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 도쿄 하우스
마리 유키코 지음, 김현화 옮김 / 하빌리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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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 도쿄 하우스」는 우리나라에서 「살인귀 후지코의 충동」으로도 유명한 마리 유키코의 최신작이다. 작가의 전작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번 작품도 역시나 읽고 나면 뒷맛이 씁쓸한, 인간의 나약하고 추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잘 드러내고 있다. 다크 미스터리라고 하지만 미스터리보다는 등장 인물들의 숨기고 싶은 다크한 모습(?)을 묘사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물론 사건의 진상을 드러내는 후반부에 가서는 미스터리가 폭발하지만 중반 이후 본격적인 살인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인물들의 심리 묘사가 주로 이뤄진다. 그래서 살인사건의 발생과 해결 과정에 관심이 있어 이 책을 선택한 독자라면 본격적인 사건은 도대체 언제 시작하는거냐며 변죽만 울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이 왜 발생했고, 등장 인물들은 왜 이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이해하기 위해선 초중반 인물들의 감정선을 잘 따라가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1961 도쿄 하우스」는 현대의 두 가족이 과거 1961년으로 돌아가 그 시절의 생활상을 3개월간 경험해보는 리얼리티 쇼의 이름이다. 한 방송국의 특별 기획으로 진행된 프로그램인데 우리나라에서도 유행하고 있는 <나는 솔로> 나 <나혼자 산다>와 같은 관찰예능 혹은 리얼리티쇼와 비슷하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컨셉 자체는 60년 전 사람들의 생활을 체험해본다는 것으로 단순해 보이지만 출연 가족들에게 500만엔, 한화로 약 5,000만원을 주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출연 가족들이 어떻게 되는지 보면 역시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는 진리만 깨닫게 될 것이다.)

그냥 60년 전의 집에서 그 당시의 생활도구들을 사용하는게 뭐가 어려울까 싶지만 막상 겪어보면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현대 문명들이 얼마나 고마운지 알 수 있다. 당연히 에어컨도 없고, 가스레인지는 성냥으로 불을 붙여야 하고, 밥솥은 솥 바깥 쪽에 물을 부어야 하는 방식이다. 지금으로선 왜 그래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지만 예전 밥솥은 그랬다고 한다. 어쨌거나 예상 외로 힘든 여러가지 상황을 겪으며 출연자들이 우왕좌왕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 아니었던가 어느새 1960년대의 생활에 출연자들이 적응해 버린다. 물론 이것이 실제라면 다행이라고 볼 수 있지만 방송국에서는 아무런 에피소드가 없는 이런 상황이 달가울리가 없다. 그래서 방송국 관계자들은 출연자들이 서로 모르게 역할을 부여하고 인위적으로 상황도 연출한다. 그 상황이란 두 부부가 서로 상대의 배우자와 맞바람을 피우는 것이었는데 말만 들어도 막장 드라마가 절로 떠오르는 자극적인 연출이다. 출연자들도 처음에는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지만 이걸 거부했을 때는 당연히 방송이 중단되고 출연료도 받을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반강제로 연기하던 출연자들도 어느새 그 상황에 빠져들어 진심이 돼버리고 만다. 이런 와중에 현재 세트장으로 사용되고 있는 아파트 단지에서 60여 년 전 발생했던 살인사건과 동일한 사건이 일어나면서 현장은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 아수라장이 되고 만다.

책을 읽다보면 연출자들이나 출연자들, 그리고 그 방송을 보고 있는 시청자들이 잘 이해가 안될 수 있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현실과 별반 다르지 않다. 현실에서도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출연한 출연자들의 단면만 보고 우르르 몰려가 마녀사냥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혹은 저게 과연 실제 모습일까 의심스럽게 만드는 연출된 모습을 보이는 경우도 종종 있다. 물론 그것이 연출인지 아닌지는 당사자들만 알겠지만 보는 사람들조차 그런 느낌을 받는다면 실제로도 연출일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어쨌거나 책 속에 등장하는 방송국 연출자, 출연자, 시청자들의 모습이 현실에서의 우리의 모습과도 많이 닯아있기 때문에 더 껄끄럽고 불쾌한 느낌을 받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지막 사건의 진실들이 드러나는 과정에서 독자들을 놀래켜주고 싶은 작가의 욕심이 살짝 과했던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반전의 반전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던 것은 역시 작가의 필력이 대단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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