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롤 에디션 D(desire) 9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김미정 옮김 / 그책 / 201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직 캐롤 영화를 보지 못했다. 왠지 책부터 읽어야 할 것같았다.

보통 영화는 책으로 그려내지 못한 것들을 장면 안에 잘 담기에 이해가 쉽다. 거기에 배경음악

까지 더해지면 더욱 빨려들 것이다.

동성애에 대한 큰 혐오감은 없다. 그냥 다른 취향이고 사랑이다 정도다.

최근에 읽은 플라톤의 향연에서 보면 고대 그리스인들은 동성애에 대해 지극히 아름답고

숭고한 사랑이라고 보았다. 신의 질투로 한 몸이었던 남/남,  여/여, 남/여 가 반쪽을 찾아

가는 것, 그것이 사랑이라고 아리스토파네스가 얘기하는데 기발했다.

어쩌면 우리는 세종류의 생명체로 탄생해서 헤어진 자신의 반쪽을 찾는데 일생을 바치는

건지도 모른다. 오랜 옛날엔 아주 자연스럽게 지냈던 우리들이 종교와 문화, 국가적

가치관 등등 통제단위가 생겨나면서 소수의 동성애에 대해 가혹하게 배척했던 것 아닐까.

여자들의 사랑, 남자들의 사랑이라는 타이틀을 떼고 보면

캐롤이나 브로크백마운틴은 그저 사랑이다.

캐롤은 어린 소녀가 여인으로 거듭나는 사랑이고

브로크백마운틴은 금지된 사랑을 20여년간 지켜나간 두 사람의 가슴아픈 사랑이다.

캐롤의 결말은 그들이 서로를 선택하며 해피엔딩처럼 끝났다. 그들의 사랑이 어떤 아픔을

더 겪을지 알지 못한다. 어쩌면 브로크백마운틴의 잭과 애니스처럼 슬픈 결말을

맞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캐롤을 다 읽고 바로 브로크백마운틴 단편을 읽었다.

역시 영화는 보지 못했다. 히스 레저의 걸작이라는데 아쉽다. 그가 표현한 애니스의 마지막

눈물을 보고싶다. 제이크 질렌할 과의 캐미도 궁금하다.

사랑에 이성이 어디 있을까? 사랑은 본성에 충실한 감성이다. 보고싶고 만지고 싶고

함께하고 싶은 그것. 이런 사랑은 누구에게나 똑같다.

그들의 사랑 역시 그저 사랑이었다.

-히스 레저 정말 아쉬운 배우다...ㅜ.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국가란 무엇인가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작년 우리나라를 강타한 언어는 '헬조선' '금수저 흙수저 계급론'이다.

 IT 세계강국, 경제대국 12위를 자부하는 21세기 대한민국의 민낯이다.

극심한 양극화와 비정규직의 고착화, 청년실업급증에 대한민국은 50대50으로 나누어졌다.

이 정부 들어서 국민의 40%는 정부가 어떤일을 하든 어떤 잘못을 범하든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낸다. 그것이 국민들을 더욱 갈라서게 하고 있다.

대체 우리에게 대한민국, 이 국가는 무엇일까? 매번 실망과 좌절을 안겨주는 이 국가가

과연 우리가 떠바치고 존경해야할 가치가 있는 존재인가 의문이 들었다.

저자 유시민은 내가 정치인으로써 좋아하고 작가로써 존경하는 분이다.

정치인 노무현을 좋아하면서 그를 좋아하게 됐고 그의 탁월한 식견과 논리적 설득력에

반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근거를 갖는 논거로 토론에 임하는 그의 자세는 여지껏 정치인

하면 떠올렸던 맹목적 이데올로기 대립과 말싸움, 몸싸움, 온갖 비리에도 후안무치한 그들의

두꺼운 낯짝을 일시에 제거시켰다.

그리고 무조건적인 정치혐오에서 이것 저것 따져보고 이 당과 저 당의 차이, 각각의 정치인들의

정치관과 가치관에 더욱 주목하게 했다.

어차피 우리는 국가라는 공간과 제도안에서 우리 삶을 영위해야한다. 작금의 서유럽 난민사태를

보면 안정적인 국가라는 것이 얼마나 큰 가치가 있는 지도 알겠다.

하지만 정부가 곧 국가는 아니다. 우리는 곧잘 혼동하곤 한다. 지금이 전제군주시대도 아닌데

대통령이 곧 국가요 짐인 것처럼 그의 입에서 떨어지는 한마디에 나라가 출렁인다.

이것은 정상이 아니다. 내가 생각하기엔 국가는 오히려 국민과 동격이고 정부와 정치는 그들의

행복을 위해 일해야하는 기관일 뿐이다.

이 책에는 역사적, 철학적 국가관들을 나열한다. 국가주의 국가관, 자유주의 국가관, 마르크스적

국가관, 목적론적 국가관,이런 국가를 다스리는 것은 어떤 존재인가? 누가 다스려야하고 또

어떤 가치관으로 다스려야 조금 더 국가 곧 국민이 행복할까? 고민한다. 쉽게 책장이 넘어가지는

않았지만 책속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들은 고스란히 가슴속에 새겨졌다.

하나의 가치관을 세우는데도 이렇게 많은 사유와 지성, 고민들이 들어간다. 그래서 유시민 작가의 말 한마디, 문장하나는 그만큼의 힘을 갖는다.

 

- 어떤 훌륭한 지도자가 나타나서 정의를 실현할 능력있는 국가를 만들어주길 바랄

  수는 없다.

  이것은 헛된 기대일뿐이다. 훌륭한 국가를 만드는 것은 시민들이다. 공화국 주권자

  라는 사실에 대해서 대통령이 된 것과 똑같은  무게의 자부심을 느끼는 시민,존엄한

  존재로서 자기에게  주어진 권리와 의무가 무엇인지 잘 아는 시민,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설계하고 책임지면서 공동체의 선을 이루기위해 타인과 연대하고 행동할 줄

  아는 시민, 깨어있는 시민들이 훌륭한 국가를 만든다.

 

작가가 맺음말에 쓴 글이다. 우리 국민에게 그가 바라는 바가 절절히 쓰여있다. 그는 항상

말했다. 정치는 국민의 수준을 넘지 못한다고. 그 말에 빈정이 상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말할때는 그만큼 우리 국민들이 그만큼의 저력을 지녔다고 믿기때문이다.

가끔 TV에 비치는 극우성향의 어르신들의 행태를 보며 나도 모르게 욕을 하곤 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신념을 행동으로 옮겼다. 그것이 혹여라도 잘못되고 이용당하는 것일지라도

그들은 행동을 했다. 나는 뭐를 했는가? 고작 답답한 현실을 욕하고 뒷담화하는 수준의

배설들만 하지 않았는가. 깨어있는 시민으로 행동하는 시민으로 내가 보여준 것이 있는가?

처절한 자기 반성을 해본다.

내가 원하는 국가는 보편적 복지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다양한 목소리가 공존하고, 개인의

삶을 존중하며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정치를 하는 거다.  더이상 전쟁의 공포에 휘둘리지않고

평화를 지향하는 국가의 정책을 의심없이 믿을 수 있는 그런 국가를 원한다.

이런 국가를 만들기위해 나는 정치에 대한 관심을 놓지않을 것이다. 이에 부합하는 정책적

활동을 하는 정당을 후원할 것이다. 정치인 면면을 세심하게 살피고 지켜볼 것이다.

이것이 원하는 국가를 만들어가기위한 나의 행동수칙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민적 글쓰기 - 열등감에서 자신감으로, 삶을 바꾼 쓰기의 힘
서민 지음 / 생각정원 / 201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정말 서민들의 글쓰기 인줄 알았다.

세로로 쓰여진 제목만 보고.  이젠 글쓰기도 귀족 서민, 금수저 흙수저 따지나 빈정 상했다.

그래도 늘 다른 사람들의 글쓰기 노력을 즐겨 읽는지라 꺼내보았다.

앗! 이 아저씨는 종종 TV에서 보았던.. 정체를 몰랐을 땐 참 웃기게 생기신 분이다 생각했다.

나의 아들이 눈이 작은 관계로 난 눈작은 사람에 애정이 있다. ㅎㅎ

먼 훗날 내 아들이 류준열처럼 자라지 않을까 생각하며. 그런데 이분은 그 범주를 약간은

벗어났다. 그리고 기생충학 교수라는 걸 알고, 전공때문에 나도 배운 적이 있던 기생충학의

진저리치는 악몽을 떠올렸다. 대장속의 편충 컬러사진을 보고   한동안 나는 토마토 스파게티를

멀리했었다.

아무튼, TV에서만 보던 이분이 종종 써내는 컬럼은 나와 비슷한 정치색을 가지셨고 꽤나

유머러스 하구나 정도 였다. 뭐 그닥 그의 글에서 큰 감명을 받지는 못했다는 얘기다.

그의 솔직한 10년 글쓰기의 처절함을 읽고서야 무림의 고수를 이제야 발견한 마음으로

존경의 마음을 보낸다.

어설픈 작가 지망생 코스프레를 자임하는 게으른 나에게 그의 10년의 노력은

머릿속까지 번쩍 얼어붙게하는 날카로운 얼음 송곳이었다.

이런 분도 이렇게까지 스스로를 몰아붙이며 글쓰기를 했는데 나는 뭘 믿고 어영부영

세월만 붙잡고 있으면서 저절로 문장이 쓰여지길 바랬는지. 참 한심하다.

책읽기만큼은 놓지않고 했지만 리뷰 올리는 것도 인터파크에서 한 1년반 정도 열심히

하다가 중단하고, 또 안 되겠다 싶어 알라딘에 둥지를 틀고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은

리뷰를 올려야지 해놓고는 꼴랑 12편이 전부다.

글은 엉덩이 심으로 허리심으로 쓴다고 한다. 비록 내가 쓰고자하는 게 리뷰는 아니지만

그래도 하루에 한편 A4 1~2장은 써야지 마음 먹었으면 지켜야할 것 아닌가.

서민 교수의 10년 글쓰기는 오로지 놓지않는 끈기와 인내로 버텨낸 결과다. 그가 비록

몇권의 책을 말아드셨지만 결코 포기하지않고 글쓰기를 계속하면서 칼럼니스트로

대중과학교양서 저자로 이렇게 글쓰기 내공까지 전수하는 위치에 선 것이다.

포기하지않으면 결코 실패는 없다. 까짓거 성공할 때까지 포기하지않으면 되는 거다.

오늘도 나는 또 한권의 글쓰기 책에서 한 달짜리 자극을 얻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당동 더하기 25 - 가난에 대한 스물다섯 해의 기록
조은 지음 / 또하나의문화 / 201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마음이 불편했다.

데자뷰라고 해도 좋을 만큼 25년전 사당동의 그들과 나의 어린시절이 겹쳤기 때문이다.

나의 부모님은 일찍 결혼한 어린 부모였다. 그들 역시 부모의 돌봄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사회에서 부딪치다 만났고 그들이 결혼할땐 양가 어느쪽도 도움이 되주지 못했다.

오롯이 몸으로만 먹고 살아야한 가난한 그들. 그들은 시골에서 아이들을 교육시킬수 없다고

판단해서 대전이라는 도시로 나왔다. 그들이 자리잡은, 내 유년 청소년기를 보낸 곳은 산 날망에

있는 오래된 가옥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씨실, 날실처럼 어지럽게 얽힌 동네였다.

사당동의 철거민들보다 약간 나은 정도의 주거 환경이랄까. 어쨌든 우리 부모는 여타의 가난한 부모들처럼 아이들만 집에 남겨두고 일을 나갔다. 나는 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곤로에 밥을 앉힐 수 있었고 동생의 점심을 챙겨 먹였다.

만약 아빠가 험한 직업인 환경미화원의 정규직을 갖지 못했다면 우리 집역시 사당동의 그들 처럼

언제 어느때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졌을지 모를 일이었다. 학창시절내내 내 안의 콤플렉스였던

아빠의 직업이 결국 우리를 빈곤의 대물림으로부터 건져 주었고 대학교육과 더불어 지금의 어느정도 안정된 삶의 기반이 되어주었던 것이다.

그들의 삶은 너무도 불안정했다. 몸뚱이 하나로 살아가는 그들은 식구들중 누가 아프거나 병에

걸리고, 가족중 누구의 일탈이 있으면 바로 무너졌다. 그들에게 딱 삼년만 정기적인 월급과 환경이 제공된다면 그들은 작은 종자돈을 만들어 빈곤의 탈출 씨앗을 틔울수 있었을 것이다.

나의 아빠가 그리 좋은 부모는 아니었지만, 그 젊은 나이에 가족의 무게를 짊어지기 위해

냄새나고 힘든 직업을 기꺼이 받아들인 것 만으로도 그는 존경받아 마땅하다. 아빠는 정년퇴직 할때까지 그 긴 시간동안 이혼과 여러 상황을 겪었지만 그래도 그 직업을 놓지는 못했다.

그에겐 자식이 둘이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책임을 완수 해준 것만으로 나는 아빠를 더 이상

미워할 수 없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들이 가족에 대한 책임감조차 이겨내기 버거운 현실이 안타까웠고

그들의 빈곤이 자식세대까지 대물림 될 수 밖에 없는 우리 사회의 헐거운 복지 안전망이

슬펐다. 작은 월급이라도 규칙적으로 일정하게 꾸준히 받을 환경만 된다면 어느 정도의 가난

은 이겨낼 수 있다고 믿는다. 최소한 교육과 의료에서만큼 일정정도의 균등한 복지가

제공된다면 빈곤의 순환을 끊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지금 점점 국민의 삶을 비정규직으로 내몰고 언제 어느때 실직이 될

지모를 시한 폭탄을 안겨주고 있다. 그런 법을 노동개혁이란 이름으로 국민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는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과연 100% 대한민국의 행복이라는 당신의 공약이 실행되고

있기나 한건지? 애초부터 말도 안되는 공약에 우리는 신기루를 보려고 했던건 아닐까?

25년의 긴 시간동안 우리 사회의 가장 아픈 곳을 연구해 주신 이 책의 저자 조은 교수님과

그외 연구자님들에게 감사드린다.

내가 한동안 잊고 있던 나의 사당동을 일깨워주고 어쩌면 나의 가족의 모습이 되었을지도

모를 그들의 25년이 막연하게만 여겼던 경제 민주화와 사회 복지 안전망의 실현에 밑그림을

그려주었다. 물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다만 정치인들의 정책부터 그들의

기본 가치관, 그들이 추구하는 사회상의 일면을 분석하고 판단할 안목은 공부할 수 있다.

그것으로 나의 투표권을 제대로 행사할 것이다. 그리고 나의 가족에 한정된 좁은 울타리

가 아닌 사회 전체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증세복지에 과감히 찬성할 것이다.

그들이 나눠준 파이를 놓고 내 것을 지키기위해 아둥바둥 할 것이 아니라 조금 더 많은

파이를 얻기위한 노력을 할 것이다. 그리고 모두가 웃을 수있는 재분배를 선택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데미안 - 전2권 (한글판 + 영문판) 더클래식 세계문학 컬렉션 (한글판 + 영문판) 10
헤르만 헤세 지음, 이순학 옮김 / 더클래식 / 2013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들이 성장하는 과정은 대개가 비슷비슷하다. 엄마의 안전한 자궁속에서 잔뜩 웅크린채 겁먹은 상태로 바깥 세상에 보내져 처음 보이는 것이 울음이다. 공포에 질린 울음. 난생 처음 경험하는 빛과 소리도 공포로 다가온다. 그 안에서 자신을 부르는 음성을 듣는다. 낯선 세계에 대한 첫 인식이다.

공포속에서 자신을 부른 따뜻한 음성에 약간의 마음을 놓는다. 그렇게 부모는 아이의 전부가 된다.

대개가 이렇게 세상을 맞는다. 물론 개중엔 그런 따뜻한 위로없이 세상으로 내팽개쳐지는 경우도 있다. 그들이 태어나자마자 겪는 공포와 아픔은 그 누구도 알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세상에 나온 우리들은 유년기 사춘기 청년기를 거치며 어른이 되고 세상에 맞서거나 등지거나 혹은 온 몸으로 받아들이면서 삶의 곡선을 그리며 살아간다. 그렇게 그려가는 저마다의 곡선이지만 아마도 어른의 문턱에서 느끼는 좌절과 아픔, 고통과 번뇌는 인식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비슷할 것이다.

 부모나 세상의 보호아래 뛰놀던 유년의 기억에서 그들이 쳐놓은 울타리에 의문을 갖기 시작할 무렵부터 내면에서 치열한 투쟁을 시작한다. 내 기억에 중학교에 들어가서 부터 세상을 삐딱하게 보기 시작했다. 내옆의 친구와 나의 차이가 성적과 성격, 외모와 호감도로 갈라지기도 하지만 부모의 직업, 사는 동네, 집에서도 차이가 나고 그것으로 적잖은 차별을 받을 수 있음을 알게 되면서 내 세계가 무척이나 초라함을 느꼈다.

 같은 세상속 서로 다른 세계가 공존할 수 있고 저마다 사회에 갖는 시선이 다를 수 있다는 것, 내겐 부조리지만 누군가에겐 정의고, 나의 정의가 누군가에겐 불순한 불평불만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을 깨달아가면서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다. 책속의 싱클레어만큼 치열한 번놔와 고민을 하며 자신의 세계를 깨뜨리고 나온 경험은 못했지만 나 역시 내 존재의 위치에 대해 무수한 생각의 시간을 보내긴 했던 것 같다. 아마도 이 책을 읽는 누구라도 싱클레어 시절의 자신을 떠올릴 것이다. 어쩌면 싱클레어와 비슷한 나이, 그 시절에 읽었다면 이책을 통해 나만의 데미안을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무슨 목적으로 술을 마시는 지는 우리 둘 다 모르고 있어. 하지만 네 마음속의 네 생명을 이루는 네 안에 있는 그것은 이미 알고 있어. 우리들 마음속에는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원하고 우리들 자신보다 모든 것을 더 잘해내는 누군가가 들어있어. 그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너에게 도움이 될 거야."

 다시 흔들리고 있는 싱클레어에게 데미안이 건네는 이 말한마디. 이런 말을 해줄 수 있는 누군가가 곁에 있다면 아무리 흔들리고 찢겨도 내 세계를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

 이미 싱클레어에게 이입되거나 데미안을 동경할 나이를 한참 지나 싱클레어로 자라고 있는 아이를 둔 부모 입장에서 읽은 데미안은 내게 수십권의 교육서에서도 얻을 수 없는 지혜를 주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전쟁을 겪고 치열한 삶을 살아온 헤세만큼은 아니겠지만 저만의 치열한 사춘기를 겪어낼  아들이 1차적으로 깨뜨릴 세계가 바로 부모임을 알았다. 누구나 어른이 되기위해서는 자기 부모의 세계관부터 무너뜨린다. 아마도 아이들이 겪는 최초의 부조리가 부모의 말과 행동이지 않을까? 작가의 살을 깎는 처절한 투쟁의 결실을 기껏 자녀 교육서로 내려버린 무지에 민망해지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난 데미안을 찾을 감성을 눈꼽만큼도 갖지 않은 평범한 엄마인 것을.

하지만 서문에서 작가가 말한

 - 난 진정, 내 안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그것을 살아 보려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마흔 두살의 작가가  토해놓은 이 처연함에 울컥했다. 거의 작가의 삶 절반의 나이에 그는 스스로에게 이토록 철저했다.

 어쩌면 나도 또 하나의 세계를 무너뜨릴 수 있을지 모른다. 내 안에 나보다 나를 더 잘알고 내가 원하는 것을 나보다 더 잘아는 그것이 인식되고 그것을 발현 시킬수 있다면 나는 또 다른 세계를 만날 수 있다.

 이책은 나와 아들이 함께 또 읽게 될 것이다. 이 책은 내가 그냥 주저앉아 버리고 싶을 때 그냥 편하게 고비를 넘기려는 유혹이 들때마다 꺼내볼지 모르겠다. 자기 자신을 찾기위해 그토록 치열하게 사유하고 고뇌한 '에밀 싱클레어'를 만나고 싶은 고비 고비가 어쩌면 내가 삶에 충실하고 있다는 지표가 될 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