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처에 숨어있었는지 갑자기 피에로가 뛰쳐나왔다. 나를 향해 그대로 달려오는 피에로의 몸이 내게 닿는 순간 나는 그의 손이 내 바지뒷주머니속으로 재빠르게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는 나를 지나쳐 저만치서 뒤돌아선 피에로의 손에는 내 지갑이 들려있었다. 피에로는 싱긋 웃으며 내 지갑에서 만 원짜리 한 장을 멋있게 한 장 뽑아냈다.그리고 손가락으로 지갑을 다시 튕겨보냈는데 신기하게도 지갑은 포물선을 크게 그리며 날아와 내 뒷주머니에 다시 정확하게 꽂혔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야.”
내가 어찌된 영문인지 분간을 못하고 있는 사이 피에로는 그 한마디를 남기고는 총총히 어두운 골목으로 사라져갔다.
“이런, 젠장,”
물론 진작에 지불했어야 하는 돈이었지만 삐에로에게 거의도둑맞 듯 털려버리자 내 입에서는 욕설이 저절로나왔다.
“싸게 주었으니까 선전이나 잘해줘.”
완전히 사라진 줄 알았던 삐에로의 소리가 어두운 골목에서 다시 나오자 나는 얼른 제 자리에 섰다. 혹시나 피에로의 행적을 알아챈 검은 선글라스들하고 다시 마주칠까봐 서였다.나는 피에로를 추적하는 것을 그만두고 신경을 바짝 세우며 집으로 들어왔다.
그날밤 나는 아내 몰래 문제의 휴대폰을 꺼내서는 마침 비어있던 아이들 방으로 들어갔다.겉으로봐서는 무척이나 평범한 휴대폰이었지만 지하상가에 벌어진 그 총격상황이 자꾸 마음에 불안하게 다가왔다,
인파가 붐비는 시간대에 정체불명의 사내들이 비무장한 민간인에게 마구 총질을 하다니 그건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놀라운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지금 내 손에 얌전히 놓여있는 휴대폰은 어쩌면 선글라스의 사내들에게는 민간들인들을 사살해서라도 회수를 해야할 만큼 중요한 물건일 지도 모른다.
“……!”
하여간 휴대폰의 겉모양을 유심히 뜯어보던 나는 마침내 망서리던 마음을 접고 휴대폰의 전원을 켰다. 맑은 음이 흘러나오면서 휴대폰 제조사의 로고가 LCD창에 화려하게 떠올라왔다.
“먼저 저희 입체 휴대폰를 구입해주신 고객님께 감사드립니다. “
마치 달콤한 숨소리까지 느껴지는 듯한 여자의 나긋 나긋한 음성이 방안을 감미롭게 울렸다. 단순한 녹음용 목소리가 아니라 누군가 내 옆에 붙어서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매력이 넘쳐흘렸다. 나는 야릇한 흥미를 느끼며 휴대폰에서 흘러나오는 다음 말을 기대했다.
“본 제품은 고객에게 숨겨진 애인을 찾아드리는 최첨단 입체 휴대폰입니다.”
(……!)
” 먼저 전원을 켜고 본 휴대폰에 장착된 초정밀 센서인 렌즈를 향하여 고객님의 눈동자를 비추어 주시기 바랍니다. 그것으로 모든 절차는 끝납니다.”
나는 얼른 휴대폰의 액정 위에 움푹 패여져 있는 렌즈를 바라보았다. 내 시선을 인식했는지 그토록 무심하게 보이던 렌즈에서 붉은 불빛이 반짝거렸다.
“단 주의하실 점은 초기화가 진행되는 100일 동안은 절대로 본 휴대폰으로 통화를 해서는 안됩니다. 이 기간중에 통화를 하게되면 숨겨진 애인을 찾는 모든 초기화 작업이 수포로 돌아가고 맙니다. ”
(그까짓 거 뭐 어렵다고 또 잔소리야.)
피에로에게 이미 듣은 경고였지만 다시 그것을 접하게 되자 나는 미간을 약간 찌푸렸다.원래 휴대폰 사용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내게 그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그 조건이야말로 ‘전설의 고향’에서 여우가 사람이 되기 위해서 100일동안 날고기를 먹지말아야 한다는 것 이상으로 어렵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기에 나는 그 조건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
내가 한동안 렌즈에서 시선을 떼지않자 센서는 마침내 노란색 가느다란 광선을 내 눈속으로 쏘았다. 그후 액정밑의 빈 동그라미 속에서는 차례로 地(지), 畜(축),餓(아),隧(수),人(인), 天(천),聲(성),緣(연),菩(보),我(아)라는 한자(漢字)가 떠오르며 원을 가득 채웠다. 그 위를 따라 파란 불빛이 순차적으로 조용히 돌기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청자빛 바다같았던 액정 한 가 운데에
‘손님의 마음을 복사하였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보름달처럼 떴다. 뒤이어 예의 정감넘치는 고운 목소리가 다시 흘러나왔다.
“고객님께서는 통화 버튼을 눌러주시겠습니까?”
“까짓것, 밑져야 본전이다.”
이윽고 나는 장난기와 모험심이 발동한 손가락으로 목소리의 요구대로 통화 단추를 꾹 눌러주었다.
“감사합니다.”
나의 선택에 무척 들뜬 듯한 여자의 말이 낭랑하게 방안을 맑리며 아쉽게 사라지자 휴대폰은 내부에서 뭔가 작동하는 듯 기계음과 함께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리고 잠시 후 휴대폰은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예전의 지극히 평범한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나도 숨겨진 애인찾기를 시작한 휴대폰을 그냥 내 바지 주머니에 푹 쑤셔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