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닭 없는 불안과 소량의 희망으로 살아내는 하루. 견뎌낸다, 어제처럼. 내일도 그러할 예정이므로 죽음은 언제나 먼 미래일 뿐. 무작정 앞만 보고 내달리는 건 싫다. 먹고 살기 바쁜데!라는 공식으로 일상을 뭉뚱그리고 싶지도 않다. 그런데 왜 낯뜨겁고 철없는 소리가 되었는지. 가끔은 옆도 보고 뒤도 돌아보면서 온기를 나누며 살자는 말이.그래서 고맙다. 눈에 띄지 않는, 어쩌면 대부분 애써 외면하는 특별한 일을 하면서도 그것이 왜 특별하지 않은 지에 대하여 온통 마음으로 써내려간 이 따뜻한 청소부가. 누군가를 씻길 수 있지만 스스로는 씻을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난 수도꼭지처럼, 우리는 서로의 관심과 보살핌이 있어야 시들지 않는 존재라는 깨달음에 대한 고백이.
경제성장에 대한 맹신은 유통기한이 없고 지속가능한 발전은 시대의 화두가 되었다. 불가능한 걸까. 생산의 효율보다 자연과의 공생을, 부의 증대보다 사회적 분배를 고민하는 ‘비주류’가 ‘상식’이 된다는 건. 덜 풍족하기 때문에 더 풍요로워지는 성장을 희망한다.
트라이브 덕분에 삶을 더 멀리 더 깊이 더 높이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는 감사의 고백. 등푸른 생선처럼 활기찬 열정과 뜨거운 애정으로 꾹꾹 눌러쓴 문장은 그 어떤 시보다 매혹적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이토록 아름다운 일이구나.
결국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