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 고양이의 비밀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걸작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억세게 운이 좋아서 #하루키에세이클럽에 당첨됐다. 책은 진작에 받았는데, 이래저래 중간에 일들이 많아서

이제야 서평(이라고 쓰고 독후감이라고 읽는)을 올리게 됐다.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지는 않는데, 신간이 나오면 꾸준히 찾아보고 있는 작가 중에 한 사람이다'라고 주장해 왔다. 그런데, 그게 좋아하는 작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갑자기 '알고보니 팬이었던가?'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ㅎㅎ

그래도 굳이 변명아닌 변명을 하자면 소설작품 보다는 이 작가의 에세이를 좋아하는 편이다.

#해변의카프카 이후 작품을 제대로 읽어보기 시작했는데, 옴진리교사건 이후 피해자들과 가해자들의 인터뷰를 진행해서 출간한 #언더그라운드 시리즈를 읽고 정말 대단한 작가라고 생각했다.

특히, 무심한 듯 그러나 퉁명스럽지 않은 문체가 좋아서 계속 읽고 있다. 이 부분에선 개인적으로 호.불호가 갈리기도 할 것 같다.

이 책 #장수고양이의비밀은 1995년부터 1996년까지 <주간 아사히>에 연재된 60여개의 에세이를 모은 책이다.

삽화는 안자이 미즈마루가 그 귀여움의 끝을 보여주고 있다. ^^;

첫번째 에피소드인 '벌써 십년도 지난 일인데'를 시작으로 중간 중간 못다한 이야기를 더 풀어놓은 '덤'과 '부록'까지 어느 하나 버릴 글이 없다. ㅎㅎ

어떻게 보면 누구나 할 수 있을 듯 시시해보이는 일상이 대부분이지만, 사실 그 글을 쓴 작가 이외에는 그런 글을 '누구나'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독자의 바램아닐까 한다.

어느 하나 빼 놓을 에피소드는 없었지만, 특히 인상에 남은 이야기들은 있었다.

모래톱에서 자동차 열쇠를 잃어버리면 어떻게 할까 하는 시시껄렁한듯한 이야기를 하다가 툭 던진 한 마디

'형체 있는 것은 아무리 애써도 언젠가, 어디선가 사라져 없어지는 법이다. 그것이 사람이건 물건이건

(p.31)' 처럼.

꽤 오래 읽어왔어도 사실 '하루키 특유의~'를 이야기하기는 아직 조심스럽다.

그러나 한 사람의 독자로서 그의 건조함에 숨어있는 수다스러움이 재미있다.

올 봄이었나, 무슨 기획특집이었나 하루키의 목소리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한동안 SNS에 그 음성파일링크가 계속 공유됐는데, 뭔가 글에서 느껴지는 분위기와 딱 맞아떨어져서 혼자 웃었던 기억이 난다.

에세이를 읽을 때 좋은 점 중 하나가 지금 내가 특별히 힘든 상황에 처해있지 않더라도

일상적인 이야기를 읽으면서 일상에 지친 마음을 위로받는 듯한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책은 '시시껄렁'하고 '소소'하고 '바보같아서(라고 저자가 이야기하는)' 아주 큰 위로가 됐다. ^^

기억에 남는 문장들은

"세상에는 예측 못할 갖가지 수수께끼와 위협이 가득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아무 일 없이 평온하고 무탈하게 살아가기란 그리 간단하지 않다.(p.105)"

"짐작건대 뮤즈는 몇백 마리에 한 마리 있을 귀중한 고양이였고, 그런 고양이를 만난 것은 내 인생 최고의 행운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p.146)"

" 세상엔 실로 갖가지 함정이,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서 은밀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아무 일 없이 평온하게 살아가기란 그리 간단치 않다.(p.171)"

"언제까지고 마음을 울리는 한 권의 책을 가진 사람은 행복하다. 그렇듯 귀중한 인생의 반려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긴 세월이 흐른 뒤 사람의 마음가짐에 큰 차이가 생길 것이다.(p.241)"

"더 큰 충격은 이 세상에서 어떤사람이든 자신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에게 무의식적인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잔혹하고 냉엄한 사실이었다. 나는 지금도 한 사람의 작가로서 그 사실에 깊은 두려움을 느낀다.(p.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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