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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좋아하세요... - 미술관장 이명옥이 매주 배달하는 한 편의 시와 그림
이명옥 지음 / 이봄 / 2016년 12월
평점 :
시를 좋아하세요...
누군가 제게 묻는다면 그 순간 가슴이 두근거릴 것 같아요.
몰래 감추고 있던 속마음을 들킨 것처럼.
그만큼 '시'는 제게 뭔가 특별한 감성을 자극하는 스위치 같아요. 딸깍하면 켜지고 딸깍하면 꺼지는.
그러나 남들에겐 제가 시를 좋아한다는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아요.
사람들은 누가 무엇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자꾸만 얼마나 좋아하는지 확인하려 들어요.
좋다는 감정을 수치로 표시할 수 있나요. 설사 그렇다해도 무엇을 위해서 혹은 누구를 위해서 확인해야하는지 모르겠어요.
좋은 건 그냥 좋은 거예요, 저에겐.
만약 누군가 저를 위해서 매주 시 한 편을 배달해준다면, 아마도 굉장히 행복할 것 같아요.
매주 시 한 편이 배달되고 누군가 그 시 한 편을 받는다니, 상상만으로도 너무 멋지지 않나요?
이런 낭만적인 이벤트를 한 사람이 바로 이 책의 저자 이명옥님이에요.
어느날 우연한 계기에 한 사람을 위해 일주일에 한 편씩 시를 추천하는 '시 큐레이션 서비스'를 했대요. 큐레이션 서비스는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기획하는 큐레이터처럼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한 개인의 취향 및 목적을 분석해서 적절한 콘텐츠를 제공해주는 맞춤형 서비스라고 한대요. 그러니까 수많은 시 중에 오직 그 사람을 위한 한 편을 골라내는 정성스런 작업인 거죠. 미술관장인 저자가 어떤 계기로 매주 한 편의 시를 배달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몇 달이 지나니까 힘들면서도 보람을 얻었다고 해요. 매주 시 한 편과 감상평을 주고받으면서 상대방의 생각과 마음을 알게 되었던 경험 덕분에 그간 시에 대해 나누었던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펴내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다고 해요. 시작은 단 한 사람을 위한 것이었지만 그 사람이 어쩌면, 시 곁에 가까이 다가가기를 원하는 모든 시 애호가들을 대변하는 상징적인 존재라고 말이죠.
그래서 이 책이 저한테 배달되었네요.
이번에는 시뿐만 아니라 그림도 함께.
이 책을 보면서 시와 그림이 이렇게 통하는구나, 라는 걸 느꼈어요.
시와 그림은 처음 봐도 느낄 수 있어요. '아, 너로구나. 네가 이렇게 내 앞에 왔구나.'
책 속에 담긴 시 중에 하나를 소개할게요. 왜냐하면 저한테는 가장 좋았던 시라서.
이탈한 자가 문득
- 김중식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대낮보다 찬란한 태양은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 몸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보았다
단 한 번도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 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어떤가요. 이 시를 읽으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당신에게 와닿는 시였나요.
칠레 작가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소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에 시인과 우편배달부는 이런 대화를 나눠요.
"자네는 내가 마틸데를 위해 쓴 시를 베아트리스에게 선사했어."
"시는 쓰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것이에요!" (22p)
그러니까 시는 읽는 사람의 것, 그림은 보는 사람의 것이에요.
덕분에 저는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아름다운 시와 그림의 주인이 되었어요. 뭔가 뿌듯해지네요.
시를 좋아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