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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 전2권 (한글판 + 영문판) ㅣ 더클래식 세계문학 컬렉션 (한글판 + 영문판) 10
헤르만 헤세 지음, 이순학 옮김 / 더클래식 / 2013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들이 성장하는 과정은 대개가 비슷비슷하다. 엄마의 안전한 자궁속에서 잔뜩 웅크린채 겁먹은 상태로 바깥 세상에 보내져 처음 보이는 것이 울음이다. 공포에 질린 울음. 난생 처음 경험하는 빛과 소리도 공포로 다가온다. 그 안에서 자신을 부르는 음성을 듣는다. 낯선 세계에 대한 첫 인식이다.
공포속에서 자신을 부른 따뜻한 음성에 약간의 마음을 놓는다. 그렇게 부모는 아이의 전부가 된다.
대개가 이렇게 세상을 맞는다. 물론 개중엔 그런 따뜻한 위로없이 세상으로 내팽개쳐지는 경우도 있다. 그들이 태어나자마자 겪는 공포와 아픔은 그 누구도 알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세상에 나온 우리들은 유년기 사춘기 청년기를 거치며 어른이 되고 세상에 맞서거나 등지거나 혹은 온 몸으로 받아들이면서 삶의 곡선을 그리며 살아간다. 그렇게 그려가는 저마다의 곡선이지만 아마도 어른의 문턱에서 느끼는 좌절과 아픔, 고통과 번뇌는 인식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비슷할 것이다.
부모나 세상의 보호아래 뛰놀던 유년의 기억에서 그들이 쳐놓은 울타리에 의문을 갖기 시작할 무렵부터 내면에서 치열한 투쟁을 시작한다. 내 기억에 중학교에 들어가서 부터 세상을 삐딱하게 보기 시작했다. 내옆의 친구와 나의 차이가 성적과 성격, 외모와 호감도로 갈라지기도 하지만 부모의 직업, 사는 동네, 집에서도 차이가 나고 그것으로 적잖은 차별을 받을 수 있음을 알게 되면서 내 세계가 무척이나 초라함을 느꼈다.
같은 세상속 서로 다른 세계가 공존할 수 있고 저마다 사회에 갖는 시선이 다를 수 있다는 것, 내겐 부조리지만 누군가에겐 정의고, 나의 정의가 누군가에겐 불순한 불평불만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을 깨달아가면서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다. 책속의 싱클레어만큼 치열한 번놔와 고민을 하며 자신의 세계를 깨뜨리고 나온 경험은 못했지만 나 역시 내 존재의 위치에 대해 무수한 생각의 시간을 보내긴 했던 것 같다. 아마도 이 책을 읽는 누구라도 싱클레어 시절의 자신을 떠올릴 것이다. 어쩌면 싱클레어와 비슷한 나이, 그 시절에 읽었다면 이책을 통해 나만의 데미안을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무슨 목적으로 술을 마시는 지는 우리 둘 다 모르고 있어. 하지만 네 마음속의 네 생명을 이루는 네 안에 있는 그것은 이미 알고 있어. 우리들 마음속에는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원하고 우리들 자신보다 모든 것을 더 잘해내는 누군가가 들어있어. 그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너에게 도움이 될 거야."
다시 흔들리고 있는 싱클레어에게 데미안이 건네는 이 말한마디. 이런 말을 해줄 수 있는 누군가가 곁에 있다면 아무리 흔들리고 찢겨도 내 세계를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
이미 싱클레어에게 이입되거나 데미안을 동경할 나이를 한참 지나 싱클레어로 자라고 있는 아이를 둔 부모 입장에서 읽은 데미안은 내게 수십권의 교육서에서도 얻을 수 없는 지혜를 주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전쟁을 겪고 치열한 삶을 살아온 헤세만큼은 아니겠지만 저만의 치열한 사춘기를 겪어낼 아들이 1차적으로 깨뜨릴 세계가 바로 부모임을 알았다. 누구나 어른이 되기위해서는 자기 부모의 세계관부터 무너뜨린다. 아마도 아이들이 겪는 최초의 부조리가 부모의 말과 행동이지 않을까? 작가의 살을 깎는 처절한 투쟁의 결실을 기껏 자녀 교육서로 내려버린 무지에 민망해지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난 데미안을 찾을 감성을 눈꼽만큼도 갖지 않은 평범한 엄마인 것을.
하지만 서문에서 작가가 말한
- 난 진정, 내 안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그것을 살아 보려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마흔 두살의 작가가 토해놓은 이 처연함에 울컥했다. 거의 작가의 삶 절반의 나이에 그는 스스로에게 이토록 철저했다.
어쩌면 나도 또 하나의 세계를 무너뜨릴 수 있을지 모른다. 내 안에 나보다 나를 더 잘알고 내가 원하는 것을 나보다 더 잘아는 그것이 인식되고 그것을 발현 시킬수 있다면 나는 또 다른 세계를 만날 수 있다.
이책은 나와 아들이 함께 또 읽게 될 것이다. 이 책은 내가 그냥 주저앉아 버리고 싶을 때 그냥 편하게 고비를 넘기려는 유혹이 들때마다 꺼내볼지 모르겠다. 자기 자신을 찾기위해 그토록 치열하게 사유하고 고뇌한 '에밀 싱클레어'를 만나고 싶은 고비 고비가 어쩌면 내가 삶에 충실하고 있다는 지표가 될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