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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것들을 사랑하기까지 ㅣ 전이수 그림에세이 8
전이수 지음 / 헤르몬하우스 / 2026년 7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어린 소년이 그려낸 순수하고 맑은 그림에 감동했었네요.
여덟 살 나이에 첫 그림책을 펴낸 이후, 벌써 10년의 세월이 흘렀네요.
《당연한 것들을 사랑하기까지》는 전이수 작가의 여덟 번째 그림 에세이라고 하네요.
우선 사진 속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이제는 앳된 모습은 사라지고 의젓하고 듬직해졌네요.
늘 그렇듯이 이번에도 따뜻하고도 아름다운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네요.
"당연한 것은 더 가까이에서 보아야 한다.
당연한 것은 더 가까이에서 보아야 하고,
문제는 더 멀리서 보아야 한다.
You have to look at the Ordinary Up Close.
You have to look at the Ordinary things up close,
and the problems from far away."
(72-73p)
우리는 늘 곁에 있어서 혹은 익숙하다는 이유로 가장 소중한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곤 해요.
저자는 30일간의 여행 속에서 만난 풍경과 삶의 조각들을 통해 잊고 지냈던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금 일깨워주고 있네요.
여기에 담긴 모든 그림과 글들 그리고 사진들은 캠핑카로 유럽 여러 나라의 마을들을 둘러본 30일 동안의 여정이며, 저자는 그걸 '도화여정'이라고 부른대요. 하루에 한 작품씩, 30일 동안 30점의 작품을 그려냈고, 그림과 글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보고 느꼈는지를 이야기하고 있어요.
스위스 어느 산골짜기 마을에서 그렸다는 <운명에 대하여>라는 그림을 보면, 파란 하늘 아래 분홍색으로 물든 산 꼭대기에서 쏟아지는 폭포수가 무척 포근하게 느껴져요. 사진을 보니 그 산은 쑹덩 잘라낸 듯 암석이 드러나 있어서 절벽면을 타고 물줄기가 흘러내리고 있네요. 거칠고 울퉁불퉁한 암석의 모습을 예쁜 분홍색으로 표현한 거예요. 어떻게 바라보느냐, 그 시선에 따라 세상은 달라지는 것 같아요. 누군가는 차가운 바위를 드러낸 산의 풍경이 삭막해보였을 수도 있고, 물줄기를 바라보며 시원하다고 느꼈을 수도 있을 거예요. 본질은 같지만 그것에 대한 반응이 다를 뿐인 거죠.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곧 우리의 세상이 되는 거예요. 저자는 이 풍경을 바라보며 '운명'에 대한 생각을 들려주고 있어요. 당장 10분 뒤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지금 우리는 당연한 것들을 사랑하며 감사할 수 있네요. 내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건 어렵지 않지만 종종 잊을 때가 많네요. 그동안 잊거나 알아차리지 못했던 존재들을 발견하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게 만드는 시간이었네요.
"운명에 대하여
사람들은 운명이 바다 너머에서 찾아오는 거대한 파도인 줄 안다.
그래서 멀리서 파도가 칠 때마다 두려워하고, 날씨를 탓하며 종종걸음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운명은 밖에서 오는 바람이 아니라,
햇볕에 비춰, 저 담장 너머에 있는 벚나무의 꽃잎이 내 얼굴에 와닿는 것,
길을 걷다 우연히 눈을 마주쳤을 때, 서로 미소 짓게 되는 것.
이 대지에 자란 나무의 벚꽃잎이 먼 길을 떠나 저 높은 산봉우리에도 뿌려지게 되는지,
우리는 그 바람과, 태양과 흙, 그리고 벌들이 어떻게 그런 운명을 만들어 내는지,
알 수 없지만, 내가 매일 어떤 마음으로 땅을 딛고,
어떤 눈빛으로 사람을 보고, 어떻게 발걸음을 옮기는지,
그 사소한 결들이 모여 그 벚꽃잎의 엷은 결이 된다는 것을,
운명은 나를 덮쳐서 거부할 수 없는 파도가 아니다.
내가 걷는 길 뒤로 생겨나는, 해가 기울면 때론 주물러지고 늘어났다가,
다시 해가 떠오르면,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는 그림자와 같으니,
그러니 두려워 말고 매일의 발걸음을 다정하게 내디뎌 가는 것이 운명의 길이다.
내가 나의 발걸음을 사랑하기 시작할 때,
운명은 비로소 나의 가장 든든한 길동무가 되어 줄 것이다."
(104-105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