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하녀 마리사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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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거라는 걸 우리는 둘 다 알고 있었다. 나는 말없이 그녀의 트렁크를 내려다보았다. 짙은 쑥색의 트렁크를 바라보다 문득 그녀가 저 무거운 트렁크를 끌고 얼마나 많은 곳을 돌아다녔을까,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많은 곳을 떠돌아다녀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나와 동갑이지만 그녀가나보다도 훨씬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한없이 착잡했다. 트렁크 위에는 내가 사준 스탠드가 얌전히 놓여 있었다.
- 저것도 소포로 부치지 그랬어?
내가 말했다.
- 깨질까봐.
그녀가 피식 웃었다.
멀리 노을이 지고 있었다. 죄악과 배신, 그리고 작별의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이때 기차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타고 갈 기차였다. - P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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