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제목부터 일반적이진 않은데 내용 또한 범상치 않다. 시중에 출간되어 있는 많은 주식 서적들처럼 차트나 재무제표 분석으로 저점 매수, 고점 매도 방법을 알려주는건가 싶어 첫 장을 펼쳤지만 저자는 재무제표의 재자도 꺼내지 않는다. 오히려 생소한 기업 M&A의 세계로 인도하는데 쉽게 접할 수 없는 내용이라 흥미로웠다.
몇 년 전 직장에서 진행하던 프로젝트 때문에 기업 M&A에 관한 여러가지 책들을 찾아본 적이 있었는데 실질적인 내용보다는 이론적인 내용 위주로 구성된 책이 대부분이라 만족할 만한 정보를 얻지 못했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실제 기업들의 다양한 M&A 사례에 대해 들을 수 있어 개인적으로는 아주 재밌게 읽었다.
저자가 이렇게 M&A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줄 수 있었던 이유는 저자의 이력을 보면 알 수 있다. 저자는 상장사와 자산운용사, 창투사, 벤처캐피털 등 다양한 투자자들과의 기업 인수합병을 15년간 진행했던 경험이 많은 베테랑이다. 사실 기업 인수합병 구조는 관련자가 아니고서는 알기가 어려운데 실무자의 입을 통해서 들으니 더 생동감 있고 자세한 정보를 알 수 있어 좋았다.
But, 일반적인 주식 투자 방법이나 차트 분석에 관한 정보를 원했던 독자들이라면 기대한 방향과 이 책의 방향이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주가 급등 사유 없음> 은 특정 종목의 시세에 급격한 변동이 있을 때 한국거래소로부터 사유에 대한 소명을 요청받은 해당 기업이 '우리는 주가 급등에 대한 사유를 모르겠다, 사유가 딱히 없다.' 라고 시치미 뗄 때 쓰는 말이다. (물론 진짜로 모를 수도 있긴하다.)
하지만 조금만 더 파고들다 보면 <주가 급등 사유 없음>은 '사실 이건 다 우리 계획에 의한 결과이지만 사유를 알려줄 수는 없지롱~'이란 걸 알 수 있다. 여기서 '우리'를 저자는 '세력'이란 단어로 지칭하고 있는데 흔히 세력이라고 하면 영화나 드라마에서 봤던 불법적으로 주가를 띄우는 작전 세력을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저자가 언급하는 '세력'이란 정상적인 M&A를 진행하는 투자자들 뿐만 아니라 기관 투자자, 연기금, 특수관계인 등을 포괄적으로 아우르는 말이다. 그러니 책에서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는 세력을 작전 세력과 같은 음성적이고, 불법적인 세력으로 이해하지 않도록 주의해야한다.
총 6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는데 실제 세력으로 활동한 사람들의 경험담과 인터뷰 내용을 실은 마지막 파트를 제외하면 공시를 통해 세력들의 작전주가 급등하기 전 그 시점을 파악할 수 있는 단서들을 포착하는 방법들에 대해 알려준다.
주식에 입문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차트를 통해 주식의 매수, 매도 시점이나 앞으로 상승할 주식을 판단하곤 하는데, 실제 주식시장에서는 그럴듯한 차트 모양만으로는 그 시점을 정확히 판단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아무래도 차트는 이미 발생한 거래의 결과이기 때문에 시장의 심리를 과거형으로 반영하는 성격이 강해 앞으로 전개될 방향은 차트보다는 '공시'를 통해서 먼저 확인해야 한다고 한다.
이것이 저자가 공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인데, 공시를 보더라도 그 공시에 기재된 이벤트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앞으로 일어날 어떤 사건의 단초가 되는지 알아차릴 수 있어야만 의미가 있다. 사실 공시는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볼 수 있는 정보다. 하지만 거기에 숨겨진 속뜻을 이해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저자는 공시의 숨겨진 의미를 알려주는데 주력한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기업 M&A에 대한 많은 설명들이 나오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CB(전환사채), BW(신주인수권부사채), EB(교환사채) 등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은 알고 접근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처음 듣는 용어라고 해도 책에서 설명하는 흐름을 이해하는데 크게 무리는 없다. 이 책에서 중요한 것은 세력들이 주가를 부양하려고 할 때 어떤 스토리를 짜는지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세력들이 '경영권'을 가져오기 위한 구도를 짜는 것이 핵심으로 이 때 '경영권'을 가져오기 위한 '인수방식' 을 제대로 파악해야 주가가 오르기 전에 들어가 고점에 매도하고 적당한 시기에 빠져나올 수 있는 것이다.
경영권은 그 기업과 주주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상장 기업들은 사전에 반드시 거쳐야하는 절차들이 있다. 그리고 그 절차들을 공시를 통해 공개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예리한 투자자들이라면 공시를 통해 사전 징후를 파악할 수 있다.
세력들의 작업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표적으로는 세력의 자금 규모에 따라 기업 사이즈 자체를 키우는 중기적 접근과 단발적인 이슈로 순간적으로 주가를 띄우는 단기적 접근이 있다. 이 때 공시에는 아주 다양한 세력들의 작업 신호들이 나타나지만 대표적인 신호로 '최대주주변경' 과 '유상증자'가 있다. 세력들의 성격에 따라 다르지만 경영권을 인수해 회사를 장악하거나 지분만 가지고 최대주주로 등극하거나 어느 쪽이 됐든 일단 최대주주가 되어야 회사를 쥐락펴락 하기가 쉬워진다. 그래서 일단 최대주주 변경에 대한 공시가 나타나면 주목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