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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순례
허영엽 지음 / 가톨릭출판사 / 2024년 1월
평점 :
그리스도교 신자라면 최소 한 번은 이스라엘이나 로마 등지로 성지순례를 다녀온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나는 그 축에 끼지 못한다. 개인적으로 어디 다니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고(옛날에는 온 동네를 누비고 다녔는데 요즘은 귀찮아져서 그냥 집에 있는 게 좋다), 성지순례를 다닐 만한 경제력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 나에게 『성경 순례』는 매력적인 책이었다.
성지순례를 무려 책 한 권으로 떠날 수 있다는 것은 나 같은 집순이에게 최적이었다. 무엇보다 아브라함 시대부터 바오로 사도까지 성경 전체를 아우르는 여행이어서 더더욱 재미있었다. 성경을 큰 줄기만 이해하고 있는 터라, 성경에 이렇게 지명이 많이 나왔나 싶어 신기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명은 많이 나오지만 읽기에는 전혀 어렵거나 복잡하지 않았다. 오히려 저자 신부님의 쉽고 편안한 문체 때문에 하루 만에 다 읽어도 손색이 없었다. 내가 너무 빨리 읽어버려서 죄송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해당 지역에 직접 다녀오신 이야기도 나와 있어서 마치 여정에 함께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순례는 일반적인 여행과 성격이 다르다. 때때로 험하고 불편한 길, 없는 길도 나온다. 특히 험한 길에 적응하지 못하는 나에게는 쥐약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런 길을 선택하셨다는 사실을 아는 게 중요하다. 하느님께서는 누구나 다 아는 길, 평탄한 길을 고르지 않으셨다는 뜻이다. 하느님께서 고르신 길대로 쭉 나아가다보면 아름다운 땅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느님은 과감하게 우리에게 떠나라고 명령하신다. 우리는 그 명령을 따르며 저마다의 험한 길을 걸어가고 있다. 성경에서도 하느님은 당신이 선택하신 인물들에게 ‘떠나라’고 하셨다. 그 길은 너무 멀어서 포기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들은 때때로 불평하기도 하면서, 약속을 어기기도 하면서, 그분의 명령대로 그렇게 했다.
나에게도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길이 뭔지 묵상하고 고민해야 할 의무가 있을 것이다. 사실 어릴 때부터 폭력으로 점철되어 안온했던 적이 없다보니 또 얼마나 더 험해야 하나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만일 내가 폭력을 당하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더 잘 살 수 있었을까. 행복하고 평안한 인생만을 살아갈 수 있었을까.
지금 서평을 쓰면서 생각해보는데, 가정법대로 이루어졌다면 아마도 겪어야 할 험한 일들을 나중에 더 크게 겪지 않을까 싶다. 어떤 식으로든 불행을 겪어야 한다면 어린 시절에 미리 다 겪어서 나중에 조금이나마 행복하고 평안해지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런데 어린 시절에 당한 폭력은 성인이 돼서도 트라우마가 되던데.
하느님은 나를 어디에 쓰려고 이 나이까지 살도록 두시나. 차라리 한참 왕따 당할 때 죽었으면 어땠을까. 이런 나를 못 죽는다고, 손목도 그을 줄 모른다고 조롱하는 사람도 있다. 그 나이까지 상처를 받으면 어떡하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나에게는 모두 지금 일어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