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스토어
그래디 헨드릭스 지음, 신윤경 옮김 / 문학수첩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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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아는 유명 가구 전문점 이케아의 저렴이 버젼인 '오르스크' 에는 총 318명의 직원들이 일하고 있고 그 중에는 주인공 "에이미" 도 포함되어 있다.
에이미가 일하고 있는 오르스크 쿠야호 지점에서 어느 날부턴가 알 수 없는 일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분명히 퇴근 전에는 아무 이상 없었던 가구들이 파손되어 있거나 끔찍한 냄새를 풍기는 오물들이 여기저기 투척되어 있는 것이다.
매장 곳곳에는 cctv 가 설치되어 있지만 어디에서도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고, 부지점장 '베이즐'은 직접 범인을 잡기 위해 '에이미'와 '루스 앤'에게 함께 경비를 설 것을 부탁한다.
단순한 밤샘 근무로만 생각했던 두 사람은 뜻밖의 인물들을 만나 함께 매장을 돌아보게 되고 모두가 퇴근하고 불꺼진 매장에선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한 공포가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이야기를 하기 전에 책 디자인부터 얘기하지 않고 넘어갈 수가 없다.
책은 그저 소설이 아니라 마치 오르스크의 카달로그처럼 디자인 되어 있는데, 일단 판형 자체가 직사각형보다는 정사각형에 가깝다.
그리고 책의 앞뒤에 나와있는 오르스크의 광고 내용들이 꽤나 디테일하고 사실적인데 그 중에서도 ​배송서비스 신청이나 직접 가구 조립하기 등과 같은 것들은 가구 카달로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내용들인데다가 배송시 프로모션 할인 금액이나 빠른 배송 신청시 $15 추가와 같은 옵션들 또한 상당히 구체적이다.

 

이는 작가가​ 독자들이 오르스크가 실제 존재하는 곳이라고 느낄 수 있도록 많은 신경을 기울였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또한 이야기 속에서도 실제 가구 매장을 보는 듯 오르스크 매장의 전경을 묘사하는데 상당한 공을 들여 더 현실감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이런 현실감은 이야기 중반까지 이어지다가 이후 실체를 알 수 없는 유령들이 나타나면서부터 완전히 허물어지게 된다.
분명히 실제로 현실에 존재할 것만 같은 가구 체인점이었지만 어느 순간 그 경계가 모호해지며, 유령들이 출몰하는 유령의 집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지극히 현실적이고 평범했던 등장인물들은 처음에는 비현실적인 유령의 존재를 믿지 않았지만 결국엔 그 존재를 인정하고, 이미 유령들에게 점령당해버린 오르스크 매장에서 빠져 나가기 위해 고군분투 하게 된다.

 

유령들이 주인공과 그 주변 인물들에게 가하는 행위들은 그저 실체가 없는 존재들의 짓이라기에는 상당히 폭력적이고 구체적이며, 심지어는 가학적이다. 가구 회사 답게 기존의 가구들을 변형시킨 고문기구들을 선보이면서 처음 이야기가 시작할 때는 평범한 가구에 대한 설명이 마지막으로 갈수록 점점 무시무시한 고문 기구들에 대한 설명으로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다. ( 아래 보다베스트에 대한 설명만 봐도 아주 후덜덜하다 -_-; )

 

 

 

< 보다베스트 >
 구속의자의 전통적 형태 이상의 장점을 갖춘 보다베스트는 참회자를 완벽하게 제압하고, 병든 혈액이 뇌에 침투하는 것을 막아줍니다.
 참회자는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는 상태에서, 마침내 외부 자극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자기반성의 시간을 갖게 될 것입니다.

 

 

제목부터 호러스토어에다 사람들에게 고문을 가하는 유령들이 출몰한다고해서 이유없이 시종일관 무섭고 잔인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블랙코미디가 밑바탕이 되기 때문에 현실에 대한 주인공의 냉소적인 유머나 재치가 돋보이고, 회사의 소모품 정도로만 여겨지는 직장인들의 애환을 느낄 수도 있다.


거대 가구 체인점을 감옥으로, 그 곳에서 일하는 직장인들을 감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좀비나 죄수로 비유하면서 결국 이런 호러스토어가 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사람들을 착취하는 거대 자본주의 시스템 때문이라는 작가의 비판적인 시각을 담고 있다.


19세기 감옥에서 고문기구를 머리에 쓰고 끊임없이 노동하기를 강요받는 죄수들과 21세기에 월급을 받기 위해 쉬지않고 밤 늦게까지 일하는 직장인들과 개인의 개성과 의견은 무시하고 지시받은대로, 생각없이 일하기를 강요하는 회사.
작가는 19세기 감옥의 죄수들이 당한 형벌이나 21세기 직장이라는 출퇴근 가능한 감옥에서 사람들이 일하는 것이 별반 다르지 않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거대 자본의 횡포와 그 속에서 계속해서 세뇌당하며, 결국엔 스스로 생각하길 포기해버리고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들.
19세기 '원형감옥'이 21세기엔 '직장'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탈바꿈되어 죽어서도 벗어날 수 없는 유령들을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곳이 된다.
직장, 이 곳이 바로 호러스토어의 실체다.


마지막으로 작가는 직장이라는 공간에서 끊임없이 의미없는 노동을 반복하도록 강요받는 현실에 대해 쿠야호가 교도소장의 입을 빌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노동은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평범한 금속 덩어리를 순금으로 변화시키는 현자의 돌처럼,일탈과 반항으로 병든 정신을 순수한 복종의 상태로 바꿔준다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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