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빼미 눈의 여자
박해로 지음 / 네오픽션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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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로 작가는 한국 문학계에서는 흔치 않은 공포물을 꾸준히 집필하고 있다. 소재 또한 한국의 전통 무속신앙을 기반으로 아주 독특한 내용을 써 오고 있는데 앞선 작품인 『살: 피할 수 없는 상갓집의 저주』 나 『신을 받으라』에서 그 매력을 확실히 보여준다.

가장 먼저 살:피할 수 없는 상갓집의 저주를 읽고 다음 작품인 신을 받으라 역시도 재밌게 봤었기에 이번 『올빼미 눈의 여자』 역시 아주 큰 기대감을 품고 보게 됐다.

각설하고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번 작품의 경우 호불호가 갈릴 것 같다는 생각이다. 앞의 두 작품에서도 무속신앙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공포스럽고, 미스터리하고 기괴한 분위기였지만 이번 작품이 가장 기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해로 작가의 작품들이 나홍진 감독의 곡성을 연상시킨다는 평을 많이 듣는데 개인적으로는 세 작품 중 이번 작품이 곡성과 가장 가까운 느낌이었다.

전작들에서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역시 아주 평범한 9급 공무원 '한기성'이란 인물이 주인공이다. 기성은 창구에서 국가에 항의를 하러 온 민원인들을 상대하는 업무를 하고 있었기에 온갖 패악을 부리는 민원인들에게 항상 시달리고 있었고, 그들로부터 단 하루라도 벗어나고자 교육 연수를 신청하지만 매번 퇴짜를 맞았다. 그러다 이번에 드디어 5일간의 외부 교육을 가게 되고, 그 곳에서 공무원 신임 교육을 함께 받았던 '장준오'를 만나 술을 진탕 마시며 회포를 풀게 된다. 두 사람은 술을 마시고 2차로 노래방을 찾게 되고 기성은 다음날 준오와 모텔에서 눈을 뜨게 된다. 아무리 술을 마셔도 그렇지 필름이 완전히 끊기게 된 것이 미심쩍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 전 날 노래방에 도우미로 나온 중년 여성과 핸드폰이 바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바뀐 핸드폰을 돌려주러 나간 자리에는 중년 여성의 딸이 나왔고, 알고보니 그녀는 기성의 대학 동창이었던 '연진'이었다.

연진은 대학시절에도 엄청난 미모로 커플들을 깨고 다녀 구설수에 올랐었는데 성형으로 얼굴이 좀 달라지기는 했지만 그 미모는 여전했고, 기성은 여자친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끌리게 된다.

그렇게 연진의 가족과 인연이 닿게 된 기성은 연진 엄마의 도움으로 평소 앓고 있던 고질병인 치질을 잘 본다는 의사에게 진료를 받게 되고 어쩌다보니 함께 드라이브도 가게 된다. 외딴 곳으로 차를 몰고 간 연진의 엄마는 기성이 자신의 딸에게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기성에게 이성으로 접근하고 급기야 차 안에서 관계를 맺게된다. 이후 기성은 스스로도 제어할 수 없는 욕망을 느끼며 모녀에게서 헤어나올 수 없게 되는데...

얼핏 줄거리만 보면 한 공무원이 멀리 떠난 교육에서 우연히 만난 모녀와 삼각관계에 빠지는 치정극같지만 이 모녀의 정체가 심상치 않다.

단순한 남녀 관계를 떠나 모녀의 말과 행동들이 수상하기 짝이 없는데 그 속내가 뭔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다. 일반적으로는 극 중 인물들은 알아채지 못하지만 독자들은 어느 정도 눈치를 채기 마련인데 중반 이후까지도 모녀의 속내가 무엇인지 쉽사리 드러나지 않는다.

책은 크게 3개의 챕터로 구분되어 있는데 1부는 연수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5일동안 기성에게 일어난 일들을 기성의 시점에서 그려내고, 2부에서는 기성이 연수에 참가하기 전 다른 인물들에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각 인물들이 어떤 계기로 이런 일을 벌였는지 1부에서 알려주지 않았던 사건의 전말을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 에필로그에서는 이 사건의 주범이 미래에 어떤 결말을 맞게 되는지가 4페이지 분량으로 짧게 등장하는데 단순한 에필로그로 치부하기에는 결국 작가가 얘기하고 싶은 핵심이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앞선 두 작품들에서는 초반부터 휘몰아치는 전개에 이야기에 빠르게 몰입되었다면, 이번 작품은 태풍이 올 꺼라는 전조만 보여주고 정작 태풍은 한참 뒤에 몰아친 느낌이었다. 물론 그 전조가 사실은 단순한 전조가 아니고 태풍을 일으키기 위한 물밑 작업이었다는건 나중에 드러나지만 본격적인 태풍이 닥치기 전 초반의 약간 루즈한 전개로 흡입력이 다소 떨어졌다. 물론 작가 특유의 가독성 좋은 문장은 여전하지만 그래도 주인공이 사건에 휘말리면서 신경쇠약에 피를 말리는 미스터리한 분위기만 계속 이어지다가 중반 이후에야 본격적인 실체를 드러내 절정에 이르기까지 전개가 느리게 느껴졌다.

이야기의 처음과 끝에 작가가 밝히고 있듯이 이번 작품에서는 자신의 안위밖에 모르는 인간의 이기심을 그리고 있다.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생명 따윈 안중에도 없는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그들도 결국 사람인지라 그렇게 원하던 소망을 이룬 뒤에도 결코 행복하지 못한다. 원하는 것을 이룬 뒤에는 그걸 잃을까봐 전전긍긍하고 뒤늦게 죄책감에 시달리며 평생을 살기도 한다.

이번 작품에서는 다른 어떤 작품보다도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명확했고, 그 메시지가 뭔지도 확실히 알 수 있었지만 그에 반해 오락적인 재미와 흡입력은 전작들보다 반감되어 약간은 아쉬움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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