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아침 출근 하려던 나에게 아내가 갑자기 물었다. 원하다면 아내에게 자수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다시 찾아왔다.
“ 아니,”
나는 주머니속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지만 시치미를 뚝 땄다.
“ 벌써 찾아갔어?”
“응,”
“이삼일 후에 찾으러 온다고 그랬잖아요?”
불현듯 의심이 드는 듯 아내의 눈꼬리가 살짝 치켜진다.
“그랬는데 어제 저녁에 부랴 부랴 사람을 보내서 찾아갔어.”
“그래요? 휴대폰 주인이 고맙다고 안해?
“나중에 자기가 올라와서 직접 사례하겠대. ”
“말로 때울 작정이야.”
“좀 인색하더구먼. 그런데 그 휴대폰은 왜?”
나도 아내의 표정 변화를 면밀히 살피며 되물었다.
“내 휴대폰 건전지가 마침 죽어버려서 그것 한번 사용해보려고 그랬지.”
“남의 것 좋아하지마! “
“최신제품 한번 써보려고……”
“그래도 쓰던 것이 좋은 법이야.”
“알았어.”
태연하게 내뱉는 나의 훈시에 눌려 아내는 슬그머니 물러갔다. 하여간 그렇게 해서 나의 입체휴대폰이 아내에 의해서 사용될 뻔한 첫번째 위기(?)는 잘 넘어갔다.
나는 일단 아내에게 휴대폰을 주인에게 돌려주었다고 거짓말을 했으로 이제 그 휴대폰은 절대 그녀의 눈에 띠면 안되었다.
나는 한참을 궁리한 끝에 휴대폰을 회사 사무실의 서랍속에 감추어두기로 했다. 사무실은 일단 아내의 손이 미치지 않는 안전지대였으니까. 그래도 회사 사람들 눈에 띄일까봐 외근을 나갈 때에는 휴대폰을 몸에 지니고 다녔다.
“……!”
그동안 휴대폰의 액정에는 초기화가 진행되는 일수를 나타내는 숫자가 매일 바뀌어 갔다. 그와 더불어 나의 기대감도 덩달아 부풀어져 갔다.나는 마치 지갑에 복권 한 장 을 사서 담고 다니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뿌듯한 기분에 하루 하루가 즐거웠다. 나중에 설사 꽝으로 판명되어도 그동안 행복했었던 것으로도 좋았듯이 휴대폰도 지금 나에게는 그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후 사무실도 그리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것이 곧 판명되었다. 어느날 내가 잠깐 화장실에 다녀오자 직장 동료 김계장이 내 자리에서 앉아 있다가 묘한 웃음을 흘리며 불쑥 말한다.
“이야, 오계장, 휴대폰 언제 마련했어?”
“무슨 휴대폰?”
나는 속으로 뜨악했지만 최대한 능청을 떨었다. 그러자 김계장은 이상한 웃음을 지으며 내 책상의 서랍을 슬쩍 열며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거기에는 내가 은밀히 감춰두었던 휴대폰이 겸연쩍게 모습을 드러냈다. 김계장이 자기 컴퓨터가 고장나는 바람에 내 책상에 잠깐 일하다가 우연히 그것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휴대폰을 새로 샀으면 즉각 신고를 했어야지. 전화 번호가 몇번이야? 아니지. 나한테 걸어봐라.”
김계장은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어들고는 나를 빤히 쳐다본다. 어찌할지 몰라 잠시 당황하던 나는 궁여지책으로 대꾸했다.
“이 자식아, 이건 우리 와이프 휴대폰이야. 내 와이프 전화번호 알아내서 뭐 작업걸려고?”
매우 궁색한 반박이었지만 그 말은 김계장에게 통했다. 그는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그러면서도 그는 계속 이상한 미소를 실실 흘렸다.
“하여간 너 능력좋다.”
김대리의 말투는 마치 내가 은밀히 사귀는 여자로부터 선물받은 휴대폰이라고 확신한다는 것이었다. 지금의 상황에서는 차라리 그편이 더 나았다.
“아무튼 다른 사람에게는 비밀이다.”
“임마. 너 진짜 와이프한테 들키지나 말아라!”
입체휴대폰을 발견한 김계장 건은 그렇게해서 무마되었다. 그날 이후 나는 다시 휴대폰을 내 몸에 지니고 다녔다 .그러나 며칠 후 김계장 건보다 더 심각한 사건이 터졌다. 그날도 나는 잠시 밖에 외근할 일이 있어서 사무실을 잠깐 비웠다.
“……!”
볼일을 보다가 문득 나는 그날이 마침 월말 결산이라는 것을 깨달자 갑자기 가슴이 쿵쾅거렸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날 은나는 바쁘 게 외근을 나오는 바람에 회사의 공유 드라이브에 내가 작업한 테이타를 올려놓는 것을 깜박 잊었던 것이다. 만약 그것들이 중앙컴퓨터에 반영이 안되면 내일 김국장에게 보고할 리포트를 만들어 낼 수가 없었다. 이제 10분 후에 전산실에서 사무실 직원들이 작업을 하고 공유 드라이브에 로드시켜놓은 것들을 모두 중앙 컴퓨터속으로 끌어갈 것이다.
“이런, 빌어먹을!”
나는 하늘이 무너지고 노랗게 변하는 당혹감속에 야찰과 같이 나를 노려보는 김부장의 얼굴을 떠올리며 부르르 몸서리를 쳤다. 나는 재빨리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휴, 살았다.”
한 숨을 내리쉬며 서둘러 휴대폰의 번호를 누르던 나는 액정에 떠오른 ‘85’라는 숫자를 발견하고는 멈칫했다. 그것은 지금 내 휴대폰은 애인찾기 명령을 수행하기위해 초기화의 85%까지 나아갔다는 것을 의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