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공간, 없는 공간
유정수 지음 / 쌤앤파커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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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비대면이 활성화 되면서 집 주변의 많은 상가들이 공실이 된 것을 보았다. 코로나 전만 하더라도 기존 가게가 빠지자마자 다른 가게가 들어왔던 자리인데도 공실이 한참 이어졌다. 이런 상황은 집 주변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땅값 1위라는 명동도 마찬가지였다. 그 비싼 자리 조차도 공실이니 더 안 좋은 입지의 작은 상가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어떤 가게가 들어온다고 하면 버선발로 뛰어나가 맞이해야 할 상황인데 임대한 가게가 장사도 잘 되고 심지어 핫 플레이스가 된다고 하면 임차인은 그야말로 귀인 중에 귀인이 되는 셈이다.

이런 귀인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 바로 이 책을 쓴 저자 글로우서울의 유정수 대표이다. 글로우서울 이라는 이름은 낯설 수 있지만 글로우서울에서 만들어 낸 브랜드나 공간을 이야기하면 대부분 알 것이다. 도넛정수, 청수당, 온천집, 송암여관 등이 있는 익선동 한옥거리 부터 시작해 롯데 프리미엄 아울렛 타임빌라스까지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F&B 브랜딩에서부터 공간기획까지 분야를 넘나들며 핫플레이스를 만들어내고 있다.

글로우서울은 흔히 볼 수 없는 차별화된 F&B 브랜딩과 스타일리시한 공간 기획에 강점에 있는데 이 책에서는 브랜딩 보다는 공간 기획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같은 공간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이 몰려드는 핫플이 될 수도 있고 그저 그런 평범한 매장이 될 수도 있는데 사람들이 어떤 공간에 매력을 느끼는지에 대해 그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핫플을 만드는 공간 기획의 법칙을 총 6가지로 설명하고 있는데 1. 6대4의 법칙 2. 선택과 집중의 법칙 3. 차원 진화의 법칙 4. 최대 부피의 법칙, 5.경계 지우기의 법칙, 6.세계관 구현의 법칙 이다.

첫 번째 6대 4의 법칙은 영업 공간과 유휴 공간의 비율로 전체 면적 대비 유휴 공간의 면적을 최소 40%는 확보하고 그 유휴 공간이 고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업 공간을 더 늘려야 매출이 오르지 않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가격 경쟁력 면에서 온라인 쇼핑 시장보다 메리트가 없는 오프라인 시장에서는 일단 고객들이 일부러라도 찾아올만한 요소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또한 기껏 40%나 확보한 유휴 공간을 적절한 위치에 배치해야 하는데 가장자리가 아니라 사람들의 눈에 잘 띄는 중앙에 두어 이용객들이 그 공간을 향유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도록 만들어야 한다.

선택과 집중의 법칙에서는 힙플레이스에서 자주 보이는 노출 콘크리트 인테리어가 왜 유행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사실 노출 콘크리트는 단순히 힙해 보이려고 해서 탄생한 것이 아니라 영세한 자본을 가진 창업자들이 비용을 절약하고 낡은 외관과 어울리는 내부를 살리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내부 마감에 아낀 비용을 콘텐츠에 투자하기 위해 비롯된 것인데 최근에는 무작정 노출 콘크리트면 힙하다는 인식에 마감도 제대로 하지 않아 먼지가 풀풀 날리는 매장들도 많아 아쉬운 점이기도 하다.

책에서는 한정된 예산 안에서 공간의 어떤 부분에 투자하는 것이 좋은지 잠실 '소피텔 앰배서더 서울'과 강남 '조선 팰리스'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 실제 비용은 조선 팰리스가 소피텔보다 몇 배나 더 많이 들었을지 몰라도 사람들의 만족도나 인기는 조선 팰리스나 소피텔이나 별 차이가 없다. 그건 소피텔이 주 고객층의 욕구를 잘 파악해 비용을 적절한 부분에 잘 투자했기 때문인데 소피텔의 자세한 전략은 책을 통해 확인해보자.

세 번째 차원 진화의 법칙에서는 제일 처음 말한 40% 유휴 공간을 어떻게 꾸며야 효과적인지 디테일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 챕터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포토 스팟'과 '원더'인데 포토스팟은 특정 장소에 고정된 자리, 위치를 말한다. 예를 들어 벽에 그려진 날개 모양인데 보통 그런 벽면이 있으면 사람들은 정확한 위치에 맞춰서 정면에서 사진을 찍곤 한다. 하지만 이 포토 스팟은 말 그대로 정면에 정해진 위치에서만 봐야 의미가 있는 것이지만 그에 반해 원더는 뷰가 고정되어 있지 않다. 어느 위치, 어느 각도에서 봐도 의미가 있고 그림이 된다. 그러기 위해선 후미진 벽면이나 가장자리가 아니라 중앙 위치로 나와야 한다. 첫 번째 챕터에서 유휴 공간을 중앙에 두어야 한다는 원칙이 나오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네 번째 최대 부피의 법칙은 최근 많은 사람들이 핫하다고 하는 장소가 대부분 대형공간인 이유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챕터이다. '더티트렁크'나 '문지리 535' 등 요즘 인기 있는 빵집이나 커피숍 중에는 규모가 엄청나게 큰 곳이 많다. 옛날 공장이나 식물원과 같이 층고가 높고 면적이 넓은 장소들이 인기인데 아파트나 소형 주택에 사는 것이 익숙한 젊은 세대들에게는 넓은 시야가 확보되고 일시적이더라도 그 공간을 사용하는 동안은 내가 이 곳을 점유했다고 느끼게 만드는 공간이 인기인 것이다.

이 챕터에서는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수직적, 수평적 공간을 인지하고 느끼는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어 실제로는 그다지 넓지 않은 공간을 어떻게 구성하면 사람들이 넓게 느낄 수 있을지 아이디어를 얻기에 좋았다.

다섯 번재 경계 지우기에서는 사람들이 어떤 공간을 선호하고 욕망하는지와 '자연스럽다'는 감각에 대해 설명한다. 자연스럽다는 것은 나무, 바다, 산 등 자연 환경을 말하기도 하지만 어떤 것이 튀거나 어색하지 않고 물 흐르듯이 매끄럽고 편안하다는 감각을 말하기도 한다. 한 동안 인공적이고 기계적인 구조물이 유행한 적도 있었지만 인공적인 생활환경에서 나고 자란 현대인들은 오히려 인공적인 공간이 자연과 흡사한 형태로 구현된 것을 선호하는 추세이다. 어항이나 수중 조경이 유행하거나 차박, 캠핑, 등산이 유행하는 것 또한 이런 경향이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잇다.

여섯 번째 세계관 구현의 법칙에서는 일반적으로 고객들이 짧은 시간만 머무르는 상업공간의 특성상 컨셉을 극단적이고 명확하게 드러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긴 시간을 머무는 주거 공간과 달리 1~2 시간의 짧은 시간만 머무르는 상업공간인 경우 강한 인상을 주기 위해 주제의식을 강하게 드러내는 것이 오히려 성공 확률이 높다고 이야기한다.

다만 이렇게 극단적으로 컨셉을 밀어붙이려고 할 경우 완성도 또한 높아야 눈에 거슬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기 때문에 퀄리티를 높이려는 노력 또한 필수적이다.

이제 더 이상 건물주가 갑인 시대는 지났다. 오히려 브랜딩과 공간 기획력만 있다면 건물주들이 무료로 임대할테니 우리 건물에 들어와 달라고 사정하는 것이 더 흔한 일이다. 건물주가 들어와 달라고 사정하는 임차인이 되고 싶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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