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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바타 야스나리 - 설국에서 만난 극한의 허무 ㅣ 클래식 클라우드 10
허연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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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타가와 히로시게<도카이도의 53경> 연장 중 시즈오카 지방을 그린 그림. 시즈오카 현의 이즈반도는 훗날 <이즈의 무희> 배경이 되었다.
시미즈터널을 빠져나오는 기차-설국의 첫 문장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는 일본 근대문학을 통틀어 가장 빼어난 명문장으로 손꼽힌다.
p015 참 많은 것을 숨겨놓고 있는 문장이다. 이 같은 섬세함과 허무가 나는 좋았다. '헛수고'라고 외치면 그녀가 더 순순하게 느껴진다는 이 묘사는 정말 놀랍도록 아름답고 허무하다. 에치고 산맥을 관통하는 국경의 긴 터널을 지난다는 건, 바로 이 놀랍도록 섬세한 허무의 나라로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했다.
설국, 에치코유자와
에치고유자와는 말 그대로 '설국'이다. 소설에서도 이틀이면 여섯 자의 눈이 쌓이고, 전봇대의 전등이 파묻혀버릴 정도라고 묘사된다. 눈 덮인 환상의 세계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다.
p19 그리운 사람을 생각하면서 걷다가는 전깃줄에 목이 걸린다는 그 폭설을 보고 싶었다.
p20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터널을 경계로 '다른세상' '다른나라'를 그리고 싶어했던 것같다.
p25 내게 <설국>은 깨달음 같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또 다른 문이 눈앞에 등장하는 문을 열 때마다 이 문이 끝일 거라고 기대하지만 결국 또 하나의 새로운 문앞에서 고개를 떨구게 되는 거대한 미로 같았다.
ㅎㅎ 읽으면서 뭔가 잘못된걸 깨달았다.. 나는 [설국]과 [설국열차]를 착각 하고 있었던 것이다.
설국열차는 내 머릿속에서 늘 어두웠었는데 설국은 기차에 비친 아름다운 여인을 통한 허무와
한글자 한글자 아름다움이 묻어 난다.
에치고유자와 역에서의 음습함을 경험해 보고 사케를 마시고 폰슈칸(사케전시장)을 둘러보고 시마루라의
두여인을 추억해보는 허연.
p62 [설국]은 1968년 일본에서 첫 번째이자 아시아에서는 두 번째로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작품이다. 온천 마을인 니카타 현 에치고유자와를 배경으로 도쿄에서 온 시마무라와 그곳에서 만난 여인 고마코, 여기에 요코라는 또 다른 상징적인 여인의 이미지가 중첩되면서 소설은 묘한 분위기를 풍기며 전개된다.
p62 설국은 인과관계가 분명한 여타 소설들과는 조금 다른 독법으로 읽어야 한다. 우리가 소설에 접근하는 익숙한 방식인 줄거리 위주 독법이나 기승전결을 염두에 둔 흔한 톡법으로 읽다보면 [설국]에 내재되어 있는 여러 가지 암시적 장치를 놓치고 만다. ---중략-- 설국에는 사건과 그 사건들이 결합해 결말로 향해 가는 뚜렷한 줄거리가 없다. 게다가 주인공들의 캐릭터와 감정 표현도 애매하기 짝이 없다---중략--이미지의 소설이다.
허연을 통해 나는 설국을 만났다. 아마 내가 이 책을 접하지 못했다면 나도 설국을 전자들처럼 이상한 책으로 보았을지 모르나, 이중적 장치라던지 배경을 조금 맛봄으로 통해 설국을 제대로 읽게 될 기대감에 부푼다.
2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삶과 문학을 만난다.
번역가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가 바로 이 일을 해낸다. 사실 그의 번역이 없었다면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불가능했다고 단언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본의 두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오에 겐자부로는 대조적인 작가다.
p138 사실 '체념'이라는 단어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흔적을 찾아다니는 내내 나를 따라다닌 '화두'였다. 체념한다는 것, 그리고 그 체념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 그것이 가와바타 야스나리였다. 체념에는 체념이 주는 힘이 있다. 깊은 체념을 경험해본 사람들은 안다. 체념이 힘이 된다는 것을.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내가 원고의 첫 행을 쓰는 것은 절체절명의 체념을 하고 난 다음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p147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이후 "나는 작품을 통해 죽음을 미화하고 인간과 자연과 허무 사이의 조화를 추구했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에게 죽음은 늘 가까이에 있는 미학이자 문학적 자기장의 중심이었다.
p169 [이즈의 무희]는 아주 짧은 소설이다. 한글 번역본 기준으로 단행본 40쪽 정도에 불과한 단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짧은 소설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대표작으로 꾸준히 거른된다. 그 이유는 초지작인 이 작품이 이후 펼쳐질 가와바타 야스나리 문학 세계의 예고편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p247 거리두기의 천재다 [천마리의 학]에서는 죽음도 외설도 한낱 멀리 있는 대상이나 현상에 불과하다. 그는 이야기에 직접 뛰어들어 개입하지 않는다. 어더한 가치 평가도 하지 않는다. 그가 그리는 모든 장면은 그저 일어나고 있는 하나의 상황일 뿐이다. 이런 고도의 장치 속에 소설을 집어 넣는것은 그만의 특출한 마술적 재능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소설 장면은 하나하나가 매우 완벽한 상징이다. (p247)
p261 그가 평생을 살면서 세상에 내놓은 작품들을 일별해보면, 그를 움직인 가장 큰 동인은 콤플렉스였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귀족 콤플렉스, 죽음 콤플렉스, 고아 콤플렉스, 왜소함에 대한 콤플렉스, 남심성 콤플렉스, 패배한 콤플렉스. ...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콤플렉스들이 모여 가와바타 야스나리 문학이라는, 누구와도 닮지 않는 거대한 산을 세운 것이다. 거대한 산이기에 가와바타 야스나리 문학은 캐도 캐도 끝이없다.
p270 그의 길을 따라가는 건 쉽지 않았다. 번번이 비틀대야 했고 번번히 넘어져야 했다. 그는 때로는 미로 같은 장치를 만들어 나를 괴롭혔고 가끔은 안개를 피워 방향을 읽게 만들었다. 그는 몇마디 말로 정리할 수 있는 작가가 아니다. 그만큼 일반적이지 않았다. 그의 기질과 성장 과정은 조화롭다기보다는 파편적이었고 보편성을 지니고 있기보다는 기이한 특수성을 더 많이 지니고 있었다.
내 삶의 기념으로서
무엇을 남길 건가
봄에 피는 꽃
산에 우눈 뻐꾸기
가을은 단풍 잎새
-료칸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나는 알지 못했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발자국을 찾아
떠난 허연의 기록을 통해
미처 알지 못했던 에치코유자와, 교토 이바라키 오사카 인즈반도 도쿄를 보았다.
그의 섬세한 표현을 통해
미처 내가 알지 못했을 설국의 아름다움을 보았다.
#클래식클라우드의 10번째 책..
아리스토텔레스를 통해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통해 단순히 읽기보다
인물의 발자취를 따라 간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것이고 위대한것인지
나에게는 누군가를 이렇게 까지 기대하게 하는 무엇이 있는지
고민해 본다..
@classic_cloud21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