유로존에 포함시키지 않았거나, 중국이 2010년대 완전한 변동환율제를 도입했다면 달러는 여전히 강했겠지만 지금처럼 압도적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처럼 달러의 패권은 실력뿐 아니라 ‘운’의 결과이기도 하다.
달러는 탁월한 대통령이나 연준 의장이 있을 때만이 아니라, 평범한 시절에도 살아남을 만큼 강인했다. 오늘날 미국 사회가 극심한 분열을 겪고 있지만 달러는 여전히 버티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도 영원히 지배적이고 안정적일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이미 팍스 달러 시대가 정점에 이르렀다는 조짐이 많다. 미국의 제재와 감시를 피하려는 움직임은 우방국과 적국을 가리지 않는다.
중국 위안화는 여전히 달러에 묶여 있지만, 미국의 금융 제재 남발은 오히려 중국이 연계를 느슨하게 만들도록 압박한다. 이 변화는 아시아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암호화폐와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의 부상도 ‘비(非)달러 시스템’을 향한 욕구의 표현이다.
아직 결정적 사건은 없지만, 달러 중심의 금융 질서는 결코 무적이 아니다.

유로화 역시 비록 약세를 보이고 있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의 결속 강화로 다시 경쟁력을 회복할 여지가 있다. 그러나 달러 패권의 가장 큰 위협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있다.
미국 정치권이 오랫동안 ‘초저금리’와 ‘무제한 적자’를 당연한 규범으로 받아들이면서, 현실을 과소평가한 것이다. “이번엔 다르다”는 낙관은 역사적으로 늘 위험했다. 부채는 급증하고 정치적 리더십은 이를 해결할 의지가 없다.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높은 실질금리·인플레이션·부채 위기·금융불안정의 시대가 도래할 가능성이 크다.
딕 체니의 “적자는 문제가 아니다”라는 주장은 금리가 낮던 시대에는 통했지만, 금리가 정상화된 지금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게다가 인플레이션에 대한 ‘근거 없는 자신감’도 위험하다. 기술 발전으로 물가가 안정될 것이라는 믿음은 인플레이션의 정치·심리적 요인을 무시한 것이다.
사이버 전쟁이나 팬데믹 같은 대규모 충격이 다시 일어나면, 인플레이션은 쉽게 재발할 수 있다. 정치인들이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언제까지 존중할지도 불확실하다.

이 모든 우려가 과장일까?
지난 70년의 세계 통화 질서를 돌아보면, 놀라운 변화는 언제든 일어났다. 만약 미국이 부채 문제를 방치하고, 연준이 정치적 압력에 흔들려 인플레이션을 제어하지 못한다면, 달러는 결국 ‘모두의 문제’가 될 것이다.
p. 391~394(발췌한 내용을 챗GPT로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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