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프라우
질 알렉산더 에스바움 지음, 박현주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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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수동적이라 모든 선택을 타인에게 미루는 여자.
결혼도 그저 남편이 원해서, 불륜도 상대방이 나와의 관계를 원해서 거부하지 않았을 뿐이지 절대 내가 먼저 원한 것이 아니었다.
이것이 안나의 기본 마인드였다.

 

안나는 남편을 따라 스위스로 이주해 살게된 37세의 미국인 여성이다. 스위스에 9년 동안이나 살았지만 그녀에게 스위스는 여전히 낯설고 냉정한 나라였다.
그녀는 아직도 운전면허증이 없었으며, 자신의 이름으로 된 계좌도 없었고, 독일어 또한 서툴었고 친구도 없었다.
그리고 시어머니는 스위스인 특유의 무뚝뚝함과 무정함으로 안나를 대했고, 남편은 늘 그녀가 원한만큼의 애정을 보여주지 않았다. 

 

사실 안나는 다른 사람이 객관적으로 봤을 때 절대 불행한 인생이 아니었다. 오히려 전혀 부족함이 없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남편, 아늑한 집, 사랑스러운 세명의 아이들, 무뚝뚝하다곤 하지만 필요할 땐 언제든 아이들을 돌봐주는 시어머니.  트집을 잡으려 해봐도 충분히 평탄하고 무난한 삶이었다. 
그러나 권태로운 정도로 평온한 삶이 오히려 그녀에겐 오히려 무기력과 우울, 결핍을 불러온 것인지 그녀는 남편의 나라에서 언제나 혼자라고 느꼈고, 다른 나라 말을 쓰는 외지인일 뿐이었다.
그래서 안나는 항상 타인의 애정과 관심에 목말랐지만 남편과 가족들은 그녀의 이런 결핍을 채워주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 그녀는 다른 남자의 손길에 자신을 맡기는 것으로 위안을 찾았다.

 

독일어 수업에서 만난 아치 , 남편의 지인인  카를 ,  그리고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스티븐까지. 모두 하나같이 불륜관계로 맺어진 남자들이었다. 
언제나 자신이 수동적인 사람이며, 불륜 또한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고 했지만, 가슴의 구멍을 메우는 방식을 불륜으로 정한 것은 결국 안나, 스스로의 선택이었다.
의미없는 섹스와 도덕적이지 못한 행동을 통해 위안과 쾌락을 찾았던 자신의 행동을 그저 자신의 수동적인 성격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그건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한 핑계에 불과했다.
사실 안나는 자신이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으며, 언젠가는 그 대가를 받게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 「 안나가 자신의 슬픔을 정당화하기 위해 내놓은 모든 이유만큼, 안나는 단순히 비참한 상태를 연장시키는 것 말고는 아무런 목적도 수행하지 않는 핑계를 대고 있는 거예요. <난 까다로운 스위스인들을 마꿀 수 없어.> 안나는 징징대죠. <브루노가 좀 더 관심을 갖게 할 도리가 없어.>  안나, 단순히 남편에게 좀 더 관심을 가져 달라고 부탁해 봤나요? <난 너무 내성적이라 친구가 없어.> <애들을 돌보는 데만도 기력이 전부 소모돼.> 인생을 바꾸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죠? 그게 바로 큰 핑계에요. 」 안나는 반박할 수 없었다.  " ( p304 )

 


그녀가 막연하게 두려워하고 있던 죄의 대가는 자신이 아니라,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통해 실현된다.
그 후 안나는 그 동안의 불륜을 모두 접고 가정에 충실하려고 했지만 때는 이미 늦어 버렸다.
이제 더 이상 남편도 자신이 돌아오길 기다려주지 않았고, 그 동안의 불륜상대들도 모두 자취를 감춰 버렸다. 친한 친구조차 도움이 되지 못했고 철저히 혼자였던 스위스에서 그녀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이런 모습이 되지 않게 해달라고 했던 그 모습, 딱 그모습 그대로 그녀는 그 자리에 서 있게 된다.
언언제나 수동적이었지만 최악의 순간 찾은 대단한 자율성, 그 자율성을 그녀는 자신의 마지막을 위해 쓰기로 결심한다.

 


" 「 우리의 삶은 원인과 결과지요. 아무리 작은 선택이라도 중요해요. 한 도미노가 다른걸 치고, 그 다음 것을, 또 그다음 것을 치지요. ~ 우리는 어떤 특정한 몫을 받을 수 있는지 결정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무너지고 망가졌을 때 다시 시작하는 선택을 할 수도 있지요.」"  (p382)

 

사실 안나에게는 다른 선택을 할 기회들이 여러 번 있었다.  한 도미노가 다른 걸 쳤을 때, 다른 도미노로 넘어가는 것을 막을 수 있었지만 그녀는 도미노가 넘어가도록 그대로 두었고, 한 번 넘어지기 시작한 도미노는 마지막 도미노가 쓰러질 때까지 멈출 수 없었다.
방치. 사실상 그녀는 자신의 인생이 타인에 의해 끌려가도록 방치하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안나에게 손 내밀었던 유일한 친구이자 스위스에 정착한 또다른 이방인  "메리" 를 통해 안나가 다른 선택을 했을 때 펼쳐졌을 그녀의 인생을 그려볼 수 있다.

 

​독일어를 유창하게 하는 안나, 운전면허를 딴 안나, 계좌를 만든 안나, 친한 친구들이 많은 안나. 그리고 자식들이 무럭무럭 커가는 모습을 보는 안나. 주말이면 친구 부부와 오붓하게 파티를 즐기는 안나.  이 모든 안나들이 안나,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이었다.

 

늦지않게, 조금만 더 일찍 멈췄다면 안나가 누릴 수 있었을 평범하지만 평화로운 일상들. 하지만 이제는 다시는 꿈꿀 수 없는 일들이 돼버렸다. 후회는 언제해도 항상 늦다.
그러니 내 인생을 남에게 맡기지 말 것. 쓰러져가는 도미노는 시작한 사람 외에는 멈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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