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운명 문학동네 시집 19
하종오 지음 / 문학동네 / 1997년 6월
평점 :
절판


시인의 통증이 가슴을 후비는 시집. 책을 읽다가  작가를 위해 기도하고 싶을 때가 아주 가끔 있다. 하종오 시인님을 위해...

꾸질했던 일상을 접고 가장 행복한 모양새- 따따한 온돌방에 배깔고 음악 들으며 책읽기.맥주 홀짝이며 모국어를 안주삼기.- 로 이 책을 읽으면 안 된다. 정좌하여 정신 똑바로 열고 시인이 빚은 시어와 아우라를 봐야한다.

대여섯번을 읽으며 곱씹는 동안 나의 게으른 뇌세포들이 데몬스트레이션을 일으키며 '니 와일카노, 니 와일카노 !!를 수 없이 외쳐댔지만 묵묵히 이 시집을 읽었다.

이 시들을 쓴 나이가 40대 초반이다. 좀 뺀질해도 될 나이 아닌가. 사랑이란... 슬픔이란... 세상이란... 인간이란... 하며 다정스레 말하는 방법이 있다는 걸 시인은 잘 알고 있을 진데(느슨한 시정신을 말함이 아니다) 왜 이리 고통스럽게 시를 썼을까? 
시집 읽는 동안 독.하.게. 쓸.쓸.했다.

늦은 도착

진눈깨비 쏟아내는 하늘을 지고
한 마리 흰 새가 내렸다.
바다를 멀리 밀어낸 갯벌이
수평선 위로 떠올라 하늘을 받았다.

제때에 빠져나가는 게 안타까운 썰물은
날 끌어당겼다가 밀어버렸다.
내가 앞뒤로 비틀거리다가 바로 설 동안
게들이 기어가다 서고 기어가다 섰다.

내가 늦게 도착해으므로
사실 새가 날 찾아왔는지
내가 새를 기다리러 왔는지는 모르겠다.
망망한 곳에서 그리워할 것이 있어 막막하게 왔다.

저 하늘만은 내가 등에 지고 마을까지 가고 싶었는데,
갯벌은 내게 넘겨주지 않고,
저 혼자 진눈깨비 퍼부으며 육지로 가도록 놓아주었다.
세상의 평평한 지평선이 흐려져버렸고
찬바람이 나를 돌려 세웠다.

비틀거리며 나는 중얼거렸다. 어디로, 어디로
갔을까, 새는.

시를 사랑하시는 분들이라면 꼭 일독하시길. 참여적 시로 문단의 주목을 받았고. 절필을 하고 칩거의 몇 년을 보내기도 했던 시인이 발표한 이 시집에서 아직도 서성이고 있는, 현실의 세상으로 돌아와야 하나 마음이 머뭇거리고 회의하는 그리나 시에서 답을 구할 수 밖에 없는 숙명이 느껴진다.

어떤 시인이 시를 운명적으로 느끼지 않겠냐만은 모든 시인이 시에 자신의 운명을 목숨을, 걸고 가지는 않는다.

시인님! 따뜻 하시길... 시인이란 천명을 사랑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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