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1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랜만에 외국 소설을 읽었다. 한 동안 국외 소설에서 멀어졌다가 이 책을 읽으며 번역 소설이 가지는 거리감,차가움이 좋았다. 재미있는 소설이다. 작가의 거침없는 상상력에 박수를 보낸다. 환상적 리얼리즘속에 작가의 비판 의식을 선명하게 담아냈다.

운전 중 눈이 멀어버린 한 남자를 시작으로 백색 실명이 초강력 바이러스처럼 번지기 시작한다. 그를 데려다 준 남자, 그의 아내, 그를 치료한 의사,의사가 치료한 환자들...의사의 아내를 제외하고 도시는 '눈먼 자들의 도시'가 되고 만다.

그들을 수용 시킨 정신 병원에서는 군인들의 폭압, 병원 안은 깡패들이 식량을 미끼로한 폭력 강간의 지옥이다. 살인과 방화 끝에 사람들이 수용소를 탈출하지만 이미 도시는 죽음의 도시로 변해 있다.

작가가 공산주의 활동을 오랫 동안 했다는, 그 배경을 짐작케 한다. 인간에 대해 좌절하고 뜨겁게 아파해 본 사람이 쓸 수 있는 소설이다. 문명과 풍요의 빛이 넘치는 사회 속에서 빛에 눈 멀어버린 '백색 실명인'들로 살고 있지는 않는지...

연대와 사랑 타인에 대한 연민에서 눈을 감을 때 인간은 야만과 폭력의 동물로 전락해 버린다.

인간이란? 인간이기 위해선? 인간의공동체란? 에 대한 물음과 답들을 따뜻하게 파고 드는 소설도 좋지만 때론, 이렇게 거칠게 인간의 짐승스러움을 까발리며 파고 드는 소설도 좋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중독성 슬픔
권현형 지음 / 큰나(시와시학사) / 1999년 7월
평점 :
절판


읽고 싶었던, 몇 번의 주문 끝에 품에 들어 온 시집이다. 오프라인 서점 시절 나의 정겨운 방문지였던 부산영광도서에 감사한다.(애틋한 곳,번창하길...) 그리고 '시와시학사'는 절판된 이 시집과 한명희 시인의 '시집읽기' 김경복 시인의'길의 길'등을 조속히 재판하기 바란다.(시집 다 팔린지 한 참 됐어요~. 시장가치 없다고 외면하긴가요~ 우리 그러지 않기로 했잖아요...) 시인들이여, 쬐끔...쬐끔만 더 기다리시라. 로또가 반드시 나를 간택하리니 그대들을 전업시인으로 복귀시킬 것이다.

30대 시인의 참 맑고 섬세한 정서가 잘 드러난다. 감정과잉의 도회적, 감각적,섹슈얼한 분위기로 흐르는 요즘의 젊은 시인들의 시에 비해 고전적이라 할 만치 순정한 아날로그 감성이다. 청상으로 늙은 어머니에 대한 연민과 슬픔이 시인의 정서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듯. 이런 우울과 결핍 고독이 시인의 분위기를 이루고 여린 것들에 대한 따뜻함을 유지시키는 힘이 되기도 한다.(뜨겁게 사랑하시길, 꽉 잡은 사랑만이 고독을 잠시 잠재우고, 놓친 사랑은 오래오래 노래가 되어 줄 것이다.) 시 한 편 한 편 소박하고 아름답다.

특히 늙은 여성을 보는 눈이 연민으로 가득 차 있으며 그 시적 형상화가 돋보인다('적멸''그녀') 뜨거웠던 젊은 날에 대한 그리움. 나이들어 쇠잔해져 가는 것에 대한 서글픔의 자기연민은 흔히 볼 수 있어도 바로 옆에서 바라보고 있는 듯한 그 생생한 적멸과 고요를 비감없이 나직하게 보여주는 시는 만나기 힘들었다. 그녀는 이 시선을 너무나 잘 잡아 내고 있다. 시집이 1999년에 나왔으니 이 시들은 서른즈음에 쓴 시들인데,,조로다 조로. '콘트라베이스'라는 시의 '그'를 그녀로 살짝 바꿔 읽었다.

따뜻한 살냄새를 풍기는 시집이다. 특히 쓸쓸해지는 조로증세의 여성들에게 위로가 될 것이다. 고맙다... 친구같은, 뒤 탈 없는 술같은 시들...에고 나도 늙나 보다. 2집 기다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자 룩셈부르크 한길로로로 4
헬무트 히르슈 / 한길사 / 1997년 3월
평점 :
품절


인터넷 마실다니다 독일정치에 관한 글을 보게 되었다. 백과사전처럼 기술된 그 글에서 뜨거움이 느껴졌다. 그리고 사회과학서를 읽고 싶어졌다. 한동안 이런 책들을 읽지 않았다. 원하지 않았던 모습으로 살고 있는 나를 봐야하기 때문이다. 그런 책들을 읽으며 사회구조와 모순에 분노 할때, 그때는 자본과 권력의 논리로 돌아가는 세상과 절대 타협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선'과 '악'을 선명하게 갈라내며 아름답고 소박하게 상처 주지 않으며 살고 싶었다. 후회하지 않는 자기완성을 추구하며 살아야한는 것이 신앙이었다. 혐오스런 역겨운 인간들이라고 매도 했던 자본의 노예들... 지금의 나는 내가 가장 욕하던 그 인간이다.ㅜㅜ 창의성 없이 변혁에의 열망없이 꾸역꾸역 살고 있다. 빨랑 돈을 벌어 멀리 도망가는 것, 이것만 생각한다......주여!! 싯달타여!!

로자가 군부에 의해 끌려가 맞아 죽고 국경운하에 던져져 4개월 만에 떠 올랐다는 부분을 읽으며 심장에 피가 맺는 것 같았다.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박종철과 그때 안기부 책임자였던 사람이 테레비에 버젓히 배지 달고 나오는 현실이 겹쳐지며 세상과 나에게서 눈감고 싶어졌다.절망,절망..현실은 절망과 오욕의 늪이니라 - 그때 쯤부터는 책을 잘 읽지 않았다. 무슨 책을 읽어도 집중이 되지 않았다. 시집 한 권 마음 편하게 기쁨에 가득 차서 읽은 적이 없는 듯 하다. 뭘 읽어도 나자신이 부끄러워졌다. 하필, 로자 룩셈부르크가 다시 읽고 싶어진 것은 에너지를 얻고 싶었기 때문인 것 같다.

각설하고, 이 책은 연대기별 서술로 이루어져 있다.사진들이 알뜰히 실려 있고 편지글,연설문 인용 부분이 많다. 로자의 인간적 체취도 보여 주지만 사상을 실천하는 혁명가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그리고 비판보다 호의적 시선이다. 그녀는 식민지 폴란드에서 태어난 유태인이며, 다리 장애를 가졌던 인물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사회주의 운동에 가담하며 청중을 압도하는 연설가적 재능을 발휘한다. 스위스로 도피,독일 국경을 취득하며 그녀가 꿈꾸었던 것은 오직 사회주의 혁명이다. 사민당의 우경화에 분노하며 '독일의 터키 침공은 방어 전쟁이 아니라,제국주의적 만행'이라고 폭로한다. 1차 세계대전에 동조하는 사민당을 탙퇴하여 독일 공산당의 전신이 된 '스파르타쿠스'의 동맹이 되어 결국 사민당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정부에 의해 끔직한 죽음을 당하게 된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집단 파업을 지지하며,프롤레타리아의 적들로서, '현금으로 가득 찬 금고를 잃을까 벌벌 떠는 자본주의자' 와 '시민계급의 지배라는 안락함이 걱정되어 벌벌떠는 소시민들과 반유태주의자' 그리고 '부르주아지 언론'을 맹공한다. '전쟁과 평화, 또는 국제노동자연맹이나 집단, 기아와 같이 중요한 사안에 대해 주사위가 던져져야 할 곳은 의회가 아니라 공장이고 작업장이며 거리이다'

이책에 보면(126쪽) 프랑크푸르트 재판에 대한 풍자 그림이 실려 있다. 압권이다. 일어서서 재판장을 향해 당당히 훈시를 하고 있는 듯한 모습!! 혁명가의 모습이다. '사회민주주의자는 도망치지 않는다.'는 그녀의 말처럼 그녀는 자신의 사상에서 실천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수많은 로자,로자,로자,의 불꽃. 세상이 이 만큼이나마 따뜻한 이유다. 뜨거워져라! 눈사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물의 운명 문학동네 시집 19
하종오 지음 / 문학동네 / 1997년 6월
평점 :
절판


시인의 통증이 가슴을 후비는 시집. 책을 읽다가  작가를 위해 기도하고 싶을 때가 아주 가끔 있다. 하종오 시인님을 위해...

꾸질했던 일상을 접고 가장 행복한 모양새- 따따한 온돌방에 배깔고 음악 들으며 책읽기.맥주 홀짝이며 모국어를 안주삼기.- 로 이 책을 읽으면 안 된다. 정좌하여 정신 똑바로 열고 시인이 빚은 시어와 아우라를 봐야한다.

대여섯번을 읽으며 곱씹는 동안 나의 게으른 뇌세포들이 데몬스트레이션을 일으키며 '니 와일카노, 니 와일카노 !!를 수 없이 외쳐댔지만 묵묵히 이 시집을 읽었다.

이 시들을 쓴 나이가 40대 초반이다. 좀 뺀질해도 될 나이 아닌가. 사랑이란... 슬픔이란... 세상이란... 인간이란... 하며 다정스레 말하는 방법이 있다는 걸 시인은 잘 알고 있을 진데(느슨한 시정신을 말함이 아니다) 왜 이리 고통스럽게 시를 썼을까? 
시집 읽는 동안 독.하.게. 쓸.쓸.했다.

늦은 도착

진눈깨비 쏟아내는 하늘을 지고
한 마리 흰 새가 내렸다.
바다를 멀리 밀어낸 갯벌이
수평선 위로 떠올라 하늘을 받았다.

제때에 빠져나가는 게 안타까운 썰물은
날 끌어당겼다가 밀어버렸다.
내가 앞뒤로 비틀거리다가 바로 설 동안
게들이 기어가다 서고 기어가다 섰다.

내가 늦게 도착해으므로
사실 새가 날 찾아왔는지
내가 새를 기다리러 왔는지는 모르겠다.
망망한 곳에서 그리워할 것이 있어 막막하게 왔다.

저 하늘만은 내가 등에 지고 마을까지 가고 싶었는데,
갯벌은 내게 넘겨주지 않고,
저 혼자 진눈깨비 퍼부으며 육지로 가도록 놓아주었다.
세상의 평평한 지평선이 흐려져버렸고
찬바람이 나를 돌려 세웠다.

비틀거리며 나는 중얼거렸다. 어디로, 어디로
갔을까, 새는.

시를 사랑하시는 분들이라면 꼭 일독하시길. 참여적 시로 문단의 주목을 받았고. 절필을 하고 칩거의 몇 년을 보내기도 했던 시인이 발표한 이 시집에서 아직도 서성이고 있는, 현실의 세상으로 돌아와야 하나 마음이 머뭇거리고 회의하는 그리나 시에서 답을 구할 수 밖에 없는 숙명이 느껴진다.

어떤 시인이 시를 운명적으로 느끼지 않겠냐만은 모든 시인이 시에 자신의 운명을 목숨을, 걸고 가지는 않는다.

시인님! 따뜻 하시길... 시인이란 천명을 사랑하시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1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