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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머물 것처럼 곧 떠날 것처럼 - 초대 조선 대목구장 브뤼기에르 주교 전기
카미유 뷰르동클 지음, 연숙진 옮김 / 생활성서사 / 2024년 12월
평점 :
공식적이지는 않지만 냉담 상태와 다를 것 없는 내가 감히 이 책의 서평을 쓸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성당에 나가지도 못하는 나에게 서평단 선정이라는 선물을 주신 담당자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부족한 글을 쓰고자 한다. 나의 모자란 서평이 누군가에게 작게나마 구매 의사를 불러일으키면 그것만으로 족하다.
책을 읽는 동안 브뤼기에르 주교님은 ‘조선 사람보다 더 조선을 사랑했던 목자’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자’ 대신 ‘용사’라는 표현도 어울릴 것 같다. 당시 조선의 상황은 천주교 신앙인을 향한 유혈박해가 난무했기 때문에 목숨을 바쳐야만 갈 수 있는 곳이었다. 주교님은 그런 상황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조선을 향한 마음을 일찍부터 품으셨다.
브뤼기에르 주교님은 미래가 보장된 길을 걷고 계셨다. 어릴 때부터 신앙심이 깊고 총명해서 20대의 나이에 사제품을 받고 교수가 되는 등 남부러울 것 없는 탄탄대로였다. 그런 분이 아무도 관심 없었던 조선이라는 나라에 관심과 애정을 가지셨고, 무엇보다 조선의 선교라는 일념만으로 자신의 모든 명예를 포기하셨다.
브뤼기에르 주교님은 조선으로 향하기까지의 모든 준비를 의연하고 적극적으로 실행하셨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지만 결코 두려워하거나 멈춰 서지 않으셨다. 정든 고향, 사랑하는 가족을 두고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것도 이미 각오한 상태였다. 주교님은 긴 서신으로써 부모님께 자신의 안부를 전했다.
주교님의 여정은 이제 목숨과 맞바꿔야 할 정도로 열악하고 위험한 상황뿐이었다. 주교님의 서신을 보면 당시의 상황이 있는 그대로 설명되어 있다. 그러나 주교님의 굳은 각오는 평범한 사람들의 쓸데없는 만용과 완전히 달랐다. 인간의 힘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브뤼기에르 주교님은 위험하고 불편하기만 한 길을 걸으면서도 불평 한 마디 없으셨다. 만일 나였다면 “내가 왜 이런 짓을 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일찌감치 좌절하고 발길을 돌렸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모든 직분을 포기하고 오로지 순교를 위해 가장 낮은 곳으로 향하시는 주교님의 발걸음에서 결연함과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브뤼기에르 주교님의 여정은 아쉽게도 조선에 도착하지 못한 채 끝나야 했다. 주교님이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쓰러지자마자 선종하셨기 때문이다. 주교님은 선종하신 지 100년이 좀 못 되어서야 조선으로 도착할 수 있었다. 고향에서는 주교님을 위한 추모 미사가 집전되었다. 후손들을 포함해 주교님을 알던 모든 이들은 용사 중의 용사였던 주교님을 기렸다.
오늘날 브뤼기에르 주교님에 대해 궁금해 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그런 만큼 이 책의 서평단 모집 경쟁률도 치열해 조기 마감되었다고 들었다. 브뤼기에르 주교님의 결연하고 아름다웠던 발걸음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데에는 후손들의 공이 크다. 그들이 주교님의 공로를 알리려는 노력을 게을리했다면 이 책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