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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를 놓는 소년 ㅣ 바다로 간 달팽이 24
박세영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23년 10월
평점 :
병자호란에 노예로 끌려간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름 없이 사라져간 그들의 이야기를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소설을 통해 새롭게 만날 수 있어요.
《수를 놓는 소년》은 박세영 작가님의 장편소설이자 2023년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이라고 하네요.
저자는 청나라가 조선을 침략했던 병자호란 시기에 힘없는 백성을 주인공으로 선택했어요. 어린 소년 윤승은 심양으로 끌려와 채찍질을 당하며 노예 생활을 하고 있어요. 채찍을 맞을 때마다 벌어진 상처만큼이나 고통스러운 기억들이 윤승을 괴롭히고 있어요. 청나라 병사들이 고향 안주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부모님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그날과 압록강 앞에서 놓쳐버린 누나의 얼굴이 떠올랐던 거예요.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여종과 부딪쳐 진씨 부인의 비단옷에 얼룩이 생긴 것을 윤승이 수를 놓아 얼룩을 지우면서 곤경에 빠진 아이를 구하게 된 거예요. 수를 놓는 재주 덕분에 윤승은 새로운 기회를 얻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지네요. 절망적인 순간에 버텨낼 수 있는 힘은 무엇일까요. 비록 어리지만 윤승은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가슴 아픈 역사의 장면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아름다운 전통 자수라니, 뭔가 아름답고도 슬프네요. 서 사부는 윤승에게 왜 수를 놓느냐고 묻는데, 그 질문을 듣고 큰 충격을 받게 돼요. 무엇을 위해 수를 놓는가. 한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이 질문 덕분에 윤승은 자신의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깨닫게 돼요. 또한 수를 놓는 일이 그저 손으로 하는 재주라면 노예가 하는 허드렛일과 다를 게 없지만 마음을 다한다면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귀한 일이 되는 거예요. 한 땀 한 땀 수를 놓아야 하는 자수를 통해 윤승은 어린아이에서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자신은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고 꿈꾸는지를 알아야 자신이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정할 수 있어요. 가슴 아픈 시대에 태어나 무참히 짓밟혔던 백성들, 어쩌면 그들 중 하나였을 어린 소년의 이야기라서 굴하지 않는 용기와 아름다운 꿈을 배울 수 있었네요. 시대는 달라졌지만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용기는 변하지 않았어요. 지금과 다른 삶을 원한다면 스스로 해내야만 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