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운명이라고 불렀던 것들 - 그 모든 우연이 모여 오늘이 탄생했다.
슈테판 클라인 지음, 유영미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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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운명이라고 불렀던 것들』 의 주제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우리가 운명이라고 불렀던 것들은 사실 운명이 아닌 우연이 가져다 준 선물같은 착각일 뿐이라는 것이다.


저자가 과학 저널리스트였기 때문에 책을 읽기 전부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운명"이 사실은 우연일 뿐이라는 주장을 펼치리라고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모름지기 과학자, 수학자 같은 이과인(?)들은 과학적,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운명" 같은 것들은 믿지 않는 존재가 아니었던가. 



역시 내용은 예상한대로 사람들이 흔히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일들이 사실은 희박한 확률의 우연이 반복된 것일 뿐이며 "이 세계가 어떤 규칙이나 운명에 맞춰 굴러갈 것이라는 믿음은 사랑스러운 착각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살다보면 도저히 우연이라고는 볼 수 없는, 신의 의지가 개입했다고 밖에 볼 수 없는 일들이 생기기도 한다. 그래서 저자는 일단 가장 먼저 누가 봐도 운명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사례들을 소개하며 운명같은 우연이 어떻게 생겨나는지, 그리고 왜 생겨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다루고 있다. 이 질문에 대해서는 양자역학이나 카오스 이론같은 물리학과 통계학을 통해 설명하고 있지만 최대한 전문적인 용어는 배제하고 쉽게 설명하고 있어 관련 지식이 없어도 이해하는데 무리는 없었다. 



파트 1에서 소개하고 있는 사례 중 배리 백쇼라는 인물의 사례가 인상 깊었는데 이건 도저히 운명이 아니라고는 볼 수 없었다. 군인이었던 배리 백쇼는 아들이 5살일 당시 홍콩에서 근무하던 중 아내의 외도로 이혼했고 그 이후 30년 동안 한 번도 아들을 만나지 못했다. 이혼 후 부상으로 전역하고 원래 살던 곳에서 멀리 떠나 택시 운전사로 일하게 되었고 아들을 못보고 산지 30년이 지난 어느날 손님으로 남녀 한 쌍을 태우게 됐는데 그 승객 중 남성이 바로 자신이 그 동안 애타게 찾았으나 만나지 못했던 아들이었다. 아들은 남아프리카로 이민을 갔다가 불과 며칠 전에 귀국했고, 자신이 사는 곳과 멀지 않은 호텔에 매니저로 취직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니 이 정도면 운명이 아니라고 할래야 아닐 수가 없다. 어떻게 그 많은 택시 중 하필이면 그 택시를 타게 되었고, 또 하필이면 먼 나라에 이민 갔다가 며칠 전에 취직한 곳이 아버지의 집 근처일 수가 있을까. 이 정도면 운명이 두 사람을 그 날 그 장소로 인도했다고 밖에 볼 수 없는데 저자는 이것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기대 밖의 일일수록 놀랍게 다가온다. 어떤 일을 놀랍게 여기는 것은 우리의 개인적인 시각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놀랍게 다가오는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사건 속에 담긴 의도하지 않았던 연관이다. 이런 연관은 그 사건의 배후에 깊은 뜻이 숨어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하게 한다. 우리의 뇌는 숨겨진 계획을 찾도록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 p.24 )



즉 다른 사람에게는 별 의미없을 수도 있는 일이 그 개인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는 사건으로 느끼게 되면 우연 속에서 신의 계획이나 운명과 같은 의도를 찾아낸다는 것이다. 




파트 2에서는 인간의 진화와 공룡의 멸종 등 생명의 탄생과 소멸, 진화에 우연이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 설명하고 있다. 지구가 생겨나고 몇 억만년이 지나는 동안 어떤 생명체는 살아남고, 또 어떤 생명체는 소멸했다. 그 과정에서 오늘날 인간이 살아남은 것을 과연 우연으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저자의 주장대로라면 아마 대부분이 받아들이고 싶지 않겠지만 인간 모두는 우연의 산물로 태어났으며, 어떤 목적성이나 사명을 가지고 운명적으로 태어나지 않았다. 심지어 인간은 우연에게 간택되었을 뿐, 우연이 인간을 간택하지 않았더라면 지구는 인간이 아니라 공룡이 차지하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누군가를 만나 사랑을 하고 자식을 낳게 되는 이 과정도 순전히 우연의 결과일 뿐이라는 것인데 운명적인 사랑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충격적인 주장일 수 있다. 저자는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요인을 미국의 심리학자 도로시 테노프의 연구를 빌어 설명하는데 테노프에 따르면 사랑이 싹트는 순간은 "자신에 대한 상대방의 관심을 알아차린 순간"이라고 한다. 스스로가 누군가의 욕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 상대방도 욕망이 깨어난다고 하는데 흔히 사랑은 타이밍이라고 하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즉 같은 시점에 사랑을 주고 받는 상태로 전환하는, 그 시점이 서로 맞았을 뿐 어느 한쪽이 다른 데 정신이 팔려있었다면 사랑이 싹트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자녀 또한 마찬가지다. 자녀가 태어날 때 어떤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날지는 우연이 결정하는 것이며, 사실 자녀가 어떤 사람으로 자라는지에 대한 부모의 영향은 생각만큼 크지 않다고 한다. 지능이나 성격같은 복합적인 특성은 수백 개의 유전자의 조합으로 이루어지며, 유전자와 환경 간의 상호작용 또한 일정 조건으로 통제하기엔 우연이 개입할 요소가 아주 많다. 또한 부모가 자녀에게 일방적으로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부모 또한 자녀에게 영향을 받기 때문에 부모가 원하는대로 자식을 키우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설사 부모가 아이의 태도에 많은 영향을 미치더라도 아이가 부모가 아닌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는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즉 성격보단 그 때 그 때마다 닥친 상황이 아이의 행동에 더 강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양육이 의미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양육이 자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 요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를 안정적이고 고무적인 환경에서 키우려고 노력은 하되 아이를 부모가 원하는 인생대로 살도록 만들수는 없다.



파트 3에서는 인간이 왜 그토록 운명을 믿고 싶어하는지 인간의 심리와 행동을 분석하고 있다.  불확실성을 두려워하는 인간의 본성이 모든 일에서 이유와 규칙성을 찾고자 하는 강박을 만들어내는데 사람들은 누구나 연관이 없는 상황들에서도 우연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이것과 관련된 실험으로 동전을 20번 던질 때 앞이나 뒤가 연달아 같은 면이 나올 확률이 얼마나 될지 예상해서 기록하는 실험이 나온다.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당연히 50:50의 확률로 앞과 뒤가 나오기 때문에 한 번은 앞면, 한 번은 뒷면이 균형적으로 나올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동전을 던져보면 한쪽면이 연속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우리는 우연이 질서를 지킬 거라고 기대하지만 실제 우연은 무질서하게 일어난다. 그래서 인간이 우연을 흉내낼 수 없는 것이다. 


마지막 4번째 파트에서는 불확실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어떻게 하면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을지, 그리고 우연의 위험에서 나를 지키고 우연이 주는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할지 조언한다. 



우리가 계획할 수 없는, 의도가 없는 순수한 우연은 미래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므로 인간은 이런 우연의 불확실함에 불안과 스트레스를 느낀다. 그런데 이런 불확실성은 일상이 단조롭던 농경사회보다 복잡한 현대사회에 올수록 더 커지므로 신과 같은 더 높은 존재에 기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복잡하고 불확실한 세계에서 중심을 잡고 살기 위해선 안정성과 운명에 대한 믿음에 기대기 보다는 우연에 대해 더 잘 알고 우연 속에 숨겨진 원칙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통해 우연이 제공하는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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