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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지에서 생긴 일
마거릿 케네디 지음, 박경희 옮김 / 복복서가 / 2023년 7월
평점 :
《휴가지에서 생긴 일》은 마거릿 케네디 작가의 아홉 번째 소설이라고 해요.
산뜻한 책표지와 제목이 8월과 잘 어울려서 읽고 싶었던 책인데 첫 장을 펼치자마자 예측은 빗나가고 말았네요. 반전의 스토리가 주는 치명적인 교훈, 이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들 속에서 공감되는 신기한 경험이었네요. 고루한 설교가 통렬한 비판으로 바뀌는 마법이랄까요.
1947년 8월, 콘월 북부의 펜디잭만에서 갑자기 절벽 한쪽이 크게 무너져내리면서 동쪽 곶에 세워져 있던 저택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요. 개인 소유의 그 저택은 게스트하우스로 바꿔 운영되던 팩디잭 호텔이었고,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어요. 비극적인 사고가 벌어진 한 달 뒤 시점에서 교구 신부님은 고인이 없는 장례식 설교를 준비하고 있어요. 사고가 있던 그날 밤, 엄청난 포효와 굉음을 듣고 마을 사람들이 달려갔지만 호텔과 건물이 있어야 할 자리에 무너진 절벽이 만 전체를 메우고 있었어요. 사고가 난 첫날밤에 생존자들은 교회로 찾아왔고 도저히 믿기 힘든 이야기를 들려줬어요. 이 소설은 사건이 발생하기 일주일 전으로 돌아가서 8월 16일 토요일부터 22일 금요일까지, 호텔에 있었던 스물네 명의 인물들을 보여주고 있어요. 호텔 주인인 시달 씨 부부와 세 아들, 휴가를 위해 놀러온 사람들과 그들을 위해 일하는 호텔 종업원들의 관계 속에는 묘한 이질감과 불편한 감정들이 뒤섞여 있어요. 팬디잭 호텔 라운지에서 사람들이 토론하는 내용은 당시 사회의 분열과 대립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어요. 사람의 목숨값이 다를까요. 누구는 꼭 살아야 하고, 누구는 죽어도 괜찮다는 식의 판단을 누가 할 수 있나요. 절벽이 무너진 건 불가항력적인 일이지만 절벽 아래 건물이 위험하다는 걸 인지했다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어요. 아무리 위험하다고 경고해도 그걸 믿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겠지요. 복잡한 듯 보이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 추악한 내면의 총집합이에요.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통해 작가는 우리에게 막을 수 있는 재앙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드네요.
"더 나은 사람들이 누구죠, 페일리 씨? 부자?
그들이 어째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낫다는 거죠?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나요?
큰 차와 밍크코트가 사람을 더 낫게 만드나요......?"
"...... 이 나라 사람들이 인류를 창조하신 신의 목적을 무시한다면
신은 더 이상 그들을 필요로 하지 않으실......"
"...... 우리는 모든 빈민 출신이 단지 세상에 태어났다는 사실만으로
칭찬받을 만하다는 생각에 감염되도록 허용했습니다. ... 해로운 망상이죠!
정말 공정한 사회라면 자신이 벌어들인 만큼만 정확히 분배받을 테죠." (422p)
"나는 인간이 살아남을 거라 생각하지 않아요. 구조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거든요.
그것이 바로 우리가 지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진실에 대한 일종의 도덕불감증입니다.
... 우리가 겸손해질 수 없기에 문명 이후의 문명은 먼지가 되어버렸어요."
"그래서 당신이 종일 골방에만 틀어박혀 있는 거야?"
"그렇지. 그래서 내가 골방에 틀어박혀 있는 거야.
'태어났지만 죽어야 하고, 생각하지만 오류를 범할 뿐이다.'
모든 사람이 이 사실을 나만큼 명확히 직시한다면 다들 골방에 틀어박힐 거야.
하지만 다들 아주 바쁘고 행복과 안전을 추구하느라 여념이 없지.
덧없는 노력이야. 당신들은 아무것도 아니고 스스로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당신들이 서로의 존재를 진정으로 믿는다면 서로를 위해 뭔가를 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렇지 않아. 극소수의 사람만이 자신 외에 다른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믿어. 아주 소수만이.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조금 성장하다 죽는,
뭐 그런 일을 시작하는 것뿐이야." (431-432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