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포도 홍신 세계문학 7
존 스타인벡 지음, 맹후빈 옮김 / 홍신문화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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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거의 모든 것들에 관심이 있는 내가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 있다. 


역사, 

특히 미국의 역사. 


이제 10여년이 넘게 살아가고 있는 이땅에

지나간 이야기에 왠일인지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 


분노의 포도가 미국사를 다루지는 않았지만, 

1930년대의 오클라호마 소작인들이 땅을 잃고 서부를 이동하는 사건을 통해 

그 시대를 사는 삶을 보았다. 


거칠 것 없는 돈의 권력에 맞서는 연대하며 일상을 일구어 가는 사람들. 

쉽게 그려낼 수 없는 희뿌연한 먼 미래의 희망보다는 

하루 주어진 일들을 해내고, 한끼의 배부름을 이루어나가는 삶. 


세상의 중심이 내가 되어 

내 꿈, 내 가족이 목표가 되어 경주마처럼 달리는 이들은 

아마도 그들을 원하는 것을 이룰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성공이 100% 보장되지 않은 건 마찬가지다. 다만 확률적으로 가능성이 높아질 뿐이다. 

객관적으로 얘기하면 높아진 확률로 더욱 편안한 마음이 되어야 하는게 마땅(?)한데, 

실제로는 여전히 존재하는 비확실성으로 불안, 두려움이 가중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주위를 볼 겨를이 없다. 

아니 보이지 않는다. 

특히, 

자신들의 이익에 도움이 하등 될 것 없고 오히려 해가 될거라 생각하는

보잘 것 없고 가난하고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은 아웃오브 안중이다. 

눈이 보일 턱이 없다.  


하지만, 

한 없이 작고 모든 것을 잃어버려 

주변부에서 한없이 서성이는 자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남을 돌보고, 생명의 숨을 불어넣는다. 


그렇게 삶이 계속되고, 역사를 만들어 내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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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omy 2023-08-19 11: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좋아하는 소설입니다~ 마지막이 좀 어이없었지만요 -_-;

han22598 2023-08-22 05:28   좋아요 0 | URL
저도 이제 좋아하는 소설이 됐어요 ㅋㅋ
저는 마지막이 제일 좋던데, 마지막이야말로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었던 같았는데,
궁금하네요, 누미님은 왜 어이없어 하셧을까요?

noomy 2023-08-23 10:30   좋아요 1 | URL
han22598님의 댓글을 보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맞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 장면이 작가가 남기고자 했던 궁극적인 메시지라는 것 말이에요. 그리고 그렇게 쓴 것이 어쩌면 가장 현실적이면서 극적인 전개라는 것도요.

생각해 보면 두 가지가 좀 마음에 걸렸던 것 같아요. 하나는 구성적 측면, 나머지는 내용적 측면에서요. 시종일관 절망적으로 흘러가던 소설의 결말 부분에서 어떻게든 희망의 메시지를 주려고 했던 구성이 저에겐 좀 억지스러웠나 봐요. 차라리 자연스럽게(너무 슬프지만) 홍수 이후의 상황을 무기력하게 관조한다든지 아니면 비가 그치고 지쳤지만 조금씩 복구를 위해 힘을 보태는 장면으로 끝을 내는 게 현실적이라고 생각했어요.

두번째는 희망을 품게 하려는 의도까지는 좋다고 쳐도 그 내용이 저에겐 좀 거부감이 들었어요. 여성이 가진 아니 당연히 가졌을 것이라고 인정부터 하고 들어가는 모성애를 생명에 대한 인류애와 연대로까지 확장한다는 게 무리가 있어 보였어요. 고정적인 성 역할 말고도 무한히 가능한 일들이 많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이기적으로 행동하던 여자 등장인물이 갑자기(물론 큰 사건을 겪었지만) 한없이 자애로운 마음을 가진다는 것도 자연스럽지가 않았고요.

그런데 오히려 이런 생각 자체가 단편적이고 편협할 수도 있겠네요. TV 드라마는 해피 엔딩을 바라면서ㅋㅋㅋㅋ 소설은 자연스럽고 슬프게 끝나야 한다거나, 고정된 성 역할에서 탈피해야 한다면서 전통적으로 여성의 일이라 여겨지는 것들을 저평가하고 나아가 탈피해야 한다는 또 다른 고정관념에 집착하는 건 아닌지 말입니다.

소설속에서 태아의 죽음이 상징하는 희망의 단절이 또 다른 생명을 구함으로 다시금 이어지는 희망과 연대를 보여주기에 마지막 장면은 어찌 보면 가장 적절한 장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주저리주저리 길게 적어 죄송합니다. han22598님 덕분에 좀 더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네요. 감사합니다~^^

han22598 2023-08-24 03:20   좋아요 1 | URL
누미님의 답글이 반가웠어요 ^^
의견 나눠주셔서 감사해요, 그리고 저도 생각해봤어요.


저는 구성적인 측면으로 봤을때 시종일관 절망이었다고 보지 않습니다.
여정가운데 희망의 보이는 작은 씨앗들이 조금씩 보여주었다고 생각해요. 바로 생각나는 게 두개 정도 있는데,
윌슨부부를 만나서 두 가족이 서로 부족한 부분을 도와가면서 (할아버지 장례식 비용을 대고, 윌슨을 차를 고쳐주기도 하면서) 잠깐의 연대의 시간을 보내기도 하죠.
비록 끝까지 함께 하지는 못하지만 (매우 현실적인 것 같아요. 끝까지 함께 하지 않아도 된다는 부담감을 버릴 수도 있고요), 비록 보잘 것 없어 보이는 것이라도 그것이 유용하고 필요할 때가 있으면 기꺼이 내어주는 그들의 행동을 통해 상생의 길을 여는 초석이 되어 톰 가족이 캘리까지 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한 가지 더, 중간에 매우 이상적인 마을에 머무르잖아요 (이름은 기억이 안나요. ㅠㅠ). 깨끗한 환경과 기반시설들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고 그곳에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아가는데, 한가지 문제는 일자리가 없다는 것이었잖아요. 비록 톰 가족도 일자리를 찾아서 떠날 수 밖에 없었지만, 돈 vs. 인간다운 삶 에 대해 작가가 도전장을 우리에게 던지기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작가는 아마도 우리가 돈의 욕망을 조금 포기하면 이런 이상적인 삶을 영위하며 살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소망의 메세지를 던진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기고 하더라고요. 마지막 장면이 클라이막스가 될 수 밖에 없는게, 어찌 보면 임신한 몸으로 힘든 여정을 겪어내었지만, 남편이 될 사람도 떠나고 마지막 희망이 될 수 있는 아이도 죽어 버려 더 이상의 희망조차 남아있지 않은 최악의 상황에서 조차 그 여인은 희망의 씨앗을 품고 있었던 거죠...비록 원래의 목적 대상 (아이)는 잃었지만, 그 씨앗은 죽어가는 사람 (또는 곁에 있는 이웃)에게 생명을 주어 삶을 이어가게 만들게 해주는 (대상은 바뀌었지만) 원래의 목적을 달성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마치 윌슨 부부는 아내도 아프지만..(곧 장례를 치를 수 있는 위기가 있지만) 톰 할아버지의 장례비용을 대기도 했죠)..저는 이렇게 해석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누미님이 말씀하신 내용적인 측면에서 여성성을 이용해야 햇었느냐 하는 질문에 저는 그럴 수 밖에..아니 그래야 한다고 했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내용적인 면을 봤을 때도, 본질적인 여성성을 이용한 (?) 희망과 연대에 대한 메세지는 저는 적절했다고 생각했고,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ㅎㅎㅎ

너무 두서없이 써서 죄송해요 ㅎㅎ
누미님 덕분에 생각을 약간 정리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