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과학이나 생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 제목은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말 그대로 인간이나 동물을 구성하고 있는 유전자는 자신의 생존과 복제를 위해 이기적인 선택을 하며, 인간은 그런 유전자의 복제 욕구를 수행하는데 필요한 생존기계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이기적"이라는 타이틀을 붙였지만 사실 유전자는 오히려 이타적인 행동을 더 많이한다고 한다. 하지만 진정 이타적인 의도에서 나온 행동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자신의 복제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일정 부분 희생을 감수한 것이며, 그것이 인간의 관점에서 이타적으로 보일 뿐이라는 것이다. 현대 생물학에선 이런 리처드 도킨스의 이론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이를 정면으로 비판한 학자가 이 책의 주인공인 '데니스 노블'이다. 데니스 노블이란 이름이 약간 생소할 수는 있는데 무려 리처드 도킨스의 박사 논문을 심사했던 교수라고 하니 우리가 잘 모를 뿐 엄청나게 대단한 사람이다.
데니스 노블은 생물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로 한 평생 '생명이란 무엇이며,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연구를 이어왔다. 앞서 말했지만 데니스 노블은 리처드 도킨스와 달리 인간은 유전자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것이 인간의 본질을 결정짓는 요소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인간의 유전자를 꺼내 배양액에 넣어놓는다고 한들 그것이 인간은 아니며, 인간의 뇌를 꺼내 영양소를 공급한다고 한들 그것 또한 인간이 아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데니스 노블은 "생명이란 DNA나 두뇌에 종속된 것이 아니라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끊임없이 교류하는 하나의 시스템" 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이런 견해는 전통적인 동양 사상, 특히 불교의 개념과 여러모로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 때부터 불교 사상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원효대사에 대한 애정이 깊어 한국의 유서깊은 사찰들을 방문해 템플스테이를 하면서 그 곳의 스님들과 대담을 나눴고, 스님들과의 대담 내용을 정리한 것이 책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데니스 노블이 생물학자라서 혹시나 이 책도 생물학이나 유전학같은 머리 아픈 내용이 아닌가 하는 걱정은 접어둬도 좋다. 출발은 인간의 유전자, DNA 일지라도 결국엔 인간의 삶과 고통, 번민 등 인간의 본질에 대해 다루고 있기 때문에 전혀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과학적 이성보다는 감성과 영혼을 충전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
책은 총 4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는데 인간이라면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 해봤을 법한 고민들을 다루고 있다.
삶은 왜 괴로운가?, 나는 누구인가?, 마음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렇게 4개의 챕터이다. 이 중 어느 것 하나도 인생에서 소홀히 다룰 수 없는 주제들인데 아래는 인상 깊었던 대담 내용 중 일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