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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풍당 수블아씨
오정은 지음 / 디아망 / 2021년 11월
평점 :

이 이야기는 귀양다녀온 '김서율'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나는 이 책을 덮을 때까지, 김서율과 주인공인 해준 사이의 관계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책을 덮은 지금 모든 이야기가 각자의 시간선을 따라 적정한 곳에서 만나 정교한 하나의 이야기가 되었지만, 이 책을 보실 분들을 위해 스포는 하지 않겠다.
이 책은 제목대로 연풍당의 수블아씨, 술의 신과 어쩌다 그녀를 깨운(어쩌다 그녀의 노예가 된)불운한(?) 해준의 이야기이다. 어쩌다 연풍당에서 월세로 살게된 해준은 갑자기 그를 덮쳐오는 온갖종류의 불운에 시달리다 그게 업신과 여러 가신들이 연풍당에 부재함으로 인한 것임을 알게된다. 그의 자의 혹은 타의로 여러 가신들이 모이고, 어쩌다 술신의 노예가 된 해준은 노예에서 벗어나기 위해 타의로 시작했으나 이제는 술을 빚는 게 기꺼워지기 시작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신과함께가 많이 생각났다. 우리네 작은 신들. 성주신, 터주신, 조왕신, 해주신, 업신, 삼신할미 등등 많은 가신들과 토속 신들이 나온다. 누군가는 잠들어 있었고, 누군가는 현실에 적응하여 음식점에, 미용사에, 변호사에, 부동산업자에.... 다양한 직업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은 다른 재미가 있었다.
주인공 해준은 신과함께에 나왔던 차태현이 역을 맡았던 의인 차홍과는 다르지만 비슷한 면이 있었다. 불운한 가정사와 불쌍한 이들을 못보고, 그들을 위해 발 벗고 나서는 그런 면들이 그랬다. 다만 신과함께가 인간이 죽으면 가는 지옥들을 보여주며 권선징악의 메세지들이 강했다면, 이 책은 보다 우리네 가신들을 소개하고,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는 상황들에 대한 거부감을 강하게 보여줬달까.
이 책에서는 여러 가해자들이 나온다. 폭행범, 살인범, 가정폭력 아버지, 아이를 버린 어머니 등등.... 사연없는 사람 없다지만, 자신들의 어떠함은 쏙 빼놓고 핑계와 변명과 온갖 것들로 오히려 자신들이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가해자들. 이 책에서는 그들에 대한 '사이다'는 솔직히 별로 없다. 그러나 피해자들에게 전하는 위로가 있고, 예들을 보여주며 그런 이들에게 더이상 이용당하거나 억압당하지 말고, 자신을 낮추지 말고 나오라고 말한다.
서로 상관 없어서보이던 것들이 하나하나 짜맞춰져 결국 수블아씨의 지팡이에 꽃이 계속 필 때 이 소설은 끝났다. 처음엔 작가의 이름과 수블아씨라는 제목에 호기심이 생겨 보게 된 책이지만, 잊혀져가는 것들과 잊힐 것들과 그리고 피해자인척 하는 가해자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한 책이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다 제하고도, 스토리가 재미있고, 필력이 좋아 한큐에 쉽게 읽힌 책이었다. 생각보다 재밌었고, 생각보다 짜임새가 좋은 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