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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정치학 - 기독교 세계 이후 교회의 형성과 실천
스탠리 하우워어스 지음, 백지윤 옮김 / IVP / 2019년 12월
평점 :
1991년에 출간된 원서가 30년 가까이 지난 2019년에야 국내에 소개되는 경우는 흔치 않을테다. 만약 그런 책이 있다면 분명 세월이 지나도 읽을 가치가 있는 유의미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IVP에서 출간된 <교회의 정치학>이 바로 그런 책이다.
이 책의 원서 제목은 <After Christendom? : How the church is to behave if freedom, justice and a christian nation are bad ideas>으로서, 많은 경우가 그렇듯 부제(“자유, 정의, 기독교 국가가 나쁜 생각이라면 교회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에서 이 책의 주제를 좀 더 명확히 이해하는 단서를 제공받을 수 있다.
저자인 스탠리 하우어워스가 펼치는 핵심 논제는 간단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구원, 정의, 종교적 자유, 성, 교육 등 다양한 영역의 사회적 통념과 전제들을 문제 삼고(부제의 “자유, 정의, 기독교 국가가 나쁜 생각이라면”에 해당), 이를 교회의 정치, 교회 중심의 해석으로 전환시킨다(부제의 “교회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에 해당). “교회됨”을 강조하는 스탠리 하우어워스의 신학이 “정치적”으로 어떻게 작용하는지 고스란히 보여주는 책이 바로 <교회의 정치학>이다.
논제에 따라 먼저, 그가 하는 “문제 제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구원의 정치학」(1장)에서 그는 콘스탄티누스로부터 시작된 크리스텐덤(국교가 된 기독교)이 수많은 사람들을 살리고 구원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기독교를 ‘증언하고 살아내는’ 신앙이 아닌 ‘하나의 믿음 체계’로 규정시켜 버렸다고 꼬집는다. 「정의의 정치학」(2장)에서는 ‘정의’가 기독교적 전제로 채색하지 않은 사회적 행위자가 되는데 사용되고 있다는 점과 이렇게 자유주의 사회가 만든 정의의 개념에 사로잡힌 그리스도인의 상상력에 대해 지적한다. 「자유의 정치학」(3장)에서는 국가가 종교의 자유를 허락한 점이 잘한 것이라는 전제에 대해 깨우치는데, 특히, 법적으로 보장된 종교의 자유에 주목한 나머지 복음을 진리로 선포하는 것과 국가에 대해 ‘아니오’라고 말하는 진정한 ‘자유’와 ‘용기’를 상실한 교회를 경계한다. 이 책의 핵심인 「교회의 정치학」(4장)에서는 ‘돌봄’과 ‘훈련’이 양립 불가한 것처럼 보이는 현대 교회가 ‘돌봄의 공동체’가 되고자 하는 유혹에 빠져있음을 지적한다. 그에 따라 그리스도인됨이 자기 이해의 범주 및 그것과 상관있는 돌봄에 대한 인식으로 이해되는 것 또한 안타깝게 여긴다. 「성의 정치학」(5장)과 「증언의 정치학」(6장)에서는 좀 더 실제적인 영역인 ‘성’과 ‘교육’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한다. 혼란스런 성윤리와 결혼이 만든 가정이 우리의 중심이 되어감을 상기시킴과 동시에 공교육에서 일어나는 역사적 사실의 왜곡에 대해 교회가 아무런 도전을 하지 못한 것을 비평한다.
그렇다면 각 장마다 제시한 문제에 대한 해답은 무엇인가? 하우어워스가 개정판 서문에 밝히듯 자신도 이 책에서 제기하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모른다고 고백한다(그래서 제목 끝에 물음표가 달려있다고 한다). 다만, “나에게 중요한 문제는 대안의 부재보다, 그리스도인들이 현대 국가가 대표하는 거짓된 보편주의와 협상하는 법을 어떻게 배우는지 밝히는 것이다.”(20p) 그리고 “우리는 계속 나아감으로써 계속 나아간다.....참으로 나는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은 우리의 것이 아님을, 세상을 안전하게 만들 수 없음을, 그리고 해결책은 존재하지 않음을 인식함으로써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대로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20p) 그리스도인의 그리스인됨, 교회의 교회됨이 이 책에서 하우어워스가 제안하는 유일한 해답 아닌 해답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교회 바깥에는 ‘구원’이 없다! 우리는 유일하게 구원의 예증을 삶으로 보여주는 교회 공동체에서 구원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1장). 사회질서가 갖는 한계에 저항하기 위해 ‘정의’보다 우리가 우선적으로 붙잡아야 할 것은 하나님이시며(2장), 교회의 ‘자유’는 국가가 허락하는 종교의 자유에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신실함에서 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3장). 그리고 구원을 믿음의 체계로만 인식하는, 개인을 위한 복음을 넘어서기 위해 교회는 ‘훈련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벽돌 쌓은 법을 배우는 것처럼 교회 공동체 안에서 스승으로부터 그리스도인됨을 훈련할 때 우리는 진정한 제자가 되어갈 것이다(4장). ‘성’과 가정의 영역에서도 공동체 일원, 공동체의 관계 안에서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 하며,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방법 중 하나로 독신이 있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5장). ‘교육’에서 우리는 우리의 삶을 결정하는 권세들을 분명히 명명하도록 도와줌과 동시에, 세상의 전제 반대편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증언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6장).
37쪽에 달하는 주석 분량은 이 책이 국내에 출간된 스탠리 하우어워스의 책들 중에서도 학술적으로 좀 더 치우친 책이라는 걸 알려준다. 게다가 각 장마다 등장하는 많은 이론가, 신학자들의 다양한 개념들은 어렵게 다가오기도 한다. 하지만 하우어워스의 안내를 계속 따라 가보면, 난해함을 지나 분명한 문제 제기와 교회됨에 대한 필연적 자각에 이르게 된다. 그게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부디 이 책을 통해 많은 이들이 자신을 사로잡는 사회적 통념과 전제에 스스로를 그냥 내어주지 않고,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상상력으로 갱신되고 충만해지는 새해가 되길 바라본다.
“정답 없이 사는 것을 배우면서, 또한 기독교 세계 이후를 사는 것을 배우면서, 그리스도인들은 생존법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바라건대 우리가 발견한 그 생존법은 우리 자신의 삶에 놀라움을 줄 뿐 아니라, 우리의 비그리스도인 형제 자매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가 예배하는 하나님을 생각하면, 그렇게 기대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20~21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