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쇼맨과 이름 없는 마을의 살인 블랙 쇼맨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최고은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국내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이제 코로나라는 단어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불과 2년 전만 하더라도 전혀 상상치도 못했던 코로나 팬데믹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이 때 코로나를 다룬 소설이 등장했다.

굳이 책 좀 읽는다하는 독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한 번쯤 이름은 들어봤을 베스트셀러 작가, 하기시노 게이고의 최신작이다.

매년 쉬지 않고 꾸준히 작품을 내고 있어 공장장(?)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작가답게 이번에도 발빠르게 전세계를 패닉에 빠뜨린 코로나를 소재로 책을 출간했다. 비록 소설이지만 현재 우리가 실생활에서 겪고 있는 상황들이 글 속에도 녹아있어 흥미로웠다.

관광객으로 유지되던 작은 마을이자 주인공인 마요의 고향은 코로나로 인해 관광객이 사라져 어려움을 겪고, 마을의 자영업자들도 생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다방면으로 고군분투한다.

이런 상황은 굳이 도쿄까지 가지 않더라도 우리 집 밖으로만 나가도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뉴스에서도 연일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조하고 관광객과 수많은 인파들로 사람들이 넘쳐나던 명동도 지금은 한산하기 그지없다.

소설은 이런 현실적인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이 와중에도 비현실적인 두뇌와 언변, 그리고 엉뚱하고 괴짜 같은 인물이 등장한다.

앞으로 시리즈물로 계속 만나게 될 것으로 예고한 블랙 쇼맨, 바로 이번 소설의 주인공인 전직 마술사, 현직 바(Bar) 주인장인 ‘다케시’이다.

이야기는 도쿄로 상경해 회사생활을 하고 있는 평범한 직장인 ‘마요’의 결혼식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향하며 시작된다.

마요가 살았던 이름 없는 작은 마을에서 교사를 하시던 아버지가 집 뒷마당에서 사망한 채 발견되고, 병사나 사고사가 아닌 살해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들에게 아버지의 사건과 관련해 이것저것 추궁 당하고 있던 찰나, 오랜 시절 보지 못했던 아버지의 동생인 삼촌 ‘다케시’가 나타난다.

작은 마을에 평범하기 그지 없는 교사가 살해 당한 이유가 무엇인지 경찰도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을 때 다케시는 사건의 단서들을 하나둘씩 찾아나가며 숨겨진 진실에 접근해간다.

사실 사건의 전개 과정은 일반적인 추리 소설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주변인물들의 알리바이를 추적해 나가자 사건과 별 관계가 없어 보였던 인물들의 숨겨진 비밀이 점점 드러난다. 이 과정에서 다케시의 활약이 돋보이는데 그 활약은 범인이 밝혀지던 순간 가장 돋보인다.

과거 혈혈단신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라스베이거스에서 공연할 정도로 유명한 마술사로 성공했던그 답게, 온갖 트릭과 뛰어난 연기력으로 범인에게 자백을 받아낸다.

그리고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도 마술사가 되기 위해 수없이 연습했을 손기술(?)과 현란한 말솜씨로 경찰들을 속여 몰래 사건의 단서와 정보들을 알아내기도 한다.

자칫 조금만 더 나갔으면 사기꾼(?)이 됐겠다 싶은 인물이지만 특유의 능글맞음과 뻔뻔함 이면에 뛰어난 추리력과 츤데레 같은 나름의 따뜻한 마음이 엿보여 매력적인 캐릭터로 탄생됐다.

다케시와 함께 등장하는 또 다른 주인공 마요는 지극히 평범하고 상식적인 인물로 약간은 고지식한 면도 있어 비상식적인 다케시와는 정 반대의 인물이지만 살인사건을 파헤쳐나가는 동료이자 주변 인물들과 다케시를 이어주는 매개체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만일 마요가 없었다면 마을과 별다른 접점이 없었던 다케시의 횡보가 눈에 튀었겠지만 마을에서 나고 자란 마요 덕분에 다케시가 눈에 띄지 않고도 사건에 대한 단서들을 수집할 수 있게 한다.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이번 소설은 사건 전개방식의 특이점이나 뒷통수를 강하게 내리치는 트릭은 없었다. 초반에 발생한 살인사건 외에는 주변인물들의 인터뷰나 탐문 과정이 평범하고 일상적이게 그려져 무난하게 흘러가는데 이런 와중에도 550페이지에 달하는 내용이 전혀 지루하게 않게 느껴졌다. 작가 특유의 짧고 속도감 있는 문장들로 평범한 내용도 흡입력 있게 읽혔다. 특별하지 않은 일상도 지루하지 않게 그려내는 건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의 가장 큰 장점인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재적인 괴짜 캐릭터와 현재의 코로나 시국을 반영했다는 것 외에는 특이점이 없다는 것이 약간 아쉬웠다. 물론 온갖 연쇄 살인사건과 기상천외한 트릭이 난무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뭔가 임팩트 있는 한 방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는 여전하기 때문에 평소 히가시노 게이고의 일상 미스터리를 좋아했던 독자라면 이번 책도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덧, 이번 소설 속에서는 <환뇌 라비린스>라는 인기 만화가 소재로 등장하는데, 그 만화의 내용이 꽤나 흥미로웠다. 큰 줄거리만 나와있을 뿐이지만, 언젠가 그 만화가 소설로 나와도 재밌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