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을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는 내 귓가에 초기화중에는 절대 통화를 하지말라는 피에로의 경고가 다시 벼락처럼 들려왔다.
“85%라, 그냥 허망하게 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워.”
똥줄이 타는 다급한 상황이었지만 나는 굳이 휴대폰의 초기화 작업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대신 나는 공중전화 박스를 찾아 주변을 정신없이 헤맸다.그러나 요즘처럼 개인 휴대폰이 일반화된 시대에 거리에서 공중전화를 찾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않고 미친 놈처럼 이리저리 뛰어 다녔다.
점점 시간에 쫓기게 되자 나는 다시 휴대폰을 사용하고싶은 강한 유혹에 다시 시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간신히 견디어냈다. 마침내 나의 정성이 하늘에 닿았는지 어느 으슥한 골목의 슈퍼 앞에서 낡아빠진 공중전화 박스를 간신히 찾아냈다.
공중전화의 수화기를 움켜쥔 나는 정신없이 사무실 전화번호를 눌러댔다.마감 1분 전이었다. 나는 신호음이 떨어지는 것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이윽고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그는 야차와 같은 오부장이었다.
“무슨 일이야?”
“저….. 제가 공유 드라이브에 자료를 올리는 것을 깜박했거든요”
“뭐, 뭐야 ,그것을 왜 이제 이야기 하는거야!”
“공중전화를 찾다보니까 늦었습니다.”
“내 언젠가 이럴 줄 알았어! 너 회사 말아먹으려고 아주 작정한 거지?”
“죄…..죄송합니다. 그보다도 빨리 그 자료를…….”
“나도 몰라 , 이미 벌써 마감 시간이 지났잖아!”
“부장님, 제발 저좀 살려주세요.”
“에잉, 전산실에게 네가 직접 이야기해!”
“부장님, 제발,”
나는 거의 울상이었다.나의 보고를 받으면서 이미 오부장이 전산실에 손을 쓰고 있으리라고는 추측은 했지만 나의 불안감에 극도에 달했다.
“너 이번에도 휴대폰 안 사면 죽을 줄 알아!”
“알,,,,,알겠습니다.”
나는 최악의 전산사고를 막아야한다는 절박감에 거의 죽는 시늉까지 해야했다. 나는 그날 휴대폰을 제 때에 쓰지 않으면 엄청난 재앙을 당할 수도 있는 시대에 살고있음을 새삼 뼈저리게 느꼈다. 그날 이후에도 나는 하루에도 몇번이나 숨겨둔 휴대폰을 무심코 꺼내어 쓰려다 깜짝 놀라서 그만두곤 했다. 정말 그건 살을 깍는 듯한 고통스런 수행이었다.
하여간 그렇게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마침내 불통화 기간이 96일까지 다다랐다. 액정에 새겨진 숫자를 바라보는 나의 가슴은 마치 아름다운 첫날밤을 맞기 위해서 온갖 유혹을 물리치고 순결을 굳게 지켜온 처녀의 고운 마음처럼 두근거렸다.
(그래 조금만 더 참자.)
고지점령을 눈앞에 두고 있는 병사처럼 나는 결의를 다시 다졌지만 마침내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으면 결정적으로 죽음을 맛보아야 하는 엄청난 시련이 다가왔다.
그날은 마침 휴일이라 아내몰래 문제의 휴대폰을 주머니속에 깊숙이 숨기고 역전에 있는 백화점으로 쇼핑을 나갔다.평소 보고 싶었던 영화도 감상하고 난 후 나는 지하 음식점 코너에 들려 가볍게 점심을 즐기고 있었다.
식탁에 잠시 내려놓은 휴대폰의 액정에는 97이라는 숫자가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
새삼 감회에 젓듯이 숫자를 바라보고 있을 때 갑자기 건물 천장부분에서 뭔가 부러지는 듯 둔탁한 소리가 나더니 건물이 조금 흔들렸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맞은 편의 천정부분이 힘없이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음식점 코너는 놀란 사람들의 비명소리로 삽시간에 아비규환의 장으로 변하고 말았다.
어쩔 줄 몰라 허둥대던 나에게 매캐한 시멘트 가루가 폭풍우처럼 밀려왔다. 그 바람에 나는 비명을 지르면서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문득 정신이 든 나는 주변을 살펴보았으나 사방은 온통 암흑천지였다. 나는 무너진 건물의 기둥이 벽에 비스듬이 걸리는 바람에 생긴 조그만 공간속에서 가벼운 생체기만 입은 채 갇혀 있었다. 깊고 깊은 바다속에 빠져버린 듯한 절망감에 나는 목청껏 소리를 질러댔다.
“사람 살려!”
그러나 아무리 고함을 질러도 깊은 암흑으로 변해버린 음식점 코너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지금 밖에서는 대형 백화점이 무너졌다고 난리가 났을텐데도 말이다. 너무나 고함을 질러 기진맥진해버린 나는 구조요청을 잠시 포기하고 시무룩하게 잠시 침묵을 지켰다. 다시 익숙치 않은 거대한 암흑이 죽음의 공포를 몰고 왔다. 나는 다시 발작적으로 건물더미를 헤쳐내려고 발버둥쳤다. 그렇지만 그 바람에 다른 건물의 잔해가 조그만 공간으로 우수수 쏟아지는 바람에 나는 질겁을 하고 그만 포기해버렸다.
나는 이렇게 어이없이 죽는가?
그때 어디선가 아련히 휴대폰 소리가 들렸다. 정확한 위치를 알 수는 없었지만 나처럼 건물더미에 깔린 어느 희생자의 주머니에서 나는 소리같았다. 그러나 계속되는 애절한 벨소리에도 불구하고 휴대폰의 주인은 이미 사망했는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 휴대폰!”
나는 허겁지겁 바지 주머니를 뒤졌다. 그런데 텅빈 주머니에는 휴대폰이 없었다. 그때서야 붕괴사고가 나기전에 식탁에 휴대폰을 올려놓은 것을 깨달고는 미친듯이 주변 바닥을 더듬었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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