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망설이다 하루가 다 갔다 - 불안, 걱정, 회피의 사이클에서 벗어나기 위한 뇌 회복 훈련
샐리 M. 윈스턴.마틴 N. 세이프 지음, 박이봄 옮김 / 심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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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본이다 보니 이게 원래 제목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제목을 보고도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오늘도 망설이다 하루가 다 갔다."는 제목은 하루에도 수 십, 수 백가지의 선택을 해야하는 상황에 놓이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유명한 극작가이자소설가인 조지 버나드 쇼의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 라는 묘비명이 널리 회자되는 것만 봐도 우물쭈물 망설이고,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다. (추후에 이 번역이 오역이라고 알려지긴 했지만 그래도 이 오역이 유명세를 탄 건 그만큼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것이다.)

나 역시도 이 옷을 살까 말까, 아니면 옷 자체를 살까 말까라는 단순한 결정조차 쉽게 내리지 못하기 때문에 이 제목이 눈에 띄였다. 그리고 그런 성격을 고치고 싶어 이 책을 선택하게 됐는데 책은 단순히 망설이지 않고 빨리 결정내리는 방법(?) 같은 것보다는 좀 더 심도 깊고 근본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었다. 특히 불안과 걱정이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내용들이 많았다.

걱정이 많은 사람들을 우스갯소리로 걱정인형이라고 부르는 말이 있을 정도로 걱정이나 불안, 망설임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다.

저자는 40년 넘게 불안장애를 연구해온 심리학자인데 책에서는 불안의 다양한 종류와 유형을 분석하고 불안과 망설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불안에도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저자는 예기 불안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최근에는 tv에서 심리와 관련된 정보나 강연들을 많이 들을 수 있다보니 예기 불안이라는 단어를 들어봤을 수도 있겠지만 흔히 사용되지는 않는다. 저자는 예기불안이란 '스스로를 불안하거나 불편하게 만들 것이라고 예상되는 사건과 상황들을 예측하면서 경험하는 불안' 을 말한다고 한다. 한 마디로 불안하거나 불편한 상황에 처하기도 전에 그 상황을 미리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불안을 느끼는 것이다.

아마 불안을 잘 느끼고 걱정이 많은 사람들 대부분은 이 예기불안 정도가 높을 것이다. 실제로 걱정과 불안은 예상하는 그 상황이 벌어지기 전이 가장 높다. 막상 걱정하던 그 상황이 벌어지고 나면 걱정과 불안보다는 그 상황을 해결하는데 집중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책 서문에서부터 강조하기도 하지만 저자는 성급한 마음에 근본적인 해결방법,혹은 치료법(?) 이 나와있는 마지막 부분부터 읽으려고 하지 말고 반드시 첫 장부터 차례로 읽을 것을 권장한다. 일단 불안이 일어나는 과정과 매커니즘을 정확히 이해해야지만 불안을 대하는 자신의 근본적인 태도를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저자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도 마지막 챕터를 먼저 읽어보았지만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ㅎㅎ. (아마 결론부터 읽은 독자들이라면 '이게 뭐야, 결론이 너무 시시한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저자의 말대로 이 책의 핵심은 해결방법보다는 우리의 상상력이 만들어내는 불안의 정체를 정확히 파악하는 데 있는 것 같다.

책에는 다양한 형태의 예기불안과 망설임에 대해 아주 구체적이고 상세한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어 이해가 어렵지 않았다.

사소하게는 건강검진을 앞두고 암이 발견되는 상상을 하며 예기불안에 압도당해 결국 검사를 취소하고 즉각적인 안도감을 경험하지만, 그 이후에는 자기 몸에 암이 진행되고 있는데 검사를 받지 않아 모르고 있을 거라는 상상에 또 다시 예기불안에 휩싸이는 경우부터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자신의 이름을 불러 발표를 시킬까봐 전전긍긍하며, 선생님이 자기를 부르고 모든 사람 앞에서 바보 같은 짓을 해서 굴욕을 느끼는 상상 때문에 학교를 그만두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사례까지 이런 것도 예기 불안이었어라고 할 정도로 아주 광범위하고 다양했다.

그래서 저자가 제시하는 다양한 사례들이 예기불안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사실 그래서 이 불안을 잠재우려면 어떻게 하라는 거야? 라는 결론이 궁금한 독자들에게는 이런 다양한 예시들이 지나칠 정도로 많다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개개인마다 다르게 나타나는 예기불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런 다양한 예시들이 도움이 될 것이다.

나의 경우 특히 관심이 있었던 챕터는 6번째 챕터인 완벽주의, 확실성에 대한 갈망, 후회에 대한 두려움 편이었다. 개인적으로 완벽주의 성향이 강하고 후회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옷을 하나 사더라도 2가지 중에 한 가지를 골라야 할 때 이걸 선택하고 후회하고 싶지 않다보니 계속해서 생각하고 생각하다 결정을 못내리고 그 옷을 입을 철이 지나버려 옷을 못 산 적도 있었다.

저자는 만성적인 망설임에는 예기불안이 기저에 깔려 있고, 만성적인 망설임은 완벽주의, 확실성에 대한 갈망, 후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심화된다고 말한다.

완벽주의는 모 아니면 도, 옳거나 틀리거나, 잘하거나 못하거나와 같이 양극단만 인정하고 중간의 회색지대는 허용하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지 않았으면 최선이 아닌 것이라는 생각에 스스로를 막대한 부담감과 괴로움을 불러오게 만들고 결점과 실수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실수할 여지가 있는 모든 선택과 결정에 극심한 압박감을 느끼게 된다. 결국 어떤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완벽주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도록 마비시켜 어떤 결정도 내릴 수 없게 만든다.

세상은 기본적으로 불확실성으로 가득차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가정하는 것들이 충분히 확실하다고 느끼고 하나하나 점검하지 않는다. 하지만 만성적으로 망설이는 사람들의 경우 너무나 많은 의심이 들어 모든 것을 확실히 알려고 한다. 대부분의 의심은 감각을 이용해서 확실히 확인할 수 있지만 상상력은 자신의 감각으로 인지한 것조차 의심하게 만든다. 예를 들자면 '오늘 아침에 출근할 때 가스를 껐는지 확인하고 나왔지만 혹시나 내가 급하게 점검하면서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은 아닐까?',' 아침에 문을 닫힌 것을 보긴 했지만 혹시 제대로 끝까지 꽉 안 닫혔던 것은 아닐까?" 라는 상상이 꼬리를 무는 것이다. 이런 의심은 사실을 확인한다고 하더라도 해결되지 않는다. 수십, 수백 가지의 경우의 수는 언제든지 다시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런 무시무시한 상상이 사실 자기 마음의 산물임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면 이런 의심들을 무시하기 어려워진다.'고 한다.

후회에 대한 두려움은 나중에 후회할 어떤 일을 저지를까봐 불안해하는 마음이다. 큰 투자나 진로, 배우자 선택과 같은 중요한 문제 외에도 이 넥타이를 맬지,저 넥타이를 맬지, 버거를 먹을지 파스타를 먹을지와 같이 아주 사소하고 위험부담이 적은 상황에서도 선택하기를 어려워 할 수 있는데 이런 일은 전반적으로 어떤 감정을 털어내지 못할까 봐 불안해하는 성향을 가진 불안 민감성이 높은 사람들에게 흔하게 나타난다고 한다. 이런 성향의 사람들은 과거에 어떤 좋지 않은 결과를 불러왔던 실수를 곱씹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에 자동반사적으로 만약에... 라는 의심이 떠오른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자동반사적인 의심과 맞서 싸우고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결정 이후에는 의심이 떠오를 것이라고 내버려두고 어떤 의심들이 드는지 살펴보기만 하라고 한다.

7장 이후부터는 예기불안과 만성적인 망설임에 대처할 수 있는 사고방식의 전환 방법과 실제로 일어나는 상황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저자는 예기불안을 없애거나 불안에 대처하는 기술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저자는 이런 기법들이 문제의 핵심에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회피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법 자체에 몰두할 것이 아니라 평소 자신의 몸과 마음에 일어나는 느낌과 감각, 그리고 생각에 반응하던 방식에서 벗어난 새로운 관점을 배워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 중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일시적으로 불안을 낮추는 강박행동인 '거짓 불안'을 주의해야 한다는 것 이었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발표를 하는 것에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의 경우 거짓 위안은 '준비할 시간이 많아. 틀림없이 잘할거야.', ' 긴장을 풀고 발표에 대해 생각하지 마. 넷플릭스 코미디나 보면서 긴장을 푸는게 좋지 않을까.' 라는 식으로 계속해서 위안의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이런 거짓 위안으로 얻은 안도감은 일시적일 뿐이며, 오히려 마음속의 걱정하는 목소리가 거짓 위안과 반대되는 대처 기술을 내놓으며 불안을 일으키는 사건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하고 빠져들게 만든다고 한다.

저자의 관점은 불안에 어떻게 맞서 싸워야 하는지에 알려주던 기존의 심리서적들과는 결을 달리한다. 오히려 이런 불안과 상상력과의 싸움을 그만두고 불안한 감정을 받아들이고 애쓰는 것에 집중하라고 이야기한다.

불안해 하는 나의 감정을 받아들이고 생각과 나를 분리시켜 한 걸음 물러나 관찰하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겠지만 만성적인 망설임과 불안감으로 힘든 사람들이라면 속는 셈치고 시도해보길 바란다. 회피와 불안에서 벗어나 앞으로 나아가는 나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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