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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로 하나 될 때까지
프랜시스 챈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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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이라는 마약을 다양성과 자유라는 포장지로 덮어 상품처럼 판매하는 요즘에는 

우리의 하나 됨(엡4:3)을 위하여 자신을 여러갈래로 찢어주신 주님(삼상11:7)이 생각난다.


분열은 특별한 일인가 - 아니면 - 보편적인 일인가


사견으로는 분열은 응당 (본래 계획 되어있지 않다는 점에서) 

특별한 일이지만, 동시에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로마서 3장 10절의

고백에 따라 보편적인 일임에 분명하다. 모순적으로 보이나 사실 그렇지 않다.

역설(paradox)처럼 모순을 일으키는 듯 하지만 그 속에 중요한 진리가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긴 하지만 본래 일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특별한 현상임으로 우리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힘써야한다는 말이다

비유하자면, 현재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에 퍼진 펜데믹과 같다

주변에 흔히 일어나지만, 그러나 동시에 특별한 현상이지 않은가?


이 바이러스를 해결하기 위해 힘쓰자는 명제에 반대하는 자는 절대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은 '분열' 이라는 바이러스도 이처럼

해결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본래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있던 존재가 아니며, 예수님께서 우리를 하나되게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니, 바울은 교회가 분열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이렇게 말한 것이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4:3)]

이렇게 분열이라는 것은, '좋지 않은 것이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

(창1:31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과 반대된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질문한다. 다양성이 왕좌에 앉은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엔

무엇을 해야하냐고 말이다. 아니, 우리는 먼저 다양성이 왕좌에 앉은 것 자체를

용납해서는 안된다. 이는, 마치 그 옛날 일본으로부터 국권을 침탈당한 조선의 백성들이 

'일본이 우리의 주인이니,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합니까?' 라고 질문한 것과 같다.


무엇을 해야하나? 역사는 무엇이라 말하는가? 일본이 불법으로 우리의 주인이 됨을

막아서야 하며, 분열된 조선의 백성들을 하나로 모으는데 힘써야함을 말하지 않는가

오늘날 우리가 해야하는 일도 바로 이것이다. 이렇듯 이 시대의 철학과 사상이 우리의

주인이 되지 못하도록 해야 하며, 교회를 분열시키는 것들로부터 수호자가 되어야한다


주님은 '연합' 을 위해 오셨다. 그 분이 찢기신 이유는, 우리의 하나됨을 위함이

맞다. 하나님과 우리의 하나됨. 또 나와 너의 하나됨. 거시적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주님의 명령 역시 이 범주 안에 포함되는 것이다. 분리되지 않고도

분별될 수 있는 삶, 구분되지 않고도 구별되는 삶, 그것이 바로 신비로운 우리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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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다움 - 당신을 위한 에베소서
리처드 코킨 지음, 장성우 옮김 / 두란노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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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가 서비스직으로 돌아선지 어느덧 수십년, 고객 확보를 위해 달려오다보니 

언젠가부터 잃어버리게 된 '교회다움(엡1:23)'. 애석하게도 제자는 없고, 손님만 있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후, 글을 갈무리할겸 나의 생각을 되새겨보니 

위의 글상자와 같은 내용이 흰 종이에 남아 있었다. 굉장히, 슬픈 이야기다.

현재 교회의 목회자로 살아가는 내 인생에는 교회는 언제나 아픈 손가락이고

기도의 대상이며, 걱정과 근심의 공동체이다. 바울도 이런 심정이였을까?


젊은 목회자인 나는, 교회를 사랑한다. 주님의 몸된 교회가 나를 길렀고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은혜가 은혜됨' 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실, 나는 바울에 가깝기보다는 나이와 성격, 여러 형편에 맞춰보자면

디모데에 훨씬 가까운 사람이다. 날마다 '연소함(딤전4:12)' 과 싸우고 있기에.


특히, 바울이 디모데와 디도에게 쓴 편지를 사랑하며. 역시 여러 교회의 성도들에게

쓴 나머지 편지들도 마치 동시대를 살아가는 자에게 받은 마음으로 늘 읽어낸다.

여지껏, 바울과 같이 내 앞을 지도해주는 뚜렷한 존재가 없었기에 바울은 멀지만

늘 가까이두고 찾게 되는 신앙의 선배이자 아버지 같은 묵직한 존재다.


나에게 실망하고, 교회 공동체의 아픔에 눈물 흘릴 때 찾아가 호소하고픈 

그런 사람이다. 그래서, 그럴 때마다 바울의 편지를 꺼내 읽는다. 그가 마주한

문제를 공감하며,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지혜와 은사, 그보다 큰 은혜들로 고난을

이겨내는 모습에서 나는 쓰러졌다 다시 일어설 힘을 얻기 때문이다. 


에베소서는, 교회를 사랑하고 섬기는 자들에게 쓰는 편지라고 한다.

그래서 그 안에 위로가 많고, 바울의 따뜻한 심성을 자주 느낄 수 있다

(확실히, 고린도전후서랑 다르다 ^^) 저자는, 마치 두기고처럼. 디도와

디모데처럼. 바울의 편지를 전달하는 자다. 21세의 언어로 번역했을 뿐.


복음의 진수를 자세히 정리해놓은 1부와, 복음의 행함을 섬세하게 권면하는 2부는

페이지를 넘겼다가 다시 되돌아가를 반복할만큼 유용하고 탁월하다. 솔직하게

나와 같은 설교자에게는 굉장히 유용한 자료이자, 도움이 되는 스승의 편지 같다.

책을 읽다보면, 겁도 없이(?) 에베소서 전체를 강해하고픈 자신감이 샘솟는다(웃음).


현재, 갈라디아서를 붙잡고 청년들과 연속 설교를 진행하고 있는데. 올 여름의

끝자락에는 에베소서를 함께 펼쳐보아야겠다. 그들에게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인한 풍성한 은혜를 이야기하고, 그 은혜를 누리는 삶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음은

하나님이 부르신 목회자됨의 겸손한 특권이 아닐까 자부해본다. 생각만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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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을 걷는 기도 - 위기의 동반자가 되어 줄 존 던의 하나님 대면 기록
필립 얀시 지음, 홍종락 옮김 / 두란노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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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통은, 인생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화려한 꽃과 같다. 태어나면, 자상한 아버지들은 목숨 건 출산 과정을 겪은 아내와 자녀에게 꽃을 선물해줄 것이고, 목숨을 다하면, 다정했던 아내와 소중한 아이들이 내 마지막 가는 길을 꽃으로 수놓아 줄 것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나의 고통을 노래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애가(哀歌)라고 부른다. 이런 애가는 우리 삶의 전반에 흐르는 배경 음악(BGM)과도 같다. 언제 어디서나 들릴 것이고, 당시 나의 상황을 그 무엇보다 잘 표현할 것이기에 그렇다. 필립 얀시가 풀어쓴 '존 던의 기도 일기' 는 아직 인생의 마지막 여정에 도달하지 못한 자에게 울림을 준다. 먼저는, 그렇게까지 하나님을 몰아세워야하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어서이고, 나중으로는 나 역시 그렇게까지 고통을 울부짖을까 하는 두려움이 들기 때문이다. 


우리 대부분은 죽음을 통째로 회피하는 정교한 방법을 생각해 낸다. 건강식품점과 헬스클럽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 육체의 건강을 종교처럼 떠받드는 동시에 죽음을 연상케 하는 영안실, 응급실, 묘지 등은 일상에서 차단한다. 240page


   필립 얀시는 죽음(고통)을 대하는 '죄인들' 의 태도를 정확히 짚어낸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라면. 그래. 우리라면 뭔가 달라야하지 않을까 -하는 시사점을 전해준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모두 넘긴 이들이라면 쉽게 알아차리겠지만, 존 던은 결국 끝내 '누가, 왜 이 질병, 이 역병을 일으켰는가?' 에 대한 답을 얻지 못한다. 다만, 그는 어떤 거대한 실존의 질문 앞에 서 있다는 사실만을 깨닫는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선택해야만 하는 그런 상황처럼 존 던은 원인은 모르지만 다가오고 있는 죽음 앞에서 하나님을 신뢰할 것인가? 아니면 그를 저주하고 떠날 것인가? 하는 거대한 실존 앞에서 눈을 질끔 감았다. 그리고, 하나님을 신뢰하기로 결정한다. 그렇다. 비록, 아무런 자료도 주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는 그를 신뢰하는 법을 배워간다. 마치, 어릴 적 어머니가 자장가로 불러주셨던 '날 사랑하심, 성경에 써있네' 라는 짤막한 찬송 가사처럼 우리는 그 자체를 믿어야하는 시험대 앞에 서는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다니엘의 세 친구로 잘 알려진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 의 고백이 생각났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단3:18)! 모든 고통과 죽음의 문턱에서 우리가 씩 웃어보이며 나지막이 읊조리고 싶은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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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적으로 건강한 제자 - 삶의 깊은 변화를 동반한 제자의 길 Emotionally Healthy 시리즈 4
피터 스카지로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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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실패담을 남에게 발설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님이 분명하다. 더군다나, 그것을 기록으로 남겨 많은 사람들이 보게끔 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목적이 있다면 가능하다. 나의 실패를 거름 삼아 누군가 그 실패를 굳이 경험하지 않아도 된다면 내 실패를 드러냄은 유익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대게 '정서적으로' 건강하다. 자신의 실패나 약점 드러내기를 그 자체로 두려워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소중한 자동차 키를 가시덤불에 빠뜨렸다고 하자 보통은 주저하기 마련이다. 입구에서 손을 넣을까 말까 고민하다,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도구가 될만한 게 없는가 살핀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보이는 평범한 반응이다. 그러나, 정서적으로 건강하지 않은 사람은 여기서 좌절감을 느낀다. 내가 좀 더 신중하지 못했음을 탓하며, 손을 넣었을 때 다칠 상처를 생각해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다. 하지만, 정서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상처 없이는 얻을 수 있는건 없지!" 하며 주저 하지 않고 덤불 사이에 손을 쑥 집어 넣는다. 그리고, 이내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이루어 낸다! 그리고, 손에 생긴 생채기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오히려 집으로 돌아가 자랑한다. 한국 정서로 이런 사람이 조금 철이 없어 보일 순 있지만, 이런 정신을 가진 사람만큼 건강한 사람도 없다. 책을 읽고 난 후 피터 스카지로가 이런 사람처럼 보였다! 그리고, 나도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자체만으로 책이 목적한 바를 (적어도 내게 있어선) 달성하지 않았나 싶다. 한국 교회의 실패 이야기는 이제 지겹다. 이제 실패의 현장과 그 원인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주일학교 꼬맹이들도 다 아는 사실이다. 이제는 한국 교회의 성공 이야기가 그립다. 60-80년대의 대형 교회와 같은 성공 모델이 아니라, 이전엔 없었던 하나님 나라의 형상이 투영된 성공말이다. 이제는 건강하고 싶다. 이제는 좀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교회이고 싶다. 상식이 통하고, 말이 되는 교회로 살고 싶다. 이 책은 그런 소망을 포기하지 않고, 냄새 나는 똥밭에 손을 쑥하고 넣을 수 있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필요한 책이다. 나와 당신이 있는 그 자리, 그 교회, 그 십자가에서 기쁜 소식이 들려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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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켈러의 부활을 입다 - 인생 단 하나의 희망, 하나님의 위대한 반전
팀 켈러 지음, 윤종석 옮김 / 두란노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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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이 질문을 꽉 틀어막는 유일한 대답은 바로 '부활' 이다. 우리가 그토록 동경하는 초대 교회 사람들은 '부활' 을 믿었으며 '부활' 을 전했다. 이 부활이 얼마나 중요한지 바울은 '부활' 이 없으면 우리의 믿음이 헛되다 말한다. 얼마나, 이 정체성이 뚜렷했는지 사람들은 그 당시 그리스도인들을 '죽은 자의 부활을 전하는 자들' 이라 불렀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더 이상 그 별명을 유지하고 있지 않다. 십자가 죽음만 전할 뿐 부활은 성도들에게서조차 외면당했다. 바울은 부활이 없다면, 예수는 그리스도일 수 없다 말한다. 부활 없는 십자가야말로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부활을 믿지 못하는 자야말로 가장 '불쌍한 자' 이다. 부활이야말로 우리의 시작이자 또 끝이다. 우리의 이야기는 부활로 시작해서 부활로 마친다. 주님의 부활을 믿고, 주님의 부활에 동참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부활은 단순히 하나의 절기로만 '기념' 되어서는 안되고, 우리 성도들의 전부가 되어야만 한다. 부활을 알고, 부활에 동참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어떻게 그런 것이 가능할까? 팀 켈러 목사님의 이 책을 읽으면 된다. 그럼 우리는 희망 없는 내 삶과 이 세상에서,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진정한 소망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 바로,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행하심이다. 이 책은, 교회를 다녔지만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 그리고 부활에 대해 자세히 듣지 못한 자들에게 도움이 된다. 부활은 신앙 생활에서 하나의 이벤트도 아니고, 선택 강좌처럼 골라서 알아야 하는 변방의 교리도 아니다. 우리는 부활로 설명되고, 부활로 이해되는 자들이다. 이 책을 통해,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다시 한번 '부활의 사람들' 로 재조명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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