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지만 사는 동안 죽음을 인식하기란 쉽지 않다. 마치 평생 살 것처럼 생각하지만 당장 오늘 출근 길에도 교통사고로 죽을 수도 있는 것이 인생이다. 이 말은 오늘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는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뜻이기도 하다. 누군가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나에게도 일어나지 말란 법이 없단 생각을 하면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 되더라도 이상하지 않다.
어릴 때야 당연히 이런 생각을 하지 않겠지만 살아가면서 어떤 징조도 없던 가까운 사람의 갑작스런 죽음을 경험하고 나면 내 삶도 그렇게 갑자기 끝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게 된다.
이런 말을 하면 누군가는 너무 비관적인 거 아니냐며 나의 정신건강을 걱정 하기도 하는데 죽음을 인식한 이후로 오히려 내 인생은 더 평온하고 원만해졌다.
예전 같으면 불같이 화를 냈을 일도 당장 내일 죽는단 생각을 하면 이게 이만큼 화를 낼 일인가, 이게 이 사람의 마음에 비수를 꽂을만큼 엄청난 잘못인가, 이 사람과의 마지막 대화가 이렇게 기억되는게 내가 바라는 일인가 라는 생각에 웬만한 일에는 화가 나지 않게 되었다.
이렇게 매일 매일 죽음을 생각할 수록 내 삶과 인간관계가 더 긍정적으로 변해가는 걸 볼 수 있었다.
단지 이렇게 죽음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죽음을 바로 코 앞에서 직접 겪고 있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많은 질문과 깨달음이 있었을지 상상 할 수도 없다. 하지만 죽음을 마주한 사람의 생각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이 책, 「다만 죽음을 곁에 두고 씁니다」였다. 35세인 저자는 이른 나이에 악성 뇌종양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게 된다. 30대 중반이라는 어린 나이에 갑작스레 찾아온 죽음에 대해 저자는 오열과 분노보다는 삶과 죽음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을 이야기한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젊은 작가의 에세이라 병상일기가 아닌가 할 수도 있지만 저자는 자신의 병에 대해 그리 자세히 묘사하지 않는다. 병마가 점점 몸을 잠식해 가는 와중에도 시종일관 어떻게 보면 약간은 냉정하고 담담하게 자신의 생각을 써내려 간다.
죽어가는 과정에 있지만 죽음보다는 오히려 지금 현재의 삶에 중점을 둔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죽음을 앞 둔 사람보다는 오히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해 봐야할 주제들이 많았다.
개인적으로는 시간에 대한 약간의 강박이 있다. 시간 낭비에 대한 죄책감(?) 비슷한 것으로 '돈으로도 살 수 없고, 다시 돌이킬 수도 없는 이런 황금같은 시간을 TV를 보거나 낮잠을 자는 이런 시시한 일로 시간을 보내다니 정말 한심하다...' 라는 자책을 자주 하곤 한다. 그런데 이런 효율적 시간 활용에 대해 생각해볼만한 글이 하나 있었다.
책이 주는 의미는 개개인마다 다르겠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이 페이지 한 장 만으로도 책 한 권의 가격을 충분히 뛰어넘는 가치가 있었다. 효율적인 시간 활용, 그리고 그에 따른 성과에만 몰두해 결과물 없이 즐기기만 했던 활동들에 대해 죄책감을 가졌던 마음의 짐이 좀 가벼워졌다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