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순교자록 - 파리외방전교회 아드리앙 로네·폴 데통브 신부가 기록한
아드리앙 로네.폴 데통브 지음, 안응렬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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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성월이면 으레 떠오르는 책이 있습니다. 가격이 좀 있어서 감히 구입할 엄두를 못 내고 있었습니다. 마침 이번에 책을 자유롭게 고를 기회가 생겨 재고할 것도 없이 이 책을 골랐습니다. 조선 순교자록이라는 짧고 강렬한 제목이지만 꽤나 두꺼운 책입니다. 책이 두껍다고 해서 지레 겁을 먹고 읽기를 포기하기엔 굉장히 아깝습니다. 내용이 전혀 어렵거나 따분하지 않아서 한 이틀만 투자해도 금방 다 읽을 수 있습니다.

저는 오히려 이 방대한 내용을 너무 급히 읽어서 책의 내용을 다 소화하지 못할까봐 그게 더 걱정입니다. 그렇더라도 회피하거나 어렵게 풀지 않고 제가 해 왔던 방식대로 서평을 쓰고자 합니다. 저의 글이 비록 칙칙하고 아픈 내용이 많더라도, 얼마 안 되는 팔로우들이 저를 차단하더라도, 저는 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실제로 저의 이야기들 때문에 불편하다고 차단하거나 언팔로우한 사람이 굉장히 많습니다.

저는 성당에 안 나간 지 2년 정도 되어 갑니다. 신앙심이 깊다고 자부하는 사람들 틈에서 하느님을 증언하기가 몹시 민망하고 부끄러웠습니다. 저는 그 정도의 믿음이 없고 오히려 하느님께서 저를 모를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책에서 성모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한 분이 생각났습니다. “, 나를 아니?” 이 말을 허투루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저에게 일을 더 시키고자 하느님은 널 예뻐하신다.”고 알랑거리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제가 아무리 묵주를 만들어다가 사람들에게 나누어도, 몇몇 자매들의 염치없는 갑질과 수많은 요구들을 거절 없이 다 받아주고 들어주어도, 하느님과 성모님은 저를 모르셨습니다. 도리어 사람들이 네가 거절을 안 해서 그런 거야.”라고 깔깔 웃었지만 그들도 모릅니다. 제가 거절을 하면 승낙할 때까지 요구하고 설득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름 없는 교우로서 뭐라도 도움이 돼야겠다는 의지는 간데없는 지 오래였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저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조차 아니건만 도대체 조선 시대 사람들에게 하느님은 어떤 존재였기에 목숨까지 걸어야 했을까요. 그 시대 사람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가난하고 열악했는데도 하느님을 누구보다 흠숭했고 성모님을 공경했습니다. 하느님을 위해, 성모님을 위해 갖은 고문과 참수를 당하면서도 신앙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목숨을 걸어야 할 시대는 지났지만 소중히 물려받은 신앙조차 저버리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조선 천주교 신자들이 신앙을 빌미로 위법한 행위를 저질렀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다만 유교 사상이 팽배했던 당시에는 서양의 학문인 천주교를 믿는 행위만으로 많은 사람들을 고문하여 죽였습니다. 후대에 와서는 조선의 순교자들을 연구하고 기록하는 사람이 많아졌지만 여전히 알려진 순교자들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합니다. 여담이지만 저는 묵주를 만들 때 이름 없는 순교자들을 떠올린 적도 있습니다.

다른 책들은 유독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만을 다루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래도 우리나라 최초의 한국인 신부님이라 기록이 많아서 그런 거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책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김대건 신부님을 여러 순교자 중 한 분으로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봅니다. 아무래도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신부님들의 기록이니까 해당 수도회의 순교 신부님들에 대한 내용이 좀 더 많은 건 부인할 수 없습니다.

순교자 성월을 맞아 그토록 읽고 싶었던 책을 읽을 수 있어서 매우 기쁩니다. 이야기할 게 많아서 그만 마무리 짓는 것조차 어렵게 되어 버렸습니다. 모쪼록 귀한 책을 많은 분들이 알고 널리 읽히기를 바라며 부족한 글을 정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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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
홍성남 지음 / 가톨릭출판사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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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을 쓰는 날(두 달에 한 번)에만 노트북을 켜다 보니 멀쩡한 인터넷이 저절로 끊기는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와이파이 비밀번호 하나 때문에 아버지가 야구 보고 계시는 걸 방해할 수 없어 명령 프롬프트를 이용해 비밀번호를 캐치했습니다. 지금은 해결하여 원활하게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 워낙 오래된 노트북(2016년도에 구입했음)인데도 서평을 쓸 수 있다는 게 거의 유일한 기능인지라 불만 없이 잘 쓰고 있습니다. 지금은 어떤 사유인지 몰라도 인터넷이 다시 끊어졌습니다.

성당에 다닐 때는 고해성사를 거의 빠짐없이 봤습니다. 몇 년 전 저를 담당했던 전공의에 대한 마음이 커져버린 것, 잊을 만하면 혼자서 성욕을 해소하였던 것, 신앙이 의무감으로 변질돼 모든 활동을 접고 싶은 마음, 견진성사를 앞두고 죄를 씻어버리고 싶은 마음 등 다양한 이유가 있습니다. 고해성사를 몇 번이나 보고도 질책이나 꾸중 같은 건 전혀 들은 적 없습니다. 다만 저는 늘 벌을 받고 있고 받아야 하는 사람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을 뿐.

저는 여러 가지로 죄를 짓고 살았습니다. 저를 믿어주던 사람들에게 자주 찾아가 집착하다가 쫓겨나면서 고소당할 뻔한 적이 있고,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용서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저를 수십 년 동안 따돌리고 짓밟았던 사람들에게 용서할 것을 강요받았지만 정작 제가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용서받아본 적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예 제가 집착했던 사람들에게 지금이라도 고소하라는 문자를 보낸 적 있습니다.

그냥 여느 사람들처럼 사랑받고 존중받고 싶은 마음에 이 짓 저 짓 다 해봤지만 저는 그저 소란을 피우는 천박한 이기주의자에 불과하였습니다. 저를 존중해주는 사람은 그러니까 단 한 명도 없었다는 소리죠. 교회에서든 성당에서든. 오히려 제가 존중을 먼저 하면 당연한 듯 더 많이 요구하였습니다. 묵주를 만들어 축복까지 받아다가 집 앞에 갖다놓는 일, 독서, 대리조배, 각종 봉사들을 제게 맡겨둔 것마냥 통보하듯 요청했습니다(심지어 제 축일과 생일을 일절 안 챙겨줬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미사 가는 것조차 피곤하고 짜증이 났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성당에 다시는 가지 않았습니다. 종종 사람들이 왜 미사 안 와? 미사 나와야지! 하느님이 널 얼마나 이뻐하시는데. 하느님한테 그러면 안 되는데!”라며 회유하거나 화를 냈습니다. 처음에는 전화를 안 받고 끊어버렸지만 나중에는 아낌없는 쌍욕과 거친 표현으로 되돌려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성당에 워낙 엄마 지인이 많고 동생 친구도 많다보니 조용히 다니려고 쥐 죽은 듯 지냈지만 이제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신앙생활이 더는 즐겁지 않습니다. 제가 다른 신자들과는 달리 베풀 줄 모르는 사람이고 이기적이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 근데 저는 무명의 학인이고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 보니 직장이나 아르바이트를 못 하기 때문에 제 선에서 충분히 베풀 만큼 베풀었다고 생각합니다. 묵주도 재료 왕창 사다가 몇 백 개씩 만들어 바치고 선물도 챙겨주고 해 달라는 봉사 거절 없이 다 해줬습니다. 가족들이 제가 성당 가는 것마저 눈치를 줄 만큼. 근데 이게 뭡니까?

저는 오히려 성당에 안 다닐 때가 더 마음이 편하고 가볍습니다. 성당에 나가는 일은 더 이상 저의 일과에 없습니다. 저는 같은 종교인들에게 사랑받긴 글렀나 봅니다. 맨날 이기적이라고 욕하고 나잇값 못한다고 욕하고 봉사하기 부담스럽고 싫다고 하면 꼽을 주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들. 수십 년 왕따와 폭력경험으로 인해 안 그래도 불안하고 사람들을 싫어하는 저인데 이해해는커녕 더 심하게 짓밟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도 하느님 운운하며 미사 나오라는 사람들에게 가차 없이 쌍욕을 일삼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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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26 00: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7-26 0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해인의 바다 - 영혼의 일기
이해인 지음 / 가톨릭출판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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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는 정신과 외래를 다녀왔고, 어제는 니트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지원사업에 참여 차 복지관에 들렀습니다. 교수님 진료실에 들어설 때마다 머뭇거리고 서성입니다. 교수님이 앉으세요. 왜안앉아요?” 라고 하시면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소파에 앉아 저의 근황을 나눕니다. HSK 4급에 합격한 이야기, 어반스케치 단체전을 무사히 마친 이야기, 저널북을 여섯 권이나 구매해 카드값이 많이 나온 이야기 등.

약은 201911월 이후 지금까지 그대로입니다. 제가 병원을 다닌 지 어언 10, 약이 완전히 확정되기 전까지 제 약은 항상 다르게 나왔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주 잠에 빠졌고, 늘 누워만 있는다고 가족들에게 욕을 먹었습니다. 지금은 예전처럼 그렇게 누워만 있을 필요가 없고 누울 시간도 아깝습니다. 저를 진료했던 두 명의 전공의는 가끔 저에게 태도를 바꿀 때도 있었지만 지금의 교수님은 시종일관 한결같습니다.

어제는 복지관에 들러 사업 관련 초기 상담을 받았습니다. 담당 선생님은 제가 복지관에 들르는 동안 단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분이었습니다. 선생님이 저의 살아온 이야기들을 제법 많이 물으셨는데, 저는 단 한 순간도 불편하거나 어색한 내색 없이 깊고 어두운 심연들을 꺼냈습니다. 어두운 가정사, 왕따와 폭력으로 점철된 학창시절 이야기, 대학() 생활 이야기, 중학교에서 시간강사를 했던 이야기, 병원에 다닌 이야기 같은 것들을 하면서 부끄럽게 눈물을 훔치고 말았습니다. 여자가 아닌 남자선생님이어서 굉장히 창피했습니다.

어제 모든 일과를 마치고 난 밤, 제 방에서 조용히 묵주기도를 올렸습니다. 사람들에게 갑질과 모욕을 오롯이 겪은 이후 성당에 나가지도 않는 주제에 묵주기도를 바칠 자격이나 있겠냐마는 그날따라 장미목 묵주로 기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를 10년 동안 담당한 교수님과 어제 대화 나누었던 사회복지사 선생님을 위해서 빛의 신비 5단을 바쳤습니다. 기도제목은 딱히 없었고 저의 심연들을 기꺼이 받아주신 분들이기에 감사한 마음이었지만 차마 내색은 못하고 홀로 기도드렸습니다.

수녀님의 비밀 일기를 읽는 동안 저는 저의 삶을 조용히 묵상해 보았습니다. 묵상하면서 무거웠던 머리가 조금씩 맑아졌습니다. 그리고 약에 눌리고 저녁을 먹고 나서 몰려오는 피곤이 사라졌습니다. 종교를 불문하고 남녀노소에게 존경받는 수녀님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일기에는 내면의 갈등과 주님과의 대화 같은 내밀한 이야기가 적혀 있었습니다. 우리와 같은 고민을 하고 같은 갈등을 겪는 수녀님의 이야기를 읽으며 저 또한 내적 친밀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대단해 보이는 수녀님이지만 알고 보면 친근하고 속 깊은 옆집 할머니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성모성월의 중반부에 이르러 밤이 깊어졌습니다. 어버이날에 받았지만 저의 일정이 빠듯하여 오롯이 집중해서 읽기 위해서는 특정 시간을 온전히 빼야 했습니다. 그러나 책을 읽기 위해 빼어 둔 시간은 결코 소모되는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커피 한 잔 마시고 다른 책을 읽을 때보다 훨씬 더 충만하고 가성비가 높은 시간입니다. 오늘밖에 쓸 수 없는 이야기들을 이 서평에 담을 수 있게 되어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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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대화 - 그리스도교 관상의 길
토머스 키팅 지음, 이청준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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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책에서 적지 않은 위로와 지지를 받았습니다. 생각이 지나치게 많아 복잡한 내면을 타고나다시피 한 저에게 영적 여정은 깨끗한 상태에서 시작하지 않는다.”는 구절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과거의 왕따 경험과 폭력 경험을 내려놓지 못해서 늘 악마에게 사로잡히는 저에게 먹을 것이 든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사냥꾼에게 잡히는 원숭이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안토니오 성인의 이야기는 저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새겨들어야 할 중요한 이야기였습니다. 악마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흥미진진하고 흡인력 있는 이야기를 현실에 있는 것처럼 속삭입니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들은 어디까지나 우리가 영적 여정을 이어가지 못하게끔 만드는 방해 공작에 불과합니다. 저도 얼마나 많이 시달렸는지 모릅니다.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그 어떤 유혹에도 단호했던 안토니오 성인을 몹시 동경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제가 얼마나 교만하고 신경증적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꽤 오랫동안 이어진 못된 습관이 있는데, 이 습관이 고착되면서 저는 늘 제 자신을 괴롭히며 살았습니다. 성당에 다닐 때는 고해성사를 수십 수백 번 봤고, 성당에 다니고 있지 않는 지금은 죄책감조차 저 멀리 보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제가 세상에서 제일 추하고 못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심판하고 벌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 중 실수를 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실수를 저지르고 나면 하느님, 용서하십시오!” 한 마디 하고 잊어버리면 됩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죄악을 오래 품고 계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스스로의 잘못을 확대해석해 심판과 단죄를 저지르는 쪽은 우리들 자신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실수를 두고 이렇게 말씀하실 분입니다. “얘야, 하나 더 집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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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 알아야 할 사회교리 Q&A - 여러분의 이웃은 하느님이십니다
미헬 레메리 지음, 최정훈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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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우리들을 성당 안에서만 활동하도록 가르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아가야 할 곳, 그러니까 신자와 비신자, 연장자와 연소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공존하는 사회에서 교회의 가르침을 실천하라고 가르칩니다. 교회의 가르침은 때때로 구체적이라기보다 관념적인 경우가 많아 따르기가 쉽지 않습니다. 당장 저만 해도 어떤 일을 선택하기 전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행동하실까?”를 떠올리지 못합니다.

<청년이 알아야 할 사회교리 Q&A>는 때때로 추상적이어서 실천하기가 쉽지 않은 교회의 가르침을 성경의 관점에 입각하여 구체적으로 알려줍니다. 사회에 관심이 없더라도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질문과 답변을 명쾌하게 제시합니다. 이 책을 읽다보면 누구든지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가장 작은 이를 섬기는 것이 곧 하느님을 섬기는 것임을 안다면 교회의 가르침은 그리 어렵지 않게 될 것입니다.

저는 복지관에서 ESG공동체 활동을 했습니다. 여기에는 봉사활동과 프로그램 참여, 조별모임 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단어 중 하나가 제로웨이스트였는데, 실제로 제로웨이스트샵에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사는 지역에는 거의 없었습니다. 이 책에 등장하듯, 음식물을 잔뜩 구입한 다음 유통기한이 지났다고 버리는 일 없이 낭비하지 않는 것도 제로웨이스트 실천에 해당됩니다.

우리는 가난한 이웃을 생각한다면 절대로 마음 놓고 편하게 지내지 못할 것입니다. 오갈 데 없는 사람들, 더러운 곳에 사는 사람들, 못 입고 못 먹는 사람들, 정보와 기술의 혜택에서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 등 소외된 이웃들이 많습니다. 세상은 그들을 외면한 채 발전을 거듭하지만 우리들은 과감하게 그들을 향해 눈을 돌려야 합니다. 하느님을 믿느냐 안 믿느냐만 따진다면 우리는 그 누구도 도울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교회는 모든 이를 향해 열린 곳입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거나 혹은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서 그들의 면전에서 문을 닫아버린다면 교회도 세상과 다를 게 없어집니다. 저자는 오히려 감옥이 범죄자의 재범률을 높이고 그들의 사회 복귀율을 낮춘다고 설명합니다. 죄를 저질렀다면 정의의 이름으로 처벌을 받으면 되고 한 개인이 저지른 죄만으로 그가 속한 모든 공동체(민족 포함)를 비난하면 안 됩니다.

가톨릭의 사회교리는 매우 추상적일 수 있지만 이를 다룬 관련 서적을 자세히 읽어보면 성경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내용들입니다. 하느님께로 한 발짝 더 나아가는 노력을 한다면 우리는 예수님과 닮은 생각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꼭 성직자나 수도자만이 예수님을 닮을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저는 이 책을 읽고 나서 음식물을 남기지 않고 다 먹는 것과 필요 없는 물건은 구입하지 않는 것부터 실천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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