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임수의 섬
히가시가와 도쿠야 지음, 김은모 옮김 / 북다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거액의 유산과 외딴 섬, 비밀을 감추고 있는 가족, 그리고 예상치 못한 폭풍 등 소설 「속임수의 섬」은 미스터리에 필요한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다.

소설에서 이런 상황이라면 아무 일 없이 지나가는 게 오히려 이상하지 않을까 싶은 배경이다.

명문 출판사를 운영하는 사이다이지 가문의 대표가 사망하고 유언장 개봉을 위해 외딴섬에 유족들이 모이게 된다. 사이다이지가 사람들의 별장 하나만 덩그런히 있는 섬이라 선착장은 작은 배 하나만 겨우 들어올 수 있는데 마침 태풍이 찾아오고 사람들은 꼼짝없이 섬에 갇히게 된다. 그런 와중에 사이다이지가 일가의 한 사람이 살해된 채 발견돼 경찰에 연락하지만 태풍 때문에 당장 경찰이 섬으로 들어 올 수 없다. 누가 살인범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 외딴섬은 외부로 나갈 수도, 외부에서 들어올 수도 없는 밀실이나 다름없는 상태가 돼버린다. 경찰이 오기 전에 더 이상의 살인을 막고 범인을 밝히기 위해 자칭 명탐정 고바야카와와 얼떨결에 그의 조수가 된 변호사 야노가 살인사건의 비밀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속임수의 섬의 작가인 하가시가와 도쿠야는 미스터리 장르로서는 다소 특이하게 유머와 미스터리를 결합한 작품을 선보인다. 보통 미스터리 작품들은 원한과 복수가 담긴 살인사건을 주로 다루기 때문에 무거운 분위기가 대부분인데 이 작품에서는 인물들의 티키타카나 말장난 같은 유머가 많이 가미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외딴섬에 누구인지 모를 살인자와 함께 고립되어 있다면 서로를 의심하고 패닉에 빠지는 상황이 일반적일텐데 이 작품에서는 인물들이 크게 동요하지 않고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는 사립탐정 고바야카와와 변호사 야노 또한 사건을 추적하는 내내 투닥거리며 톰과 제리 같은 케미를 보여준다.

현재 시점에서 발생한 외딴섬에서의 살인사건 외에도 곁가지로 다른 사건들에 관한 이야기도 등장하는데 별 것 아닌 것처럼 스쳐 지나가는 사건들도 알고보면 모두 얽히고설켜 있다는 점에서 경쾌한 느낌에 반해 의외로 꽤나 집중해서 줄거리를 따라가야 한다. 분량도 500페이지 가까이 되다 보니 흘리듯이 나온 사건을 까먹기 쉬운데 알고보면 다 이유가 있는 일이었다라는 걸 뒤늦게 알게 된다.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대부분 이 중에 누가 범인인지 모두가 의심스러워 보이도록 만들지만 속임수의 섬에서는 뚜렷하게 누가 범인인지 의심할만한 단서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후반에 가서야 의심스러운 정황이 드러날 뿐 그 전에는 섬에 갇힌 사람들 모두가 특별한 혐의점이 없어 보인다. 대신 과연 이게 지금 이 사건의 진실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싶은 사건들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고, 그 사건과 이 사건이 어떤 고리로 얽혀 있을지 추리해 보는 것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래서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는 후반까지 아무 감도 못 잡고 있다가 뒷통수를 세게 맞게 된다.

범인이 어떻게 이런 미스터리한 살인사건을 만들 수 있었는지 충분히 설명해주긴 하지만 주인공이 말하기 전까진 이런 방법이었을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그 정도로 약간은 뜻밖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약간 억지스럽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방법으로 풀어내고 싶은 작가의 의도가 있었겠지만 솔직히 누가 굳이 이렇게까지 해서??라는. 그리고 유머에 대해서는 약간 호불호가 있을 수 있겠다 싶은데 소설 속이지만 어쨌든 사람이 죽었는데 이렇게 실없이 가볍게 얘기하나 싶을 수도 있고, 만약에 취향에 맞다면 소소한 말장난에 시종일관 피식피식하는 웃음이 새어나오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특히 등장인물 중 사찰에서 고인의 명복을 비는 법사를 위해 참석한 스님은 그 정도가 지나치게 가볍다 싶기도 했다. (물론 알고보면 이런 경박한 스님의 등장도 다 이유가 있다.) 어쨌든 전반적으로 약간 만화같은 캐릭터와 설정 때문에 너무 무겁거나 진지하거나 잔인한 소설을 기피하는 독자들도 재밌게 볼 수 있는 미스터리가 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