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소녀의 거짓말 - 구드 학교 살인 사건
J.T. 엘리슨 지음, 민지현 옮김 / 위북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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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국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이라면 대부분 집보다는 학교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만큼 학교는 익숙한 장소인데 이상하게도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특히 학생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간 밤 시간은 더 그렇다. 그래서 그런지 웬만한 학교에는 대부분 으시시한 소문이 한 두가지씩은 떠돌아다닌다. 밤 12시만 되면 동상이 움직인다던가, 맨날 2등만 하던 학생이 질투심에 1등을 창가에서 밀어버려 죽은 1등이 밤만되면 교실을 돌아다닌다던가 등등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있다.

이렇게 학교는 친숙하면서도 동시에 공포의 대상이되기 때문인지 공포영화의 소재로도 많이 등장한다. 너무나 유명한 여고괴담 시리즈나 경성학교, 최근에 개봉한 대만영화 반교까지 학교를 무대로 한 다양한 공포영화들이 제작되었다.

『착한 소녀의 거짓말』도 역시 학교를 배경으로 한 살인사건에 관한 이야기가 주제이다. 물론 미국이라는 나라의 특성상 정확히는 학교보다는 기숙사가 주요 무대이고, 귀신이나 유령보다는 살인범이 등장한다.

이야기는 100년이 넘은 명문 구드 학교로 애쉬라는 한 소녀가 전학을 오면서 시작된다. 180 센티미터의 키에 늘씬한 몸매, 아름다운 외모. 뛰어난 피아노 실력에 영특한 머리까지 뭐하나 빠질 것 없는 소녀지만 자신의 진짜 정체를 숨기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한참 뒤에 나오지만 작가는 첫 등장부터 주인공이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걸 대놓고 드러낸다. 일반적인 미스터리 소설은 독자들의 뒷통수를 때리기 위해(?) 극 초반 인물의 비밀을 숨기는데 비해 착한 소녀의 거짓말에서는 이야기의 시작부터 주인공이 비밀을 가지고 있고, 또 그것을 철저히 숨기려한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그래서 독자들은 과연 이 인물이 무엇을, 왜 숨기고 있는지 이어지는 다음 이야기에 집중할 수 밖에 없게 된다.

나 역시도 이런 작가의 꾐에 넘어가서 언제 그 비밀이 나오나 계속 다음, 그 다음 장을 넘겼으나 비밀은 중반 이후, 책장이 꽤 넘어간 뒤에나 알 수 있었다. 물론 그 전에 어느 정도 단서들을 흘려놓기는 하지만 명백한 답은 한참 뒤에나 알 수 있다.

책에 둘러진 띠지에도 나와있고 "구드 학교 살인 사건"이라는 부제에서도 보듯이 살인사건을 강조하고 있지만 사실 살인사건 자체에 대한 비중이 높지는 않았다. 물론 주인공이 전학오자마자 담당 피아노 교수가 알러지로 쇼크사하고, 애쉬의 룸메이트였던 한 학생이 학교 종탑에서 자살인지 타살인지 모를 이유로 죽는 사건이 발생하지만 살해방식이나 사건 그 자체에 대한 묘사보다는 사건 이후 학생들간의 미묘한 신경전과 학교에서 벌어지는 그들만의 은밀한 모임 등에 대한 이야기가 더 주를 이루고 있다.

아무래도 학교 자체가 정재계 인사들의 자제만 모인 앨리트 집단에다가 모두 기숙사 생활을해서 그런지 서로 간의 유대감을 중요시 여기고 소위 잘나간다는 무리에 끼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들에 대한 묘사가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애쉬가 전학생임에도 불구하고 구드 학교에서 가장 잘나가는 아이비바운드라는 비밀 클럽에 간택(?)되자 이를 시기, 질투한 다른 학생들이 애쉬의 비밀을 캐내 폭로하기도 하고, 결속을 다진다는 이유로 폭력적인 행태들이 자행되기도 한다. 소설에서는 이런 여학생들의 얽히고 설킨 심리묘사를 기반으로 살인사건이라는 이벤트를 끼워넣어 누가 범인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을 만든다.

주인공이 애쉬가 전학온 뒤 애쉬와 관련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보면서 독자들은 이들을 죽인 범인이 애쉬는 아닐까 의심하기도 하고 애쉬를 질투한 친구를 의심하기도 하면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혹을 펼쳐나간다.

아, 물론 가장 먼저 죽은 피아노 교수는 애쉬가 알러지가 있는 교수에게 실수로 알러지 유발 물질이 든 초콜릿을 주고 그 때문에 사망한 것이라고 확실히 알려주지만 교수가 죽은 이후 애쉬의 행동들이 과연 애쉬가 진짜 실수로 그랬을까라는 의구심이 들게 만든다.

어쨌거나 학교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한만큼 경찰들이 등장해 수사를 펼치지만 좀처럼 단서를 찾기 힘들던 중 우연한 계기로 사건의 실마리가 풀린다. 이후 범인을 향한 경찰과 주변인물들의 수사망이 좁혀져 오는데, 아무래도 앞서 말한 것처럼 살인사건보다는 기숙학교 내 소녀들의 대립관계와 시기, 질투 등에 대한 심리 묘사가 주를 이뤄서 그런지 주인공이 느끼는 생생한 심리묘사와는 달리 경찰들의 수사 과정은 다소 밋밋하고 매력없이 느껴졌다.

그리고 매번 뭔가 숨겨진 비밀이 있는 것처럼 그려지던 10년 전 살인사건과 그에 얽인 인물들, 학교에 전해져 내려오던 소문들은 이야기가 진행되던 내내 풍기던 수상한 분위기와는 달리 별다른 설명없이 싱겁게 끝났다. 그리고 주인공만큼 비중이 높고 매력적이었던 웨스트 헤이븐 학장의 비하인드 또한 특별한 내막없이 끝나 초반에 벌려놓은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제대로 회수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 550 페이지 정도의 짧지 않은 분량에 사건 위주의 흐름보다는 심리 묘사가 주를 이뤄 다소 루즈할 수 있지만 뒷 이야기를 읽을 수밖에 없도록 독자들을 끌고 가는 힘이 있는 소설이었다. 다만 후반부에 다가갈수록 주인공의 서술에만 의존해 급하게 결말을 맺으려는 느낌이었고, 중반 이후부터는 다소 예측 가능한 반전이었다는게 아쉬움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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