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연명의 유산
장웨이 지음, 조성환 옮김 / 파람북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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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연명은 누구인가.

제가 알고 있는 도연명은 '자연을 사랑한 전원시인'이라는 설명이 전부예요.

시인으로서 도연명을 이해하려면 그의 시를 전부 읽어보아야 가능할 텐데, 그럴 기회가 없었네요.

중국의 대표 시인 이백, 두보와 함께 거론되는 도연명의 진가가 이 책을 통해 드러난 것 같아요.

<도연명의 유산>은 현대 중국의 대표 지성 장웨이가 쓴 책이에요. 저자 장웨이는 국제적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아 중국과 해외에서 70여 차례 문학상을 수상했고,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현대 중국의 대표 지성이라고 하네요. 원래 이 책은 도연명의 시가 예술에 대한 세미나 토론 과정에서 강연 녹음을 정리한 원고를, 『도연명의 유산 (陶淵明的遺産)』(중화서국, 2016)으로 출간한 것이라고 해요. 

바로 그 책이 코로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왔다는 건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책의 구성은 도연명이 남기고 간 유산을 핵심 키워드로 뽑았으며, 127 항목이라는 전체 키워드가 합쳐져 도연명의 진면목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하네요. 도연명 저작에 관한 고증이나 해석 연구와 같은 학술 논문이 아닌 한 독자의 감상이자 독서의 결과물이라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에요. 저자는 도연명의 삶과 그의 문장들에 관하여 일절 미화하거나 과정하지 않고, 도연명의 세계를 이야기하고 있어요. 

우선 도연명이 살았던 위진(魏晉)을 약육강식의 정글로 표현하고 있어요. 중국 역사에서 위진 시기는 국가 분열과 혼란으로 가장 비참하고 고통스러웠던 시기였기에 야만과 피비린내 나는 정글의 법칙이 통용되는 시대였다고 해요. 그러니 위진의 지식인들은 정글 속에 살아남기 위한 선택을 했던 거예요.  정글의 법칙에서 생존 전략은 무리 짓기가 기본인데, 도연명은 이를 거부했어요. 저자는 그 과정을 '탈출'이라고 표현해요. 도연명은 탈출 과정에서 자기를 완성했으며 문명의 역량을 발휘했어요.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도연명의 작품은 이백과 두보에 비하면 십분의 일 정도에 불과하지만 그 역량은 거대하다는 거예요. 

그 이유는 도연명이 완벽하게 위대한 인물이 아닌 지극히 평범하고 소박한 인물이었기 때문이에요. 끝없는 고난과 실패, 좌절을 거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나아갔기 때문이에요. 전원시인의 최후는 굶주려 죽은 비참한 운명이었지만 그는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위대한 유산을 남겼어요. 

도연명의 중년 이후 작품은 활기찬 전원에 대한 묘사와 서술이 매혹적이라고 해요. 대표적인 「도화원기」같은 작품에서는 새로운 감정 표현이 드러나며 통달과 통쾌의 길을 보여줬다고 평가받고 있어요. 도연명의 '도화원'을 서구의 유토피아와 대응하여 생각해보면 시인이 묘사한 자연환경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어요. 도화원은 시인의 뛰어난 창작물이며 자연계에 대한 일종의 허구라는 거예요. 창조자의 기술로 사람들이 동경하는 낙원이 되었으니, 가장 성공적인 허구이며 예술과 사상의 힘이라고 볼 수 있어요. 궁핍한 심신의 처지에서 도연명은 자신의 몽상을 도화원이라 명명했던 거죠. 난세에서 모두 벗어날 수 없는 고통에 직면할 때 도연명은 '버티는' 사람이었어요. 

저자가 시인에 대해 긍정적 판단을 내린 요인은 정글의 법칙에 대해 과감하게 '아니오'라고 말한 부분이에요. 이것이 바로 '버팀'이고 모든 것을 의미한다는 거죠. 결국 도연명이 우리에게 남겨준 유산은 인간의 존엄과 자유이며, 자연회귀와 생명의 본질을 추구하는 사색이라고 할 수 있어요. 다만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도연명의 '버티기'는 목표가 아닌 과정일뿐이라는 거예요. 위진 시대에 세속적 의미의 위인이 아닌 그를 주목하는 건 아웃사이더로서의 존재감이며 그의 시를 통해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어요. 지극히 소박하고 절실한 도연명의 심정이 고스란히 담긴 문장들이 당대가 아닌 후세에 인정받은 이유를 알 것 같아요. 

<도연명의 유산>은 현대인들에게 도연명이란 시인과 예술이 가진 의미를 가장 인간적으로 설명해주고 있어요. 조금 더 단순하고 소박하게, 이것은 삶의 절대 진리가 아닌 삶의 방식 중 하나라는 것. 이것이 도연명의 세계가 우리에게 건네는 선물인 것 같아요.


"항상 말한다. 오뉴월에 북쪽으로 난 창 밑에 누워 있는데, 

시원한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면, 

스스로 옛날 태평성대의 제왕인 복희씨 이전의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 든다."

   _ 「아들 엄 등에게 주는 글」 ( 132p)


"이미 스스로 마음이 육신의 부림 받도록 하였거늘

어찌 근심하여 홀로 슬퍼만 하리오." 

   _ 「돌아가자」   (13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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