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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리트의 껍질
최석규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12월
평점 :
당신은 누구인가요.
과거의 기억을 잃은 채 살아가는 한 남자를 통해 그 기억 너머 인간 내면을 들여다보게 되네요.
《마그리트의 껍질》은 최석규 작가님의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이에요.
서른두 살의 강규호는 불의의 사고로 최근 2년간의 기억이 칼로 도려낸 것처럼 깨끗이 사라졌어요. 한강 하류의 갈대밭에서 발견될 당시에 그는 골절과 외상으로 의식 불명 상태였어요. 다친 몸은 회복됐지만 머릿 속 기억은 돌아오지 않아서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모르고 있어요. 병원에서 소개받은 정신과 의사 박석준은 부분 기억상실의 일종인 역행성 상실증이라고 진단하면서, 사고 전 특정 기간을 기억하지 못하는 건 생존을 위해 뇌에서 공포의 기억을 삭제해버린 일종의 자기방어 기제라고 설명했어요. 그리고 '기억 노트'라고 적힌 노트 한 권을 건네며 일상에서 떠오르는 것은 뭐든 써보라고 했어요.
기억 상실을 소재로 한 소설, 드라마, 영화를 보면서 늘 궁금했어요. 사라진 기억을 꼭 찾아야 할까라는... 어린 시절에 의도적으로 기억을 지우려고 노력한 적이 있거든요. 트라우마에 대한 회피 반응? 아마 그랬던 것 같아요. 세월이 흐르고 마음이 단단해지고 나니, 더 이상 그 기억이 나를 괴롭힐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네요. 나쁜 기억조차도 살아온 흔적이며 나를 구성하는 일부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다행인 거죠. 만약 그 기억이 엄청난 트라우마였다면 견디지 못했을 테니까요. 내가 강했던 게 아니라 기억의 영향력이 약했을 뿐, 그냥 운이 좋았던 거예요. 그러니 누군가에겐 사라진 기억을 찾는 일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연일 수도...
과연 강규호는 사라진 기억 속에서 무엇을 찾게 될까요. 기억을 찾기 위한 여정,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아간다는 건 꽤나 용기가 필요한 일인 것 같아요. 사과의 껍질을 벗겨내다가 알맹이까지 다 도려낼 수도 있으니까요. 우리는 껍질을 보면서 전부인 듯 착각하고, 그 껍질을 벗겨내면 알맹이만 진짜라고 오해하는 게 아닐까요. 결국 기억도 마찬가지, 당신의 기억이 당신은 아니라는 것. 그럼에도 당신은 기억을 통해 존재하며, 살아가겠지요. 초현실적인 그림이 매우 적나라하게 현실을 보여주고 있듯이, 마그리트의 껍질은 한 인간의 기억 속 진실을 밝혀내고 있네요.
"혹시 마그리트라고 아세요?"
"르네 마그리트요?"
"네."
"좋아하는 화가 중 한 명이에요. 왜요?"
...
"이게 제일 유명한 사과 그림이에요."
'이것은 사과가 아니다 (This is not an apple).' 제목과 달리 커다란 사과 그림이었다.
사과 표면에는 쇠창살로 막힌 작은 창이 뚫려 있고 안에 새 한 마리가 들어 있었다.
"마그리트는 이 그림을 완성한 후 막스 에른스트라는 친구 화가에게 줬어요.
사과 속의 새는 막스가 즐겨 그리는 새를 그려 넣은 거예요. 여기 아래 글귀가 보이죠?
이건 막스가 직접 적어 넣은 거래요.
'이 그림은 마그리트가 그린 그림이 아니다 (Ceci n'est pas un Magritte).'라고. ... " (84-88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