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질문 - 내 안의 두려움을 마주하는 인생의 지혜를 찾아서
다큐멘터리 〈Noble Asks〉 제작팀 외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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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과학이나 생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 제목은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말 그대로 인간이나 동물을 구성하고 있는 유전자는 자신의 생존과 복제를 위해 이기적인 선택을 하며, 인간은 그런 유전자의 복제 욕구를 수행하는데 필요한 생존기계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이기적"이라는 타이틀을 붙였지만 사실 유전자는 오히려 이타적인 행동을 더 많이한다고 한다. 하지만 진정 이타적인 의도에서 나온 행동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자신의 복제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일정 부분 희생을 감수한 것이며, 그것이 인간의 관점에서 이타적으로 보일 뿐이라는 것이다. 현대 생물학에선 이런 리처드 도킨스의 이론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이를 정면으로 비판한 학자가 이 책의 주인공인 '데니스 노블'이다. 데니스 노블이란 이름이 약간 생소할 수는 있는데 무려 리처드 도킨스의 박사 논문을 심사했던 교수라고 하니 우리가 잘 모를 뿐 엄청나게 대단한 사람이다.

데니스 노블은 생물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로 한 평생 '생명이란 무엇이며,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연구를 이어왔다. 앞서 말했지만 데니스 노블은 리처드 도킨스와 달리 인간은 유전자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것이 인간의 본질을 결정짓는 요소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인간의 유전자를 꺼내 배양액에 넣어놓는다고 한들 그것이 인간은 아니며, 인간의 뇌를 꺼내 영양소를 공급한다고 한들 그것 또한 인간이 아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데니스 노블은 "생명이란 DNA나 두뇌에 종속된 것이 아니라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끊임없이 교류하는 하나의 시스템" 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이런 견해는 전통적인 동양 사상, 특히 불교의 개념과 여러모로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 때부터 불교 사상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원효대사에 대한 애정이 깊어 한국의 유서깊은 사찰들을 방문해 템플스테이를 하면서 그 곳의 스님들과 대담을 나눴고, 스님들과의 대담 내용을 정리한 것이 책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데니스 노블이 생물학자라서 혹시나 이 책도 생물학이나 유전학같은 머리 아픈 내용이 아닌가 하는 걱정은 접어둬도 좋다. 출발은 인간의 유전자, DNA 일지라도 결국엔 인간의 삶과 고통, 번민 등 인간의 본질에 대해 다루고 있기 때문에 전혀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과학적 이성보다는 감성과 영혼을 충전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

책은 총 4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는데 인간이라면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 해봤을 법한 고민들을 다루고 있다.

삶은 왜 괴로운가?, 나는 누구인가?, 마음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렇게 4개의 챕터이다. 이 중 어느 것 하나도 인생에서 소홀히 다룰 수 없는 주제들인데 아래는 인상 깊었던 대담 내용 중 일부이다.


▶ 나를 화나게 하는 사람들

아마 사회생활에서 가장 힘든 것 중 하나가 인간관계일 것이다. 어떤 집단이든 또라이가 1명 씩은 있다는 또라이 보존의 법칙(?)이 있는데 만일, 자신의 조직에 또라이가 없는 것 같으면 그 또라이는 바로 본인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는 걸 보면 말이다.

그러다보니 아무리 마음을 좋게 먹으려고해도 화가 나게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사람들은 어떻게 대해야 하냐는 질문에 '금강' 스님은 이렇게 대답했다.

먼저 내 마음속의 틀부터 버려야 합니다. 일단 상대방을 현재의 상태 그대로 인정하는 거예요. '저 사람은 저럴 수밖에 없었다'라고 받아들이는 겁니다. 자라온 환경 때문일 수도 있고, 살아오면서 겪은 어떤 경험 때문일 수도 있고, 사회적인 가치관의 차이도 있을 수 있죠. 지금 저 사람이 저렇게 행동하는 이면에는 여러 가지 이유와 원인이 존재합니다. 내가 상대에게 바라는 모습을 떠나서,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를 보게 되면 내 마음의 반응도 달라집니다.

p43

누군가에게 화가 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화로 인한 스트레스는 결국 화를 내는 당사자가 가장 크다. 화를 내게 만든 상대방은 평소 하던대로 했을 뿐인데 내 기준에서 그 행동이 못마땅하다보니 화가나고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스님의 말대로 어떤 사람이든 틀을 정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한다면 0.1만큼이라도 화가 덜 나지 않을까. 물론 틀을 깨는 것이 쉬운 일도 아니고 하루 아침에 이뤄지진 않겠지만 그래도 그게 원래 저 사람의 모습일 뿐이라고 인정한다면 내 마음의 평화를 찾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 주인으로 살 것인가, 노예로 살 것인가

매년 새해가 되면 여러 인터넷 사이트에서 신년 운세를 즐겨 보곤 한다. 말로는 재미로 본다곤 하지만 한편으론 인간의 운명은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진대로 흘러간다는 운명론에 휘둘리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싶다. 이런 생각은 비단 개인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여러 종교에서 강조하기도 한다. 세상은 신에 의해 창조 됐으며, 인간도 신이 창조한 것이니, 결국 인간을 구하는 것은 신이다라는 식의 신념을 설파하기도 하는데 이에 대해 부처님은 딱잘라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인간이란 자신의 삶을 창조하는 창조주다. 바로 지금 사고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대로 삶은 창조된다.

거짓말을 한다. 그러면 거짓말하는 인생이 된다.

욕설을 한다. 그러면 욕설하는 인생이 된다.

p197

결국 부처의 가르침은 다른 사람에게 휘둘리지 말고 내 인생은 오롯이 내가 주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니 마음대로 살라는 것이다. 전생도 따지지 않고, 타고난 사주팔자도 따지지 않고 본인의 의지를 가지고 살면 누군가의 종이 아니라 주인으로 살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하지만 이 때 어떤 일이 잘못되더라도 그것은 운명이나 전생이나 신 등 외부의 개입이 아니라 자신의 탓일 뿐이니 그 결과도 모두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무게감이 있어 한편으로는 무서운 가르침이기도 하다.


사람들의 삶은 갈수록 더 여유롭고 풍족해지고 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조급하고 불안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현재 자신의 처지를 극단적으로 비관하거나 경쟁에서 뒤쳐진다는 불안감에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조바심을 내며 자신을 채찍질하기 보다는 조금 더 나에 대한 본질적인 고찰에 집중하는 것이 마음의 평정심을 찾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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