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철학자들의 인생 수업 -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
대니얼 클라인.토마스 캐스카트 지음, 안진이 옮김 / 더퀘스트 / 2020년 12월
평점 :
절판


 

 

학업과 취업에 대한 고민,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으로 가득찼던 20대가 지나고 30대 중후반에 들어서면 회사에서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도 인정받는 시기가 된다. 그러다보면 지금 당장 먹고 사는 일에 대한 걱정보다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슬슬 생기기 시작한다. 물론 여전히 회사 생활은 힘들고 언제까지 이 회사를 다닐 수 있을지 걱정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사회 초년생보다는 심적 여유가 생긴다.

요즘에는 백세 시대라지만 겸손하게(?) 인생을 80세 정도에 마무리한다고 봤을 때 40대 쯤 되면 이제 더 이상 마냥 젊지만은 않고, 인생의 전반기를 마무리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든다. 그러면 앞으로 남은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도 없는 고민이 불현듯 찾아오는데 이게 사람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다보니 딱히 정해진 답이 없다.

인생 선배들의 조언이나 친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눠보지만 뭔가 속시원한 방향을 얻기는 힘들다. 그래서 인생에 관해 통달한(?) 지혜를 가진 종교인이나 심리학자, 철학자들의 책을 통해 길을 찾아보던 찰나에 만나게 된 것이 이 책이다.

책의 표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 '인생을 가치있게 살아가는 방법은 무엇인가?' 등등 인생에 관한 중요한 질문들을 수많은 철학자들의 이론을 토대로 다루고 있다.

책에 등장하는 철학자 중에는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니체나 칸트, 아리스토텔레스 뿐만 아니라 다소 생소한 철학자들도 등장하고 있는데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철학자와 이론들이 많다보니 책의 맨 마지막에 철학자들의 이름과 주요 이론들을 정리해 독자들이 찾아보기 쉽도록 배려해놓았다. (무려 70명이 넘는 철학자와 대표 이론이 정리되어 있다.)

목차는 총 18개로 구성되어 있는데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 '인생에서 영원한 것은 없다', '나는 생각하는 대로 만들어진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 '인생과 돈, 그 사이의 적정 거리' 등등 목차의 제목에서부터 벌써 뭔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건 느낌일 뿐 철학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쉽사리 깨달음을 입에 떠먹여 넣어주지는 않는다. 어쩌면 이 책을 다 읽고도 오히려 더 큰 혼란과 질문에 휩싸일수도 있다^^;

하지만 철학을 이론 위주로 어렵게만 설명하려하지 않고 최대한 캐주얼하게 핵심만 요약해서,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철학책에 비해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할 수 있다.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매 주제마다 철학적 화두를 익살스럽고 직관적으로 표현한 만화를 함께 실어둠으로써 약간의 숨구멍(?)을 틔워두었다. 물론 미국식 조크가 반영된 만화라 숨이 넘어갈 정도로 웃기진 않다는 것은 감안하도록 하자.

책에서 가장 처음으로 제시하는 주제는 '반드시 인생에서 의미를 찾아야 하는가'이다.

아니,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하고,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해 알기 위해 이 책을 읽는 것인데 꼭 인생에서 의미를 찾아야 하는가라니 처음부터 아예 책을 읽는 의미를 없애는 주제가 아닐 수 없다.

왜 이런 질문을 하게 된 것인지 저자는 20세기 실존주의 철학자들의 이론을 통해 답을 한다.

사르트르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은 사물과 달라서 '미리 정해진 본질'이 없다. 예를 들어 재떨이는 담뱃재와 꽁초를 담는다는 '존재의 이유'가 있지만, 인간의 삶에는 객관적인 의미가 없다.

p12

 

인간이 어떤 물건이나 기술을 발명할 때는 항상 어떤 목적을 가진다. 물론 처음의 목적과 다른 방향으로 물건이 쓰일 때도 있긴 하지만 항상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시작한다. 하지만 인간은 그렇지가 않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는다. 물론 부모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아이를 출산할 수는 있겠지만 사물은 자신의 쓰임을 선택할 수 없는 것과 달리 탄생 이후, 사람은 자신의 선택에 의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다. 사르트르는 이런 인간의 선택에 대해 "실존이 본질에 우선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인생의 의미가 정해진 것이 아니며,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고 또한 선택은 인간의 불가피한 책무라는 것이다. 이걸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바꿔보자면 "인생은 선택의 연속", 혹은 "인생은 B(Birth)와 D(Death)사이의 C(Choice)이다." 정도 될 것 같다.

이렇게 인간은 태어난 이상 항상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고, 선택의 자유를 누리게 된다. 하지만 이 선택의 자유에는 언제나 대가가 따르고, 그 대가 역시 선택을 한 본인이 지게 되어 있고, 그 선택에는 어떠한 지침이나 정답지가 없다. 그러고보면 결정장애가 있는 나로서는 탄생 자체가 고난의 연속(?)이 아닐 수가 없다.

어쨌거나 이렇게 인간의 선택에 제한이나 정답이 없다보니 인간의 실존이 부조리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일부 실존주의자들은 인생 자체가 부조리 하니까 그냥 살자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는데 이걸보니 TV에서 한 스님이 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정확한 문장은 기억은 안나지만 인간은 왜 사는가라는 질문에 "왜 살긴 왜 살아, 그냥 태어난 김에 사는거지." 라는 답변을 하셨던 것 같다. 스님이 실존주의자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스님의 답변과 20세기 실존주의자들의 이론이 일맥상통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인간의 탄생에는 어떤 의미도 없을지도 모른다. 엄청난 우연과 확률로 인해 그냥 목적없이 태어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태어난 이후의 인생은 개인의 선택과 목적에 의해 정해진다. 그래서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만들어내고, 어떤 목적을 가지고 살아갈지는 순전히 개인의 선택에 의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지금 현재의 내가 과거 선택들로 인한 결과이듯이 미래의 인생 또한 내 선택에 따라 '존재의 의미'가 결정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말했듯이 이 책에서는 인생에 대한 정답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미 목차에서부터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모두 다 했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대놓고 정답을 알려주진 않지만 정답까지 가는 힌트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어봐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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