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 시 포도 분이 시작됐어요 김상현 교수의 처음 만나는 수학 동화 1
김정진 그림, 서지원 글, 김상현 기획 / 글고래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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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와 포도 사이에 숨어 있는 숫자의 약속

숫자가 싫은 수아는 모든 수를 다른 말로 표현한다.

수아의 방에 걸린 시계 속에는 숫자 대신 수아가 좋아하는 딸기와 포도같은 과일이 들어 있다. 숫자 같은 것은 모두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는 수아의 바람은 어느 날 정말 현실이 된다.

“숫자 같은 거 다 날아가 버렸으면 좋겠어!”

그 말을 내뱉은 순간, 아빠가 인형보다도 작아져 버린다.

아빠는 사실 수학의 약속을 지키는 수학 가디언이었다. 숫자를 되찾지 못하면 세상의 질서가 사라지고, 아빠 역시 사라질지도 모른다. 결국 숫자를 가장 싫어했던 수아가 세상과 아빠를 지키기 위해 숫자를 찾아 지하실로 달려간다.

숫자 냄새를 찾아 비밀번호를 알아내는 장면에서는 책장을 넘기는 손에도 긴장감이 느껴진다. 숫자에 냄새가 있다는 발상이 재미있으면서도 문득 오래전 국어 교과서에서 읽었던 페터 빅셀의 「책상은 책상이다」가 떠올랐다.

주인공은 매일 보던 책상을 꼭 ‘책상’이라고 불러야 할 이유가 있는지 의문을 품는다. 그래서 사물의 이름을 자기 마음대로 바꾸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그저 이름을 바꾼 것뿐인데, 어느 순간부터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없게 된다.

책상이라는 이름도, 숫자라는 기호도 처음부터 그 사물에 붙어 있던 운명 같은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함께 사용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의미를 갖는다.

수학도 결국 약속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하나를 1이라고 부르고, 둘을 2라고 쓰고, 일정한 기호와 규칙에 따라 계산하는 것. 우리가 모두 같은 약속을 지키기 때문에 숫자는 세상을 이해하는 언어가 된다.

그래서 수아가 숫자를 딸기와 포도로 바꾸어 표현하는 것은 귀엽고 재미있지만, 세상 사람들이 모두 수아처럼 숫자를 다르게 부르기 시작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1이라는 숫자가 사람마다 다른 것을 의미한다면 시간도, 돈도, 길이도, 무게도 제대로 전달할 수 없을 테니까.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또 하나 생각하게 된다.

그렇다고 숫자가 꼭 문제집 속에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우리 아이에게 숫자는 어떤 모습이고, 어떤 소리이며, 어떤 냄새일까?

딸기 세 개를 접시에 올려놓으며 숫자를 눈으로 보고, 포도알을 하나씩 세며 손끝으로 느낀다. 요리를 할 때는 계량컵의 눈금을 보고 밀가루의 무게를 재며, 완성된 음식의 냄새와 맛을 경험한다.

악기를 연주할 때는 박자를 듣고 몸으로 느낀다. 하나, 둘, 셋, 넷. 숫자는 소리가 되고 리듬이 되고 움직임이 된다.

시계를 보며 시간을 읽고, 달력에서 날짜를 확인하고, 용돈을 세고, 몇 번째인지 순서를 정하고, 운동을 하며 몇 바퀴를 돌았는지 세는 순간에도 숫자는 우리 곁에 있다.

그러고 보면 수학은 참 이상한 과목이다.

문제집에서는 차갑고 딱딱한 숫자로 만나지만, 일상에서는 딸기의 색과 맛으로, 포도의 촉감으로, 음식의 냄새로, 음악의 리듬으로, 시계의 움직임으로 우리 곁에 존재한다.

어쩌면 아이에게 수학이 어려운 이유는 숫자를 잘 몰라서가 아니라, 숫자가 살아 있는 일상과 문제집 속 숫자를 서로 다른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처음 만나는 수학 동화 1』은 숫자를 싫어하는 수아에게 숫자의 중요성을 가르치면서도, 수학을 억지로 공부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숫자가 사라진 세상을 보여주며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고 있던 질서가 사실 수많은 약속 위에 세워져 있음을 재미있는 모험으로 풀어낸다.

「책상은 책상이다」에서 한 사람이 언어의 약속을 혼자 바꾸었을 때 세상과 소통할 수 없었던 것처럼, 수아가 숫자를 없애버리면 세상의 질서도 흔들린다.

결국 숫자는 세상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약속이고, 수학은 그 약속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아이에게 “수학 공부해야지”라고 말하기 전에 오늘은 조금 다르게 숫자를 찾아보고 싶다.

냉장고 속 계란은 몇 개이고, 저녁을 만들기 위해 물은 몇 mL가 필요한지. 음악은 몇 박자로 흘러가는지. 시계의 긴 바늘과 짧은 바늘은 어디를 가리키고 있는지.

그리고 아이에게 물어봐야겠다.

“너에게 숫자는 어떤 냄새가 나?”

혹은 냄새만이 아니라,

어떤 색이고, 어떤 소리이고, 어떤 촉감이고, 어떤 맛일까?

숫자를 싫어하는 수아의 모험을 따라가다 보니 숫자를 가르치는 방법보다 먼저, 아이가 숫자를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수학은 어쩌면 숫자를 외우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세상 곳곳에서 숫자를 발견하는 것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르겠다.

특히 수학을 어려워하거나 숫자를 낯설게 느끼는 저학년 아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수학을 문제 풀이와 계산으로만 접하기 시작한 아이에게 숫자가 우리 생활 속 어디에 숨어 있는지 재미있는 이야기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또한 수학을 처음 접하는 아이와 함께 읽으며 “우리 주변에서 숫자를 찾아볼까?” 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부모에게도 추천한다. 딸기와 포도처럼 아이가 좋아하는 것에서 시작해 시계, 요리, 음악까지 자연스럽게 수학의 세계로 데려가는 책이라 수학을 공부하기 전에 수학을 친근하게 느끼게 해주고 싶은 아이에게 좋은 첫 수학동화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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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쌤의 금융과 경제생활 - 내신과 경제상식 모두 잡는
나무쌤(원남훈) 지음 / 시대에듀(시대고시기획)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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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신과 경제상식 모두 잡는 나무쌤의 금융과 경제생활

고등학교 시절 금융교육을 꼭 받아야 한다고 요즘 부모가 된 어른들은 이야기한다. 경제에 관한 것을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채 사회에 내던져졌을 때, 처음 겪는 사회의 혹독함을 다들 한 번쯤 느껴봤기 때문이리라.

나 역시 그랬다.

돈을 벌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사회에 나와 보니 돈을 버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것이 돈을 잘 쓰고 관리하는 일이었다. 저축과 투자는 무엇이 다른지, 신용은 왜 중요한지, 금융상품을 선택할 때 무엇을 살펴봐야 하는지 하나하나 부딪히며 알아갔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는 이런 것들을 조금 일찍 알려주고 싶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금융교육에 대해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저자는 금융 공부가 부자가 되는 비법을 알려주는 공부가 아니라, 자신의 상황을 이해하고 필요한 정보를 찾으며 더 나은 선택을 해나가는 힘을 기르는 과정이라고 이야기한다.

사범대 교수님 역시 학교의 금융교육은 학생들에게 돈을 가르치는 교육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설계하고 책임 있는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교육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금융과 경제를 공부하는 이유는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내 앞에 놓인 선택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다른 사람의 말에 휩쓸리지 않고 스스로 결정하기 위해서다.

책은 ‘행복하고 안전한 금융생활’, ‘수입과 지출’, ‘저축과 투자’, ‘신용과 위험 관리’ 네 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강의와 10컷 만화를 통해 개념을 쉽게 이해하도록 하고, 교과서와 연계된 이론을 설명한 뒤 실제 생활에서 만날 수 있는 사례를 연결한다. 마지막에는 경제 퀴즈로 배운 내용을 다시 확인한다.

구성을 보고 있으면 선생님께서 아이들에게 어떻게든 이 내용을 전달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특히 아이들의 일상에서 시작하는 점이 좋았다.

받자마자 사라지는 것 같은 용돈.

분명 얼마 전까지 내 손에 있었는데 어느 순간 없어져 버리고, 무엇을 샀는지 돌아보면 꼭 필요한 것만 산 것도 아니다.

책 속 주인공도 계획 없이 소비된 용돈을 돌아보며 돈을 잘 쓰고 관리하는 방법부터 알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책 속 캐릭터가 곧 우리 아이들처럼 느껴진다.

아이들은 이미 경제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용돈을 받아 무엇을 살지 결정하고, 사고 싶은 것을 위해 돈을 모으기도 한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며 광고를 보고, 앱을 이용하고, 인터넷에서 주식과 투자에 관한 정보도 접한다.

그런데 아이들이 경제생활을 시작하는 것에 비해 경제를 판단하는 방법은 충분히 가르쳐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요즘은 특히 그렇다.

주식과 투자에 관한 수많은 정보가 쏟아지고, 누군가는 이것이 돈이 된다고 이야기한다. 아이들도 얼마든지 그런 정보를 접할 수 있다.

그래서 금융 의사결정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보다 그 전에 무엇을 믿을 것인가를 판단하는 힘인지도 모르겠다.

정보의 출처가 어디인지, 근거는 명확한지, 나에게 정말 필요한 정보인지 따져보는 습관.

정확한 정보를 바르게 판단하는 힘은 좋은 금융 의사결정의 시작이다.

이 책에서 주식과 투자에 관한 내용을 다루는 방식도 그런 점에서 마음에 들었다. 단순히 투자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선택이 나의 상황과 생애주기에 따라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생각하게 한다.

금융환경의 변화와 계약, 신용과 위험관리, 우리가 실제 사용하는 앱 속 불공정 약관까지 아이들이 앞으로 사회에서 직접 마주하게 될 현실적인 문제들도 살펴본다.

읽을수록 경제공부는 필수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꼭 어려운 공부일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용돈을 어떻게 쓸지 생각해 보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

무언가 사고 싶을 때 정말 필요한 것인지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인터넷에서 본 금융정보를 무조건 믿지 않고 어디에서 나온 이야기인지 찾아볼 수도 있다.

어쩌면 그런 작은 선택들이 아이에게는 가장 현실적인 금융교육일 것이다.

내신을 위한 경제 개념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시험이 끝난 뒤 잊어버리는 지식이 아니라, 아이가 살아가면서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지식이라면 더 좋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교과서 속 경제 개념과 아이들이 실제 살아가게 될 경제생활을 자연스럽게 연결해 준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이야기한다.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업을 가지라고도 한다.

그런데 그 이후의 삶에서 반드시 만나게 될 돈과 경제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려주고 있을까.

아이들이 언젠가 자신의 월급을 받고, 집을 구하고, 보험에 가입하고, 투자를 고민하고, 수많은 계약서에 서명하게 될 때가 온다.

그때 누군가가 알려주는 대로 선택하는 사람이 아니라,

“잠깐, 이게 정말 나에게 필요한 선택일까?”

한 번쯤 멈춰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금융교육은 부자가 되는 법을 배우는 공부가 아니라, 내 삶의 선택을 스스로 해나가는 법을 배우는 공부라고 생각한다.

『내신과 경제상식 모두 잡는 나무쌤의 금융과 경제생활』은 아이들에게 바로 그 시작을 알려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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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기록법 - 평범한 생각을 가장 강력한 지적 자산으로 바꾸는 힘
조윤제 지음 / 오아시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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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다산은 사랑받는다.

그의 저서와 독서법, 공부법에 관한 이야기들은 꾸준히 새롭게 편집되어 출간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몇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가 다산에게서 배울 것이 있다는 것은, 그의 삶과 공부법 안에 시대를 뛰어넘는 힘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기록법은 어떨까.

다산은 무엇을 어떻게 기록했기에 그렇게 많은 생각과 지식을 남길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것이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사람 공부를 통해 옛사람들의 삶에서 지혜를 배울 수 있었던 조윤제 작가의 신간 『다산의 기록법』을 읽으며 생각해보았다.

책의 부제는 ‘평범한 생각을 가장 강력한 지적 자산으로 바꾸는 힘’이다.

처음에는 기록을 잘하는 방법에 관한 책이라고 생각했지만, 읽고 나니 이 책이 이야기하는 것은 단순한 기록의 기술이 아니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생각을 한다.

책을 읽다가 마음에 남는 문장을 만나기도 하고,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기도 한다. 아이를 키우다가 깨닫는 것도 있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 오래 생각하게 되는 순간도 있다.

하지만 기록하지 않은 생각은 대부분 사라진다.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생각도 시간이 지나면 흐려지고, 다시 떠올리려 하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조차 알 수 없다.

다산은 그 생각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것을 가려 뽑는 초서, 사실을 확인하고 기록하는 관찰, 생각이 떠오르는 즉시 적는 차록, 그렇게 쌓인 기록을 분류하고 편집하고 확장하는 과정을 통해 하나의 생각을 지식으로 만들어갔다.

무엇보다 초서법이 인상 깊었다.

책 속에서 중요한 것을 가려 뽑아내는 초서법은 그 자체로도 훌륭한 교육이 된다.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아야 중요한 문장을 찾을 수 있고, 무엇을 남길 것인지를 판단하려면 자신의 기준과 가치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에게도 이런 공부를 시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되면 사실과 생각에 대한 구분을 배운다.

하지만 그것을 제대로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내가 판단한 것을 사실처럼 생각하기도 하고, 내가 느낀 것을 실제로 일어난 일처럼 기억하기도 한다.

다산은 일어난 일은 일어난 대로, 자신의 해석은 해석대로 분리했다.

기록하기 전에 사실을 확인하고, 그 위에 자신의 생각을 쌓았다.

어쩌면 다산의 기록이 지금까지도 진정성을 갖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닐까. 실제로 책에서도 다산의 기록 원칙 가운데 ‘사실을 확인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것’을 중요한 방법으로 제시한다.

생각해보면 기록은 단순히 기억을 남기는 일이 아니다.

무엇을 볼 것인지 선택하고, 본 것을 기록하고, 기록한 것을 다시 꺼내보고, 서로 다른 생각을 연결하면서 처음에는 평범했던 생각을 조금씩 다른 차원의 것으로 만들어가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기록은 정보가 되고, 정보는 지식이 되고, 지식은 삶의 판단을 돕는 자산이 된다.

그래서 이 책의 부제가 오래 마음에 남았다.

평범한 생각을 가장 강력한 지적 자산으로 바꾸는 힘.

나 역시 아이들의 성장 과정을 기록하면서 기록의 힘을 조금은 경험해왔다.

그때는 별것 아닌 것처럼 지나갔던 아이의 말이나 행동을 몇 달, 몇 년이 지나 다시 꺼내보면 그 안에서 아이의 변화가 보인다.

예전에는 하지 못했던 말을 하고 있고, 서툴렀던 행동이 자연스러워져 있고, 어느 순간 혼자 해내고 있는 일들이 늘어나 있다.

기억만으로 아이의 성장을 바라보았다면 놓쳤을 변화들이다.

기록해두었기 때문에 어제와 오늘을 비교할 수 있고, 그 차이를 통해 아이가 얼마나 자랐는지를 읽어낼 수 있었다.

그래서 나에게 기록은 기억을 남기는 일을 넘어 성장을 읽어내는 방법이기도 했다.

최근 읽었던 백희성 작가의 『쓰는 사람』도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 책 역시 기록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었고, 기록해둔 생각들이 쌓여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평범하게 떠오른 생각 하나를 적어두고, 그것을 다시 꺼내보고, 다른 생각과 연결하고, 다듬어 결국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내는 것.

기록은 과거를 보관하는 일이면서 동시에 미래의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이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다산의 기록법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산 역시 처음부터 거대한 지식을 기록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한 문장을 읽고, 한 가지를 관찰하고, 떠오른 생각을 적어두고, 그것을 다시 분류하고 연결했을 것이다.

그렇게 평범해 보였던 생각들이 오랜 시간 축적되면서 결국 수많은 저서가 되고, 세대를 넘어 남는 지식이 되었다.

조선시대의 ‘만능 일꾼’처럼 보이는 다산의 힘도 어쩌면 여기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

생각을 흘려보내지 않고 붙잡는 사람.

붙잡은 생각을 쌓아두기만 하지 않고 다시 꺼내어 연결하는 사람.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지식을 자신의 삶과 세상을 바꾸는 데 사용하는 사람.

나무를 가꾸듯 문장을 꺼내고 다듬으며 살아간 다산을 보며, 작가들의 글에서 수행자의 삶이 보이는 것이 비단 나만의 착각은 아니었구나 싶었다.

자신의 삶과 인격을 다듬지 않는 글은 아무리 문장이 화려해도 마음 깊은 곳에서 우리를 흔들어놓지 못한다.

결국 기록에는 사람이 담긴다.

무엇을 기록했는지를 보면 무엇을 중요하게 여겼는지 알 수 있고, 오랫동안 쌓인 기록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도 보인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니 ‘기록을 잘하는 법’을 배워야겠다는 생각보다 ‘기록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더 크게 남았다.

생각이 떠오르는 즉시 기록하는 습관.

흩어진 기록을 종류별로 묶고 다시 편집하는 습관.

그리고 시간이 지난 뒤 다시 꺼내어 읽어보는 습관.

아이들의 오늘을 기록해두었다가 훗날 그들의 성장을 읽어주고, 오늘의 내 생각을 기록해두었다가 미래의 내가 다시 읽으며 지금의 나를 이해하는 것.

그렇게 쌓인 기록들이 언젠가는 나만의 지식이 되고, 나만의 문장이 되고, 나와 아이들의 삶을 이해하는 자산이 될 것이다.

다산에게 기록은 단순히 기억을 위한 방법이 아니었다.

평범한 생각을 붙잡아 지식으로 만들고, 지식을 삶으로 연결하고, 그 삶을 다시 다음 세대에 남기는 일이었다.

그래서 『다산의 기록법』을 덮으며 나도 하나를 시작해보려 한다.

대단한 생각을 기다리지 않고, 오늘 떠오른 평범한 생각부터 기록하는 것.

어쩌면 지금은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그 생각 하나가, 시간이 지나 나를 성장시키는 가장 강력한 지적 자산이 될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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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기행 필사북 - 이동진 평론가 추천! 무진기행, 서울 1964년 겨울, 역사, 건
김승옥 지음 / 스타북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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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가장 사랑하는 소설, 한국 현대소설의 명작, 작가들이 사랑하는 소설. 학교를 다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무진기행』이다.

서울에서 성공한 윤희중이 잠시 고향 무진에 내려와 겪는 이야기를 풀어낸 이 소설을 필사북을 통해 드디어 제대로 읽어보게 되었다.

김승옥 작가가 『무진기행』을 발표했을 당시의 나이가 23살이었다니 놀랍다.

젊은 작가가 써 내려간 이야기 안에는 사랑과 자기혐오, 욕망과 도덕,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한 인간의 마음이 날것 그대로 담겨 있다.

무엇이 옳은지 알고 있으면서도 감정은 그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고, 현실을 선택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다른 삶을 꿈꾸는 사람.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평가하고 때로는 혐오하면서도 결국 현실에 발붙이고 살아가는 사람.

아마 이 책을 너무 어릴 때 읽었다면 윤희중의 행동을 도덕적인 잣대로만 바라보았을 것 같다. 옳고 그름을 먼저 판단하다 보면 그가 왜 그렇게 흔들리는지, 왜 스스로를 끊임없이 바라보면서도 결국 현실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지 깊이 들여다보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윤희중만을 바라보게 되지는 않는다.

무진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어쩌면 자기 자신을 감추고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서로를 바라보고 평가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마음은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 채, 그럼에도 지금 발붙이고 있는 이곳을 현실이라 여기며 살아간다.

그래서 무진은 단순히 윤희중이 잠시 떠나온 고향이 아니라, 누구나 마음속에 하나쯤 가지고 있는 공간처럼 느껴졌다.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숨어들고 싶은 곳. 나를 감추고 싶은 곳. 혹은 현실의 나와 다른 내가 되어볼 수 있을 것 같은 곳.

안개가 가득한 무진은 그런 자신을 감출 수 있는 곳일지도 모르겠다.

이번 필사에서 특히 오래 머물렀던 것은 사건이나 인물보다도 문장 자체였다.

개구리 울음소리를 듣다가 그것이 밤하늘의 별처럼 느껴지고, 청각의 이미지가 시각의 이미지로 바뀌어가는 장면을 읽으며 작가가 감각을 다루는 섬세함에 감탄했다.

눈으로 별을 보고 귀로 개구리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그 둘이 하나의 감각처럼 겹쳐진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장면 뒤에 남는 감정은 결국 ‘쓸쓸하다’는 한마디였다.

‘쓸쓸하다’는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쉽게 지나칠 수 있는 단어인데, 작가는 그 단어 하나로 도시의 삶과 바닷가의 풍경, 사람의 마음까지 연결해 놓는다.

필사를 하면서 그 문장을 눈으로 한 번 더 읽고 손으로 다시 따라 쓰다 보니, 그냥 읽을 때는 지나쳤던 문장들이 오래 남았다. 문장의 속도와 호흡, 단어 하나가 만들어내는 감정까지 조금씩 느껴졌다.

그리고 생각했다.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는 윤희중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흔들리고, 내가 원하는 모습과 실제의 나 사이에서 갈등하면서도 결국 현실로 돌아온다. 때로는 나 자신을 감추고, 때로는 타인의 시선으로 나를 평가하면서도 내가 서 있는 이곳을 삶이라고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어쩌면 그래서 『무진기행』이 오래도록 사랑받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23살의 김승옥이 써 내려간 이야기를 지금의 나이에 다시 읽으니, 『무진기행』은 한 남자의 짧은 여행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마음속에 품고 있는 안개에 관한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이번 필사는 그 안개 속에서 윤희중을 바라보는 동시에, 아주 잠깐이나마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잠시 잠깐, 인생의 안개속을 거닐고 싶은 사람들에게 무진기행 필사북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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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의 감정 수업 - 세상이란 파도를 거침없이 타기 위한 자현 스님의 가르침
자현 지음 / 오아시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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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라는 파도를 즐기는 삶, ‘어쩔 건데!’의 선구자 부처를 만나다

더운 열기에 감정마저 널뛰듯 짜증이 치솟는 나날이었다.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려 애쓸수록 오히려 지쳐가던 차에, 유쾌하게 서핑을 즐기는 부처님의 모습이 담긴 표지에 홀린 듯 끌려 《부처의 감정 수업》을 펼쳤다.

저자인 자현 스님은 경악스러울 만큼 많은 학위와 논문을 가진 분이다. 넘치는 지적 호기심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도덕과 규범’이라는 견고한 벽을 깨뜨리고 자신이 던질 파격적인 메시지에 권위라는 힘을 실어주기 위해 판을 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그가 판을 깔고 던진 메시지는 의외로 명쾌했다.

“감정 그 자체를 대긍정하라.”

감정을 들여다보고 고요한 호수처럼 다스리라는 뻔한 조언이 아니다.

우리는 감정을 통제해야 한다고 배워왔다. 화를 내면 안 되고, 질투해서도 안 되고, 미워해서도 안 된다. 좋은 사람이라면 늘 너그럽고 침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역사학자 설혜심과 푸코가 짚었듯 인간은 문명화 과정을 거치며 사회적 매너와 규범을 내면화해 왔다.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을 반복해서 학습하는 동안 어느 순간부터는 외부의 감시가 필요하지 않게 된다. 보이지 않는 감시의 시선을 스스로 머릿속에 설치해 놓고, 원초적인 감정이 올라올 때마다 스스로를 검열한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면 나쁜 사람 아닐까?’

화가 나는 것보다 화가 난 자신을 부끄러워하고, 서운한 것보다 서운해하는 자신을 탓한다. 그렇게 감정과 도덕적 판단 사이에서 끊임없이 마음의 불일치를 겪는다.

그런데 이 책은 묻는다.

우주의 거대한 시간 속에서 한 점에 불과한 존재인 우리가, 왜 사회가 만들어 놓은 수많은 기준에 갇혀 스스로를 자책하며 살아야 하는가.

감정을 긍정한다는 것은 감정에 노예가 되어 아무렇게나 행동하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감정과 행동을 분리하는 것이다.

연기파 배우가 비극적인 역할에 깊이 몰입하면서도 카메라 밖에서는 자신이 배우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처럼, 감정 속에 충분히 머물면서도 그 감정 전체가 곧 ‘나’라고 착각하지 않는 것이다.

여기에서 불교의 ‘진속이제(眞俗二諦)’라는 개념이 떠올랐다. 현실의 세계에서는 화가 나면 그 화를 해결해야 하고, 관계 속에서는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모든 감정과 사건을 조금 떨어져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이 존재한다.

내 안에서 들끓는 화와 짜증도 마찬가지다.

그 감정은 나를 공격하려는 의도를 가진 존재가 아니다. 그저 어느 순간 바람을 타고 내 앞에 떠밀려온 ‘사공 없는 빈 배’ 같은 것일 뿐이다.

그런데 이 ‘빈 배’라는 비유가 유독 마음에 남았던 것은, 얼마 전 아주 사소한 일상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유치원 등원 시간이었다. 아이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야하는데 누군가 모든 층의 버튼을 하나씩 눌러놓은 것이었다. 빨리 내려가야 하는데 엘리베이터는 층마다 멈춰서며 올라왔다.

순간 화가 치밀었다.

‘대체 누가 이런 짓을 해놓은 거야?’

빨리 버스를 타야 한다는 생각까지 더해지면서 마음이 조급해졌다. 누군가 일부러 나를 방해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 순간의 나는 분명히 화가 나 있었고, 그 화에는 아주 그럴듯한 이유까지 있었다.

그런데 엘리베이터가 다 올라온 순간, 안에서는 나와 같은 고층에 사는 피해자들이 버튼 취소를 누르기 위해 함께 올라오고 있었다. 버튼을 누른 사람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지각이 확정됐다.

참 이상했다.

그렇게 치솟던 화가 오히려 가라앉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그 사람에게 화를 낼 수도 없었다. 이미 없으니까. 무엇보다 ‘조금만 빨리 가면 버스를 탈 수 있다’는 기대도 사라졌다. 이제 와서 누군가를 탓한다고 상황이 달라질 것도 없었다.

화를 쏟아낼 대상도 사라졌고, 그 화를 통해 되돌리고 싶었던 미래도 사라진 것이다.

엘리베이터 버튼이 여러 개 눌려 있었다는 사실은 처음부터 끝까지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느끼는 화의 크기는 상황에 따라 달라졌다.

‘누군가 나를 방해했다’고 생각할 때는 화가 났고,

‘이미 늦었고, 이제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이는 순간에는 화가 잦아들었다.

그때 ‘빈 배’의 비유가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어쩌면 우리는 사건 그 자체보다 사건에 붙인 이야기 때문에 더 화를 내는지도 모른다.

누군가 나를 무시했다.

누군가 일부러 나를 방해했다.

누군가 나에게 피해를 줬다.

그렇게 감정에 ‘대상’과 ‘의도’를 붙이는 순간, 화는 점점 커진다.

하지만 그 배가 비어 있다면 어떨까.

화를 낼 대상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화가 났던 사실이 틀린 것은 아니다. 화는 분명히 일어났다. 다만 그 화에 반드시 범인을 만들어주어야 했던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화가 난 것은 사실이지만, 화가 시키는 대로 행동해야 할 의무는 없다.

이것이 내가 이 책에서 말하는 감정의 긍정을 이해하게 된 지점이다.

감정을 없애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아, 지금 내가 화가 났구나.’

하고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

그리고 그 감정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내가 그것을 어떻게 행동으로 옮길지는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

현실의 난관은 현실의 방식으로 해결하면 된다. 해야 할 말은 하고, 필요한 일은 하고, 때로는 관계를 정리하기도 하면서 담담히 노를 저어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그러면서 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감정의 파도까지 억지로 잠재울 필요는 없다.

힘들면 당당하게 남 탓도 좀 하고, 때로는 “어쩔 건데!”라고 말할 수 있는 배짱도 필요하다.

나는 그동안 ‘좋은 사람’이 되는 것과 ‘좋은 삶’을 사는 것을 자주 혼동했던 것은 아닐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화를 참아야 하고, 이해해야 하고, 용서해야 하고, 나 자신을 끊임없이 다독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살아가는 동안 정작 내 감정은 어디에 있었을까.

감정은 없애야 할 대상이 아니라 삶이 살아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기쁘고, 화나고, 억울하고, 질투하고, 서운하고, 사랑하는 그 모든 마음이 나라는 존재를 이루고 있다.

머무는 곳이 현실이든 가상이든, 느끼는 내가 진짜라면 그 감정 역시 진짜다. 영혼과 마음을 부질없이 양분하고 어느 쪽이 진짜인지 끊임없이 검열할 필요도 없다.

그저 세상에 유일한 ‘나’로서 살아가는 것.

삶이라는 바다에서 밀려오는 감정의 파도를 억누르려다 휩쓸려 다치는 대신, 그 파도 위에 올라타 유유히 서핑을 즐기는 것.

어쩌면 자현 스님이 말하는 감정 수업은 그런 것이 아닐까.

감정을 없애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느끼면서도 그 감정에 끌려가지 않는 사람.

화가 나면 화가 난 나를 바라보고, 슬프면 슬픈 나를 바라보고, 때로는 엉망진창인 나까지도 그냥 내버려 둘 수 있는 사람.

그리고 파도가 지나가면 다시 노를 저어 내가 가야 할 곳으로 가는 사람.

이 책은 나에게 ‘착한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는 오래된 숙제에서 잠시 벗어나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감정을 통제하는 삶보다 감정과 함께 살아가는 삶.

타인의 시선에 맞춰 나를 끊임없이 검열하는 삶보다, 내 삶의 무대에서 당당한 주인이자 관객으로 살아가는 삶.

그래서 오늘은 마음속 어딘가에서 또 파도가 밀려온다면, 애써 잔잔하게 만들려고 하지 않으려 한다.

화가 나면 화가 난 대로 인정하고, 억울하면 억울한 대로 바라보고, 서운하면 서운한 나를 그냥 두어보려고 한다.

다만 그 감정에 범인을 만들어주거나, 그 감정이 내 삶의 운전대를 잡도록 내버려두지는 않으려 한다.

어차피 파도는 계속 밀려올 테니까.

그렇다면 억지로 잠재우기보다 올라타 보는 수밖에.

어쩔 건데.

파도가 왔으면, 서핑하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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