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바 강가에서 우리는
박지음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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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상해요. 

어릴 때, 소설인 줄 모르고 읽은 이야기가 진짜라고 생각했어요.

세월이 흐른 지금, 문득 돌아보니 살아온 날들이 그때 그 소설과 다르지 않더라는.

진짜와 가짜의 경계가 얼마나 애매모호하던지, 그러니 자꾸만 속을 수밖에.


<네바 강가에서 우리는>은 박지음 작가님의 단편집이에요.

모두 여덟 편의 작품이 실려 있어요. 제각기 다른 이야기인데, 느낌상 하나의 이야기처럼 흘러가네요.

마치 주인공이 여덟 번의 생을 환생하는 것처럼, 내멋대로 그들은 모두 한 사람이라고 단정지어 버렸어요.

네가 아무리 다른 사람인 척 살아도, 나는 다 알아볼 수 있다고.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맨 처음 읽은 <네바 강가에서 우리는>의 장면이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것 같아요.

솔직히 네바 강이 실존하는 강인 줄 몰랐고, 만약 어딘가에 있어야 한다면 인도일 거라고 상상했거든요.


# 네바 강가에서 우리는

주인공 '나'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네바 강가에 서 있어요.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죄와 벌』의 배경이 된 곳이라네요. 정확히는 네바 강 옆이 아니라 강이 흘러든 수로의 다리였다고. K다리.


- 자, 이제 문학기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다리를 건너서 노파의 집으로 갑니다.

도끼는 잘 숨기셨나요?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습니까? 

... 가이드는 라스콜니코프가 돼보자고 했다. 살인을 하러 가는 굶주리고 가난한 대학생이 되어 긴장한 채 주저하면서 걸어보자고.

그의 걸음처럼 망설이며 평소에는 보지도 않았던 공원을 둘러보고 다른 사람들의 말까지 엿들으며 살인을 하러 가자고.

그의 마음이 되어보자고.    (9-10p)


마음 속 도끼를 꺼내들고 싶은 순간이 있다면?

죽이고 싶은, 세상에서 사라지게 만들고 싶은 그것.

그걸 없애야지만 꽉 막힌 숨통이 트일 것 같은.

남들에겐 보이지 않는 오직 혼자만의 싸움을 벌이고 있다면.


# 레드락 # 리플레이 # 햄버거가 되기 위하여 # 나란히 걸어요 # 거미의 눈 # 톰볼로 # 영등 

각각의 이야기를 읽는 내내, <네바 강가에서 우리는>의 주인공처럼 네바 강가를 걷는 느낌이었어요.

문학기행의 가이드가 설명하듯이 라스콜니코프가 되어 도끼를 든다고 상상한들, 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주인공 '나'는 같은 조가 된 그녀때문에 불편하고 어색해서 죽을 지경인데.

마찬가지로 박지음 작가님의 단편들은, 우리를 낯선 거리로 끌어내는 것 같아요. 한 번 보라고, 네가 평소에 보지 않았던 것들이 무엇이 있는지.

내가 바라보는 세상과 세상이 바라보는 나 사이에는 엄청나게 깊고 넓은 틈이 존재한다는 걸.

<레드락>의 언니가 형부와 소통하지 못해도 그냥 살아가는 것처럼, <리플레이>의 그녀가 CCTV에 찍힌 것처럼, <햄버거가 되기 위하여>의 내가 하늘과 땅이라는 빵 사이에 낀 패티처럼 민준이를 삼킨 것처럼, <나란히 걸어요>의 내가 죽은 이들과 걷는 것처럼, <거미의 눈>의 내가 거미줄을 뜯다가 거미가 되어버린 것처럼, <톰볼로>의 남편과 현처럼, <영등>의 리아가 열고 간 바닷길처럼.


- 어떻게 왔니?  라스콜니코프의 도끼 주러 왔니?  (3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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