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하고 게으르게
문소영 지음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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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속 비밀도서관'으로 익숙한 문소영 기자의 에세이 입니다

최근 에세이가 나온다고 해서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감상적이지 않은 담백한 에세이'라고 쓰다가 문득 '감상적인 것'이 꼭 나쁜가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저는 저자의 담백한 문체를 좋아합니다.

무엇에 대해 어떤 할 이야기가 있다는 것은 작은 감상혹은 한 조각의 감정이 깃들어 있어서 가만히 있지 못하고 이야기하거나 글을 쓰는 것 아닐까 합니다. 마음이 간다는 건 그런 의미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책에서는 ‘1부 게으르게부터 마지막‘6부 행복하게까지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풀어 놓습니다.  

편하게 앉아서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기분으로 시작했는데, 듣다 보니 허리를 곧게 펴고 자세를 바르게 하고

경청 아니 정독을 하고 있는 저를 발견하고 웃었습니다.

 

특히 프랑스 화가 질베르의 <커피 한잔>에 대한 설명은 그림을 보기 전부터 인상에 남았습니다.

 

주부나 가정부인 듯한 여인이 앞치마를 두른 채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신다. 의자에 등을 붙이지 않았다. 커피를 마시고 얼른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온전히 커피에게 바쳐진 시간이다. 그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잔에 고개를 수이고 있다. 그 짙은 갈색 수면을 바라보며 그 향기를 온전히 들이마시고 있다. 그의 얼굴에 미묘한 기쁨이 감돈다. 어떤 자의식도 없이 커피에 집중하며 바쁜 일상에서 커피 한 잔이 주는 순수한 쾌락에 빠져 있는 것이다. 그 어느 그림보다도 짙은 커피향이 느껴지는 그림이다. (p.35)

바로 다음 페이지에 이렇게 설명한 그림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 정말 그림에서 커피 향이 나는 것 같았습니다.

소설에 비해 에세이를 많이 읽어본 건 아니지만 큰 주제를 뚜렷하게 구분하는 경우가 많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새로웠고, 던지는 주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깊이 읽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늘 한 발은 담그고 있던 수전 손택과 작년부터 읽기 시작한 어슐러 르귄의 인용은 매우 반가웠습니다.

볼 기회가 있었으나 미뤄두었던 영화, 처음 알게 된 책과 그림 그리고 화가. 나름 큰 수확입니다.

책을 덮으면서 왠지 아직 이야기가 마무리되지 않은 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자의 다음 에세이가 기다려집니다.

 

--

즉 예언이 단지 미래에 일어날 일을 미리 말하는 것뿐만 아니라 예언이 말해지는 순간 미래에 영향을 미치는 힘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p.42)

우리는 점점 그것에 무감각해지고 더 끔찍한 것을 구경거리로 찾는 비극을 초래할 수 있다. (p.74)

코치에게 분노의 댓글을 날리는 일은 쉬운 정의감 충족이지만, 사회 변화의 비용을 감내하는 것은 어렵고 큰 정의를 실현하는 길이다.(p.78)

사회적 차원에서의 자유와 선택의 공허함에 대한 문제, 자본이 없고 선택을 학습할 기회를 갖지 못한 사람들에게 자유가 주어져 있는데 왜 못해라고 하는 문제는

사회제도로 보완하고 해결해야 할 일이다.(p.192)

우리 주변에는 언제나 거기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있다. 우리는 그 당연하 것들에 대해서 냉담하다..그래서 그 당연한 것들은 슬퍼하면서 우리를 떠나버리는 것인지도 모른다.”(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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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 히비스커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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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보라색 히비스커스가 있어?’ 처음 책 제목을 봤을 때 생각했습니다.
작가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라서 주인공의 인생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섣부른 짐작도 했습니다.

 

 '우리 집이 풍비박산 난 건 오빠 자자가 영성체를 하지 않아서 아버지가 집어 던진 무거운 미사 경전이
-중략-
장식장의 도자기 인형들을 박살 냈을 때부터였다.(p.11)'

라는 도입부분부터 아주 극적인 전개를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몇 번의 큰 사건 외에 이들의 변화는 더할 수 없이 잔잔하게 진행되어갑니다. 
술술 읽히는 문장과 이야기가 전개 될수록 가슴이 꽉 막혀왔습니다.

 

'안 그래도 아버지의 칭호는 '고장을 위해 일하는 자' 오멜로라가 아니던가.(p.75)'
라고 할 정도로 아버지의 힘은 막강합니다. 반항이란 건 꿈도 꾸지못할 만큼 말입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에 이들을 방문한 이오페마 고모를 만나면서 조금씩 변화를 맞습니다.

 

 '위층 식당에 불쑥 들어오는 고모를 보고 나는 당당한 조상( 祖上)을 상상했다. 집에서 만든 단지에 물을 떠 오기 위해 몇 킬로미터를 걷고, 아기들이 걷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키우고, 햇볕에 따뜻해진 숫돌에 간 대도로 전쟁에서 싸우는 조상님.'(105)

아버지의 '일과표' 없이 명령을 어기게 되는 상황에 강한 불안감을 느끼지만, 조금씩 다른 속도로 고모의 생활에 적응해가며 두 사람은 ‘특별한자유’라기 보다는 지금까지 박탈당했던 ‘당연한 권리’를 누리는 법을 배우고 그 시간이 없었던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됩니다. 
시끄럽고 소란스러운 고모와 사촌들의 말 소리가 일상처럼 느껴질 때쯤 불안한 정치상황은 이들에게도 영향을 미칩니다. 며칠 동안 더 주어진 자유 끝에 돌아온 체벌은 가혹합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완벽해 보였던 아버지의 세계에 작은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웃으면서, 나는 너희가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높이 뛸 수 있으리라 믿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방금 너희가 내 생각이 맞았음을 증명하지 않았냐고 했다. 
그 때 나는 이페오마 고모도 사촌들에게 똑같이 해왔음을 깨달았다. 엄마가 자식한테 어떤 식으로 말하고, 무엇을 기대하는가를 통해 그 애들이 뛰어넘어야 할 목표를 점점 더 높였다. 아이들이 반드시 막대를 넘으리라 믿으면 항상 그랬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 오빠와 내 경우는 달랐다. 우리는 스스로 막대를 넘을 수 있다고 믿어서 넘은 게 아니라 넘지 못할까 봐 두려워서 넘었다.(p.274)' 아마디 신부를 통해, 이오페마고모와 아이들을 통해 자자와 캄빌리는 다른 세계에 발을 디딘 것입니다. 
캄빌리가 피신할 수 있었던 새로운 세상이 사라져가고 있는 상황에 망연자실해 있을 무렵 
전화 한 통으로 모든 상황이 급변합니다. 이제 가족 모두의 삶이 전체적으로 요동칩니다.
변화를 앞두고 있을 때마다 오빠 자자는 희망을 붙잡는 것 처럼 '보라색 히비스커스'가 피고있다는 사실을 상기합니다. 
이제는 미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p.364)

 

저는 아디치에의 글을 좋아합니다. 번역의 역할이 굉장히 크겠지만 말이죠.  
나이지리아 전통 복식이라던가 문화를 잘 몰라서 생경한 단어들은  어쩔 수 없지만 내용에 잘 녹아 있어서 좋습니다. 
그 곳의 인물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눈에 보는 듯합니다. 
책을 받았을 때, 크기는 금방 읽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만 내용이 촘촘히 들어가 있어서
시간이 제법 걸렸습니다.  밥을 천천히 꼭꼭 씹어먹듯이 찬찬히 다 읽고 싶었습니다. 
에누구의 생활을 읽는 동안에는 말할 수 없이 답답하기도 하고 가슴이 먹먹해져 왔습니다. 
분명히 학대인데, 그 와 중에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어하는 캄빌리의 마음이 너무 절박해서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건 틀린거야, 정신차려! 라고 누가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생각했습니다.
또 경제적으로 가시밭길 같은 상황에서도 가족이 모두 함께 삶을 살아가는 고모 이오페마의 집 이야기는
한편으로 안타까우면서 한편으로는 '숨 쉴 공간'으로 보였습니다.
평소에 '이야기'를 거의 제대로 하지 못했던 캄발리의 변화가 섬세하게 전개되는 부분이 특히 좋았습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시기를 놓쳐버리는 답답함에 공감이 가서 더 그렇기도 했습니다. 
늘 억눌려있는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고 자책하는 모습에서 한 걸음씩 걸어나오는 캄발리를 계속 응원하게 됩니다. 
어디든 한 사람이 사라진다고 갑자기 좋은 시기가 펼쳐지지는 않습니다. 
남은 사람들이 살아갈 시간은 지옥과 천당을 오갈 수 밖에 없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이야기들을 정말 담담히 풀어내고 있는 아디치에의 글이 놀라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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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1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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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도시에서 어린 소년을 대상으로 끔찍하고 잔인한 범죄가 발생했습니다. 범행 현장은 도무지 정신이 제대로 박힌 사람의 소행으로 볼 수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범인으로 지목된 인물은 지역에서 유명한 야구코치입니다. 게다가 학교선생이었습니다. 경찰은 아무런 예고 없이 약 1500명의 관중 앞에서 긴급 체포를 해야할 만큼 확실하고 긴급한 증거들과 증언을 확보했습니다. 그러나 그를 체포하는 순간 담당형사 앤더슨에게는 범인 검거의 성과보다는 꺼림칙함이 계속 남습니다. 앞뒤가 안 맞는 정황이 있었지만, 범인이 광기에 취해 어린 소년을 실해하고 욕보였을 거라 확신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마주한 용의자측의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사건 당일의 다른 지방에 있었다는 알리바이를 들이댔습니다. 동행한 일행도 다수였습니다. 변호인과 그가 고용한 수사관의 활약으로 대단한 증거도 확보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범행 현장과 증거물 곳곳에 남겨진 DNA도 무시하기엔 너무 확실했습니다. 과연 한 사람이 두 지역에 '동시에' 존재 할 수 있을까요? 곧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습니다.

그와는 별개로 
피해 소년의 가족은 일주일 사이에 완전히 무너졌수습니다. 즐거운 주말 한 때를 보내고 있던 용의자의 가족들도 지옥 속을 걷게 됐습니다. 그러나, 빈틈없어 보였던 수사에 뚫리기 시작한 작은 구멍이 사건 자체를 삼켜버렸습니다.
역시 흘려보내도 작은 일들이 이제 사건의 전체적인 윤곽을 드러내는 것 같은 순간에 1권이 끝났습니다!!
 
굉장히 오랜만에 순식간에 읽은 작품입니다. 
가까이 가고 싶지 않은 어떤 것. 인식 저편에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 등.
뭔가 무의식적으로 자꾸 걸리는 일들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읽는 동안엔 아무 생각도 못하고 활자들을 따라갔습니다. 인물들이 느끼는 공포 이면에
더 미세한 암시들이 박혀있고 그것을 자각하는 순간 팔에 소름이 오소소하게 돋아났습니다.
호러라서가 아니라, 얄미우리만치 정황들이 맞아떨어져서 무서울 지경입니다.
중반 정도까지 형사측에서 용의자에게 의심의 시선을 던지는 독자는 다음 순간 제시되는
명확한 증거에 화들짝 놀라게 됩니다. 그리고 사건을 해결해야 할 인물들과 함께 고민하게 됩니다.
중간 중간 언급하는 최근 드라마들과 고전 작품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대단했습니다.
툭툭 던지는 재미없는 농담에도 뼈가 있는 것 같아서 속편하게 웃지 못합니다.
고전적인 전개인 듯 하다가 갑자기 사람 허를 찌른다. 마치 '스릴러는 이래야지' 라는 느낌이다.
이제 이야기의 중간까지 왔으니 다음 이야기를 빨리 봐야겠습니다.
너무 궁금해서 어지러워요!

--

다 좋을 수만은 없겠지만..조금 거슬리는 표현들도 있었습니다.

'화염에 휩싸인 자신의 마을을 바라보는 제 3세계 여자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p.47)

"우리 물건을 막 가져가고 그래도 돼요? 러시아나 북한도 아니고!" (p.62)

20년 전 쯤 같으면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을 표현일 듯 합니다.

다만 지금은 세상이 변하고 있는데...이런 점은 아쉬웠습니다.

물론, 적확한 표현을 찾기위한 노력이 있었을 테고, 인물에 대한 부연 설명 어디쯤이라고

미루어 짐작해 봅니다. 

 

하지만 세상의 중력처럼 견고하고 바위처럼 단단한 사실이 하나 있다면, 누구라도 같은 시각에 두 군데의 장소에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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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트라 - 마이 웨이, 내 방식대로 현대 예술의 거장
앤서니 서머스.로빈 스완 지음, 서정협.정은미 옮김 / 을유문화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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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예술의 거장이고 그 이름 자체가  전설인 프랭크 시나트라의 평전이라니! 
엄청난 팬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지만 '전설 그 자체'인 이 가수의 인생이 당연히 궁금했습니다.
가십은 엄청 많이 들었는데, 실제 인생은 알 수 없었습니다. 몰라도 사는 데는 지장없지만 말이죠.  
1900년 초 이탈리아 이민가족의 미국 정착기부터 1990년대까지의 미국 현대사를 한번 쭉 훑어본 것 같습니다. 
이른바 최초의 아이돌이었고, 왕성한 정치활동을 했으며,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한 대통령 케네디와 그 형제들과도 친밀한 관계를 이루다 못해 여러 사건사고와 연루되었던 인물. 책에서는 그가 마피아와 연루되었다는 소문을 증명하는 여러 증거가 제시 됩니다.  그 인생역정이 평탄할 수는 없었겠죠. 
책 두께 보고 깜짝 놀랐지만 현대 대중문화 역사 그 자체인 이 가수의 삶이 이 정도로 정리 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운 사실일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이 특히 좋았던 점은  당시의 사회상을 그만큼 세세하게 전달하고 있는 점입니다. 그리고 '평전'인데 재미있습니다. 시나트라의 인생이 워낙 스펙타클했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말입니다. 
굉장히 상징적인 인물이라 대략 '스타'라고 알고 있던 인물의 실체가 손에 잡히는 듯도 하고, 
반대로 정말 이런 인물이 있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현대사를 들여다 볼 수 있는 훌륭한 자료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팝송을 듣기 시작했을 때도 옛날 가수였지만, 그의 노래는 그 자체로서 좋습니다.
다큐멘터리로 영상화 된다면 귀가 정말 호강하겠구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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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 고양이의 비밀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걸작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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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세게 운이 좋아서 #하루키에세이클럽에 당첨됐다. 책은 진작에 받았는데, 이래저래 중간에 일들이 많아서

이제야 서평(이라고 쓰고 독후감이라고 읽는)을 올리게 됐다.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지는 않는데, 신간이 나오면 꾸준히 찾아보고 있는 작가 중에 한 사람이다'라고 주장해 왔다. 그런데, 그게 좋아하는 작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갑자기 '알고보니 팬이었던가?'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ㅎㅎ

그래도 굳이 변명아닌 변명을 하자면 소설작품 보다는 이 작가의 에세이를 좋아하는 편이다.

#해변의카프카 이후 작품을 제대로 읽어보기 시작했는데, 옴진리교사건 이후 피해자들과 가해자들의 인터뷰를 진행해서 출간한 #언더그라운드 시리즈를 읽고 정말 대단한 작가라고 생각했다.

특히, 무심한 듯 그러나 퉁명스럽지 않은 문체가 좋아서 계속 읽고 있다. 이 부분에선 개인적으로 호.불호가 갈리기도 할 것 같다.

이 책 #장수고양이의비밀은 1995년부터 1996년까지 <주간 아사히>에 연재된 60여개의 에세이를 모은 책이다.

삽화는 안자이 미즈마루가 그 귀여움의 끝을 보여주고 있다. ^^;

첫번째 에피소드인 '벌써 십년도 지난 일인데'를 시작으로 중간 중간 못다한 이야기를 더 풀어놓은 '덤'과 '부록'까지 어느 하나 버릴 글이 없다. ㅎㅎ

어떻게 보면 누구나 할 수 있을 듯 시시해보이는 일상이 대부분이지만, 사실 그 글을 쓴 작가 이외에는 그런 글을 '누구나'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독자의 바램아닐까 한다.

어느 하나 빼 놓을 에피소드는 없었지만, 특히 인상에 남은 이야기들은 있었다.

모래톱에서 자동차 열쇠를 잃어버리면 어떻게 할까 하는 시시껄렁한듯한 이야기를 하다가 툭 던진 한 마디

'형체 있는 것은 아무리 애써도 언젠가, 어디선가 사라져 없어지는 법이다. 그것이 사람이건 물건이건

(p.31)' 처럼.

꽤 오래 읽어왔어도 사실 '하루키 특유의~'를 이야기하기는 아직 조심스럽다.

그러나 한 사람의 독자로서 그의 건조함에 숨어있는 수다스러움이 재미있다.

올 봄이었나, 무슨 기획특집이었나 하루키의 목소리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한동안 SNS에 그 음성파일링크가 계속 공유됐는데, 뭔가 글에서 느껴지는 분위기와 딱 맞아떨어져서 혼자 웃었던 기억이 난다.

에세이를 읽을 때 좋은 점 중 하나가 지금 내가 특별히 힘든 상황에 처해있지 않더라도

일상적인 이야기를 읽으면서 일상에 지친 마음을 위로받는 듯한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책은 '시시껄렁'하고 '소소'하고 '바보같아서(라고 저자가 이야기하는)' 아주 큰 위로가 됐다. ^^

기억에 남는 문장들은

"세상에는 예측 못할 갖가지 수수께끼와 위협이 가득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아무 일 없이 평온하고 무탈하게 살아가기란 그리 간단하지 않다.(p.105)"

"짐작건대 뮤즈는 몇백 마리에 한 마리 있을 귀중한 고양이였고, 그런 고양이를 만난 것은 내 인생 최고의 행운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p.146)"

" 세상엔 실로 갖가지 함정이,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서 은밀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아무 일 없이 평온하게 살아가기란 그리 간단치 않다.(p.171)"

"언제까지고 마음을 울리는 한 권의 책을 가진 사람은 행복하다. 그렇듯 귀중한 인생의 반려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긴 세월이 흐른 뒤 사람의 마음가짐에 큰 차이가 생길 것이다.(p.241)"

"더 큰 충격은 이 세상에서 어떤사람이든 자신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에게 무의식적인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잔혹하고 냉엄한 사실이었다. 나는 지금도 한 사람의 작가로서 그 사실에 깊은 두려움을 느낀다.(p.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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