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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민의 한양읽기 : 궁궐 상 ㅣ 홍순민의 한양읽기
홍순민 지음 / 눌와 / 2017년 10월
평점 :
평소 서평단을 뽑는다는 글을 보고 책을 신청한다. 내가 좋아하는 분야인지, 책이 재미있어 보이는지. 활동하는 카페나 온라인 서점에 올라오는 글을 통해 신청한다. 그런데 이번 <홍순민의 한양읽기>는 지인 추천 때문에 알게 됐다. 그 분이 알려주지 않았다면 나는 책이 있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책모임을 통해 알게 된 지인들이 모여 있는 단체 대화방이 있다. 거기에 전통건물 분야 일을 하는 분이 계신다. 그 분이 이책 서평단 소식을 알려 주셨다. 책 내용이 좋다고 강력 추천하셨다. 관련 소식을 찾아보고 들으니 예전에 나왔던 책이고 이번에 개정판이 나온다는 것이다. 책 내용을 보증한다는 말씀 덕분에 신청을 했다. 신청을 하면서 출판사의 이름도 특이하여 알게 됐다.
단체 대화방에서 몇 명을 신청을 한 지 모르겠지만 나는 기쁘게 이번 책을 읽을 기회가 주어졌다. 그런데 정작 우리에게 이 소식을 알려주고 추천해 주신 그 분은 선정되지 못했다.
궁궐 답사를 한 번 가본 적이 있다. 대학생 때 교양수업에 교수님과 함께 말이다. 수업시간도 아니고 토요일에 원하는 학생들은 함께 하자는 것이었는데, 매우 즐거웠던 기억이 난다. 다만 그 때 들었던 경복궁에 대한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최근에는 아내와 방문했다. 창경궁과 경복궁 야간 특별 관람을 일주일 간격으로 다녀왔다. 궁궐 야간 관람을 해 보고 싶었던 아내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낮에도 가 본 적이 있는 곳을 야간에 특별히 가고 싶었던 이유는 조명과 어우러진 궁의 모습이 매우 운치 있고 인상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모습을 눈과 사진으로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건물에 대한 이해, 그런 것은 안중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아쉬움이 있었다. 단순히 각 건물의 이름만 알고 외형만 보고 지나가는 것이 제대로 이 장소를 즐기지 못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는 좀 더 알고 와야지 했는데, 이번 책을 통해 그 아쉬움을 매우 많이 털어버릴 수 있을 것 같다.
책을 받았을 때 기대보다 좋은 책 상태에 웃을 수밖에 없었다. 상·하권으로 구성되어 있다기에 일반적인 책 상태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웬걸. 상·하 각각 독립적으로 구성되어 있어 한 권씩 사서 보기에도 충분하다. 또한 책의 품질도 제법이다. 하드커버는 아니지만 나름 두께 있는 외지에, 책 안에는 매우 많은 사진들이 함께 들어가 있다. 그것도 총천연색으로 말이다 (덕분에 책 가격이 만만치 않다.) 책은 <상권-왕조국가의 중심 임금이 사는 곳>, <하권-한양의 다섯 궁궐 그 겉을 보다, 속을 읽다> 로 내용이 나뉜다. 간단히 소개하면 상권은 궁궐 입문서, 하권은 궁궐 해설서가 될 것이다.
이제 막 상권을 끝냈다. 많은 내용 덕분에 쉽지 않게 읽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하권이 기대가 된다. 하권을 읽고 나면 필히 궁궐을 가보고 싶어질 것 같다.
상권에는 매우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처음 책을 펼치면 우리나라 지형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을 한다. 궁궐에 관한 책인데 웬 지형? 여기서 우리는 저자가 말한 ‘읽기’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7쪽) 궁궐을 보는 것을 넘어 읽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공간과 형태를 보며 그 의미를 찾아야 한다. 바로 궁궐을 보는 것보다는 궁궐이 있는 자리, 궁궐이 있는 도시 서울을 보고, 궁궐과 대비되는 시설들을 보며, 궁궐의 짜임새와 개개 건물들에 대한 이해를 먼저 갖추면 좋겠다. 그 다음에는 궁궐에 담겨 있는 시간을 더듬어야 한다. 개별 건물이나 궁궐의 변천을 넘어 서울에 있는 궁궐들을 아울러 그 변화의 흐름을 읽어내야 한다. 그러려면 그 밑바탕을 이루는 생각과 관념을 이해하여야 한다. 그래야 궁궐을 만들어 사용하였던 옛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이렇게 궁궐을 읽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내용을 묶다 보니 한 권 분량이 차 상권으로 꾸몄다.
저자의 말대로 부록에는 우리나라 전통 관념이라 할 수 있는 것들이 들어가 있다. 팔괘:태극음양, 삼재:천지인, 오행, 간지 등. 부록까지 매우 알차다. 상권을 덮으며 나는 느꼈다. 아, 저자가 정말 작정하고 쓰셨구나!!!
상권을 읽으면서 제대로 배웠다고 느낀 것이 있으니 조선의 왕궁 체제였다. 조선시대는 법궁과 이궁으로 구성된 양궐 체제라고 한다. 경복궁은 태조부터 임진왜란 소실되기 전까지 법궁이었다. 선조 때부터는 창덕궁과 창경궁이 법궁이 되고 경희궁, 인경궁, 경운궁이 이궁 역할을 하였다. 고종 때 돼서야 경복궁을 다시 지으면서 법궁이 된다. 하지만 혼란스러운 대한제국 시대에는 법궁-이궁 구분이 없는 단궁시대가 된다.
(164쪽) 임금이 이어할 목적으로 지은 또 다른 궁궐을 법궁과 구분하여 이궁離宮이라 하였다. 이궁은 법궁보다 격이 한 단계 낮기는 하지만, 법궁과 마찬가지로 임금의 공식 활동 공간으로 필요한 구성 요소를 모두 갖추어 규모면에서나 기능면에서나 법궁에 뒤지지 않는 궁궐이었다. 법궁과 이궁 두 궁궐을 갖추어야 비로소 임금들은 입금답게 활동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건물은 각각 이름이 있으며 나름의 신분이 있다. 보신각, 경회루처럼 건물 끝자를 보면 어느 건물인지 알 수 있다. ‘전당합각재헌루정’ 이외의 글자도 있지만 그런 것들은 예외로 할 정도로 적으면 대부분 저 여덟 자 안의 글자로 끝난다.
(158쪽) ‘저당합각재헌루정’은 엄격한 법칙은 아니다. 결과를 정리해보니 대체로 그렇다는 것이요, 알아 두면 요긴한 ‘보는 눈’ 정도다. 규모로 보자면 큰 것으로부터 작은 것으로 가는 순서요, 품격으로 치자면 높은데서 낮은 데로 가는 순서다. 용도에서도 공식 행사를 치르는 것으로부터 일상 주거용으로, 다시 비일상적이며 특별한 용도로, 휴식 공간으로 이어지는 순이다. 종합해서 이야기하자면 ‘전당합각재헌루정’은 그 순서가 건물들의 신분이요, 위계질서라고 할 수 있다.
<홍순민의 한양읽기>는 기획물이다. 종묘, 궁궐, 도성으로 구성될 예정이다. <도성>은 이미 나왔고 <종묘>가 예정되어 있다. 여러 건물이 한 데 어우러진 <궁궐>은 할 이야기가 많겠지만, 도성과 종묘는 과연 어떨까? 저자의 지식이라면 특색 있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져 있을 것이다. 각 공간에서 각 시간에 사람들이 무슨 일을 했는지. 그게 저자가 말하는 역사 읽기다. 그래서 다른 책도 읽어 싶어진다. 도성과 종묘 편을 읽으면 도성을 거닐고 처음으로 종묘를 가보고 싶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