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죽음을 곁에 두고 씁니다
로버트 판타노 지음, 노지양 옮김 / 자음과모음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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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지만 사는 동안 죽음을 인식하기란 쉽지 않다. 마치 평생 살 것처럼 생각하지만 당장 오늘 출근 길에도 교통사고로 죽을 수도 있는 것이 인생이다. 이 말은 오늘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는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뜻이기도 하다. 누군가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나에게도 일어나지 말란 법이 없단 생각을 하면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 되더라도 이상하지 않다.

어릴 때야 당연히 이런 생각을 하지 않겠지만 살아가면서 어떤 징조도 없던 가까운 사람의 갑작스런 죽음을 경험하고 나면 내 삶도 그렇게 갑자기 끝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게 된다.

이런 말을 하면 누군가는 너무 비관적인 거 아니냐며 나의 정신건강을 걱정 하기도 하는데 죽음을 인식한 이후로 오히려 내 인생은 더 평온하고 원만해졌다.

예전 같으면 불같이 화를 냈을 일도 당장 내일 죽는단 생각을 하면 이게 이만큼 화를 낼 일인가, 이게 이 사람의 마음에 비수를 꽂을만큼 엄청난 잘못인가, 이 사람과의 마지막 대화가 이렇게 기억되는게 내가 바라는 일인가 라는 생각에 웬만한 일에는 화가 나지 않게 되었다.

이렇게 매일 매일 죽음을 생각할 수록 내 삶과 인간관계가 더 긍정적으로 변해가는 걸 볼 수 있었다.

단지 이렇게 죽음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죽음을 바로 코 앞에서 직접 겪고 있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많은 질문과 깨달음이 있었을지 상상 할 수도 없다. 하지만 죽음을 마주한 사람의 생각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이 책, 「다만 죽음을 곁에 두고 씁니다」였다. 35세인 저자는 이른 나이에 악성 뇌종양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게 된다. 30대 중반이라는 어린 나이에 갑작스레 찾아온 죽음에 대해 저자는 오열과 분노보다는 삶과 죽음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을 이야기한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젊은 작가의 에세이라 병상일기가 아닌가 할 수도 있지만 저자는 자신의 병에 대해 그리 자세히 묘사하지 않는다. 병마가 점점 몸을 잠식해 가는 와중에도 시종일관 어떻게 보면 약간은 냉정하고 담담하게 자신의 생각을 써내려 간다.

죽어가는 과정에 있지만 죽음보다는 오히려 지금 현재의 삶에 중점을 둔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죽음을 앞 둔 사람보다는 오히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해 봐야할 주제들이 많았다.

개인적으로는 시간에 대한 약간의 강박이 있다. 시간 낭비에 대한 죄책감(?) 비슷한 것으로 '돈으로도 살 수 없고, 다시 돌이킬 수도 없는 이런 황금같은 시간을 TV를 보거나 낮잠을 자는 이런 시시한 일로 시간을 보내다니 정말 한심하다...' 라는 자책을 자주 하곤 한다. 그런데 이런 효율적 시간 활용에 대해 생각해볼만한 글이 하나 있었다.

책이 주는 의미는 개개인마다 다르겠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이 페이지 한 장 만으로도 책 한 권의 가격을 충분히 뛰어넘는 가치가 있었다. 효율적인 시간 활용, 그리고 그에 따른 성과에만 몰두해 결과물 없이 즐기기만 했던 활동들에 대해 죄책감을 가졌던 마음의 짐이 좀 가벼워졌다고나 할까.

게으르게 살고 있을 때는 충분히 잘 살고 있지 않다고 느꼈고 잘살고 있을 때도 이보다 더 잘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는 일을 하고 있지 않다는 죄책감을 느꼈다. 일을 하고 있을 때는 인생을 즐길 줄 모르고 일만 한다는 생각에 나 자신에게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러니까 불만족과 시간 낭비의 느낌은 항상 내 꽁무니를 졸졸 따라 다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요즘에는 이렇게 생각한다. 시간 낭비 여부를 결정하는 요소는 과연 무엇일까? 우리 중 누가 허투루 낭비한 하루와 보람 있는 하루를 구분할 수 있을까?

확실한 목적이나 방향성이라고는 없는 세상에서, 의미가 무엇이고 이유가 무엇인지 알 능력이 없는 인간에게 시간의 가치란 무엇일까? 그저 주어진 순간과 주어진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에 따라 상대적으로 결정되는 건 아닐까? 세상의 모든 기준이나 관습을 걷어내고 나면 내가 하루를 낭비했는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다.

그러니까 결국 시간은, 내 시간을 내가 어떻게 여기고 있는지만큼만 중요하다.

P38, 40

사회생활을 경험하면서 지금은 좀 나아졌긴 하지만 예전에는 착한 어린이병인가 할 정도로 거절하거나 싫은 소리하는 걸 어려워 했었다. 물론 지금도 쉬운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해야할 말은 한다. 왜 그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싫은 소릴 하지 못했는지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에게 미움 받는 것에 대해 두려워했던 것 같다.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까지 출간되는 걸 보면 이런 두려움은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문제인 것 같다. 타인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어하는 욕구는 인간의 당연한 본능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런 본능을 악용하는 경우들도 많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본능을 억누르고 싫은 소리라도 해야할 말은 해야한다. 그럴 땐 저자의 이 말을 기억하면 용기를 내는데 조금이나 도움이 될 것 같다.

타인에게 사랑받으려는 노력은 제로섬게임이다.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한다고 생각한 말을 했을 때 그 생각이 틀렸다면 그들은 당신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할 거라 생각하는 말을 했고, 그 생각이 맞았다면 그들은 진짜 당신이 아닌 그 말을 하는 당신을 좋아하는 셈이 된다. 둘 다 지는 게임이다. 적어도 말하고 싶은 것을 말했을 경우에는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든 그렇지 않든, 그 순간에 당신의 진짜 모습을 좋아하거나 싫어한 것이 된다.

P65

죽음 앞에서는 어느 누구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오직 자신만이 마지막까지 그 길을 함께 갈 수 있다. 그러니 죽음이 바로 눈 앞에 다가 오기 전, 아직 시간이 남아있을 때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 대해서, 그리고 스스로와 화해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그럼 남아 있는 현재의 삶이 더 충만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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