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두각시 조종사
요슈타인 가아더 지음, 손화수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짧은 메모나 메시지 말고 손글씨로 쓰는 편지.

편지를 써본 지가 언제인지...

어쩌면 우리가 잃어버린 건 편지라는 아날로그 감성만은 아닌 것 같아요.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대상.


<꼭두각시 조종사>는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태어난 요슈타인 가아더 작가의 장편소설이에요.

북유럽 소설이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뭔가 혹한기를 견뎌내는 극한의 감정이 깔려 있는 것 같아요.

주인공 야코브 야콥센은 60대의 언어학자예요. 

이 소설은 주인공이 한 여인에게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편지로 적어 보내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야코브의 독백에 가까워요.

늘 그렇듯이, 아웃사이더이자 외톨이로 살아 온 그가 왜 하필 그 여인에게 편지를 보냈을까요.


2013년 5월, 스웨덴 고클란드 섬

친애하는 앙네스 씨. 이제 당신에게 편지를 쓰려 합니다.

나를 기억하시는지요?

   (9p)


소설의 첫 문장이자 편지의 첫 구절이에요.

모든 이야기를 다 듣고나서, 이 부분을 다시 읽으니 마음 한 켠이 시큰하네요. 

야코브는 할링달의 올 출신인데, 오슬로로 이사 온 1970년대 초부터 장례식을 찾아 다니기 시작했대요.

어느 날 야코브는 옛 스승인 에리크 룬딘의 장례식에 참석했고 그곳에서 앙네스를 만났어요. 

사실 앙네스를 처음 만난 건 그녀의 여동생 장례식이었고, 앙네스의 사촌인 트룰스와 그의 아내인 리브베리트 룬딘, 그들의 두 딸 투바와 미아가 참석했었죠. 그다음이 에리크 룬딘의 장례식이에요. 그래서 룬딘 가족을 중심으로 편지를 쓰게 된 거고요. 그로부터 10년 후에 만났고, 다시 일 년 후에 또 만났어요. 물론 그 만남의 장소는 모두 장례식장이었어요.

대개 장례식을 치르고 나서 추모식을 하는데, 유족이나 지인들이 고인과의 추억을 이야기하는 시간이에요.

야코브는 바로 그 추모식에서 화려한 입담을 뽐내곤 했어요. 그런데 에리크 룬딘의 추모식에서 스승과의 일화를 들려줄 때는 유족들이 의심의 눈길을 보냈어요.

뭔가 일이 꼬였다고 표현해야 할까요. 그뒤로 다른 장례식장에서도 계속 룬딘의 유족과 마주치게 됐어요. 그들은 야코브를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했어요. 단 한 사람, 앙네스만 빼고. 그녀는 크게 망신을 당한 야코브가 그 자리를 벗어나려고 할 때 추모식에 남아달라고 거의 애원하듯 부탁했어요. 


왜 당신은 나를 붙들었을까요? 

당신은 무슨 이유로, 수치심을 견디지 못해 그곳을 벗어나려는 나를 붙들었는지요?

어디서 시작하면 될까요?

... 회상을 통해 과거를 돌아보면, 결국 내가 소년으로서 경험했던 일까지도 짚어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신도 현재의 나를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14p)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라지만 우리는 결국 보이는 대로 판단하는 것 같아요. 오해와 편견은 어쩔 수 없는 일이죠.

그러나 그 대상이 나라면 어떨까요.

주인공 야코브를 이해하는 일은 쉽지 않아요. 중간에 잠시 섬뜩함을 느꼈다는 사실을 말해야겠네요. 네, 정말 이상한 사람이라고 느꼈어요. 편지가 아니었다면, 그가 내 앞에서 이런 고백을 들려줬다면 끝까지 듣지 못했을 거예요. 아마 당장 도망쳤겠죠. 이래서 편지를 썼던 거구나, 바로 납득이 되더군요.

그가 언어의 뿌리를 연구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나 절친 펠레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된 것, 그리고 장례식을 찾는 습관이 생긴 것도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차마 이해한다고는 말 못하겠어요. 누가 그를 이해할 수 있을까요. 오직 펠레, 공식적인 이름은 페더 엘링센 스크린도 씨뿐일 거예요. 

다행스러운 건 앙네스 베르그 올센을 만났고, 그녀에게 편지를 쓸 수 있다는 거예요.


<꼭두각시 조종사>는 야코브가 앙네스에게 보내는 편지예요. 그러나 그 편지를 다 읽고나면 스스로에게 묻게 될 거예요.

세상에 단 한 사람이라도 나를 알아주고 이해해주는 이가 있나요?

인생 이야기는 그 사람과 함께 쓰여질 테니...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경계선은 죽음과 삶 사이를 가르는 선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들 사이를 가르는 경계선입니다."  

   (362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