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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밍 사회 - 캔슬 컬처에서 해시태그 운동까지 그들은 왜 불타오르는가
이토 마사아키 지음, 유태선 옮김 / 북바이북 / 2023년 3월
평점 :
"플레이밍 flaming ('활활 타오른다'는 의미로 비난, 비방 등의 글이
빠르게 올라오는 것을 말한다. 원서에서는 '염상 炎上'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한국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플레이밍'으로 번역했다 - 옮긴이)이라는 말이
'인터넷상에서 벌어지는 도 넘는 비방'의 의미로
쓰이게 된 것은 2005년경부터다.
... 플레이밍은 오늘날 더는 특이한 현상이 아니다.
오히려 사회를 충실하게 비추는 이른바 사회의 거울이 되었다.
그렇다면 거기에 비치는 모습으로부터
사회 그 자체를 분석하는 일이 더욱 중요하지 않을까."
《플레이밍 사회》, 이토 마사아키, 4-5p
《플레이밍 사회》는 이토 마사아키의 책이에요.
저자는 아이치슈쿠도쿠대학교 현대사회학부 조교수 등을 거쳐 2015년부터 세이케이대학교 문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전공은 미디어론이라고 해요. 이 책이 나오게 된 과정을 보면 2020년 7~11월 호에 걸쳐 잡지 <중앙공론>에 연재한 원고를 바탕으로 새롭게 집필했다고 하네요. 그래서 이 책에서는 몇 가지 시사적인 사례에 꼭 맞는 구체적인 사례 연구를 통해 이 현상을 둘러싼 사회적 의미와 문맥을 밝히고 있어요.
현대에는 많은 사회적 갈등이 이른바 좌우 대립, 좌파와 우파의 이념 대립이라는 틀 속에서 일어나고, 플레이밍 현상 또한 한쪽 집단이 다른 집단을 비난하거나 공격하면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요. 저자는 이 현상을 단순히 좌우 대립 구도로 환원하기에는 개운치 않은 무언가가 있고, 그것이 사람들을 불타오르게 하는 근원일지도 모른다는 하나의 견해로서 신자유주의라는 개념을 편입시키고, 약간 다른 시각에서 문제를 살펴보고 있어요.
먼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생겨난 다양한 갈등과 분쟁 중에서 자숙 경찰을 언급하고 있어요. 정부가 외출, 이동, 점포 영업 등을 자제할 것을 요청했으나 이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엄격히 단속하고자 일반인 사이에 벌어진 자경단 같은 움직임이 빈번히 발생했는데 주목할 만한 사건은 파친코 가게라는 '적'을 지목함으로써 '동지'인 오스카부민의 갈채를 받았다는 거예요. 2000년대 후반 이후 재일 교포를 향한 혐오 발언에서도 비슷한 논리를 읽을 수 있어요. 이처럼 결단주의적 포퓰리즘 정치에 대한 지지가 올라가고, 특히 신자유주의 풍조를 견인한 정치인이 큰 인기를 끈 이유는 뭘까요. 거기에는 결단주의적 정치가로 구현되는 강자에 대한 지향이 강하게 보이는데, 그 이면에는 자신을 약자로 인정하려는 태도가 있어서 다른 사람을 약자로 여기고 배려하지 않게 된 거예요. 자숙 경찰은 거기에서 초래된 상징적인 존재였고, 신자유주의적인 약육강식의 논리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해서 전체주의 논리나 봉건주의 논리로 되돌아갈 수 없으니, 저자는 시민의 책무로서 '누가 약자인가'를 생각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네요.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은 "우리는 어떤 행위가 범죄이기 때문에 그것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비난하기 때문에 범죄인 것이다" (52p)라고 논한 적이 있는데, 이것은 범죄, 일탈 행위, 사회 문제 등이 반드시 객관적으로 존재하지는 않으며 사회 측의 압력을 통해 구축되어간다는 입장과 관련이 있어요. 오늘날 소셜 미디어 공간은 평가를 위한 경쟁을 벌이며 시민 재판인 플레이밍을 통해 감시와 제재를 가하고 있어요. 해시태그 운동의 근원은 트위터 보급이 급속히 진행된 2009년 유럽 주변에서 잇따라 일어난 두 민주화 운동에서 근원을 찾을 수 있어요. 원래 해시태그(#)는 소셜 미디어에 올라온 글을 범주화하기 위한 라벨로 사용됐는데, 오늘날에는 사회 운동의 슬로건으로 이용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어요. 사람들은 특정 해시태그와 함께 자기 생각을 올림으로써 많은 사람의 생각과 결부되어 전체적으로 하나의 운동체가 구성되고 있어요. 다만 단순함에 휩쓸리지 말고 문제의 복잡함을 이해하기 위해 충분히 공부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어요. 일본 사회에서 정치적인 플레이밍으로 인한 타격은 좌파도 우파도 아닌 재일 교포가 가장 심각한 피해를 입는다는 것이 씁쓸한 현실인 것 같아요. 유명인을 대상으로 한 캔슬 컬처에 대해서는 아무리 합리적이고 일관된 행동일지라도 무조건 수긍되어선 안되고, 최후의 수단으로 이용되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인간 사회가 반드시 합리적이지도 일관적이지도 않기 때문이에요. 결국 집합적 열광의 기세에 이끌려 수많은 모순에 빠지지 않으려면 자유로운 입장에서 적절한 비판과 논의가 필요해요. 이러한 논점은 플레이밍 사회에서 신자유주의라는 연결고리를 계속 유지하며 발전시켜나갈지를 완곡하게 묻는 질문이기도 해요. 나쁜 것과 좋은 것, 긍정과 부정이라는 양가택일 대신 다양한 측면을 들여다보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어요. 우리 사회도 논의해봐야 할 내용이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