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환야 1~2 - 전2권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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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환야> 1,2 권은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의 최근 작품은 아니다. 2006년에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한 차례 출간된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 재출간되었다. 보통 외국 소설의 경우 동일한 작품이라도 누가 번역했느냐에 따라 작품의 흡입력이나 퀄리티가 달라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에 다시 출간된 환야는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의 작품을 많이 번역했던 김난주 번역가의 손을 거쳐 완성도가 더 높아졌다.

새로운 작품이 출간될 때마다 매번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답게 이 책도 역시나 엄청난 흡입력과 가독성을 보인다. 1,2권 합쳐 총 1,0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임에도 중간에 느슨해진다던가 지루해지는 부분없이 마지막까지 팽팽한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다.

표지의 띠지에서도 이미 밝히고 있지만 이 책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른 작품인 <백야행>과 비슷한 면이 많다. 뛰어난 미모의 여주인공과 그런 여주인공을 위해 어둠을 자처하는 남주인공, 그들 주변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사건들, 그리고 그 사건을 끈질기게 추적하는 형사 등 플롯이나 컨셉이 백야행을 연상시키는 부분이 많다보니 백야행의 후속작처럼 생각하는 독자들도 있다. 작가도 역시 이런 점을 의식했는지 백야행의 후속작으로 보이지 않으려 노력했다고 하는데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백야행과 비교할 수 밖에 없다.

어쨌거나 두 작품 모두 대중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 백야행은 일본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영화로 제작됐고, 환야는 일본에서 드라마로 방영되었으니 재미와 대중성은 역시나 보장된 작품이다.

이야기는 1995년 한신 대지진이 벌어지면서 시작된다. 거품 경제가 무너진 후 일본의 제조업은 큰 타격을 받았고 주인공 마사야 또한 그런 거품경제 붕괴의 피해자였다. 빚을 갚지 못한 아버지가 공장에서 목을 매 자살하고 발인을 앞둔 날, 갑자기 발생한 한신 대지진으로 마사야의 집이 붕괴된다. 그 사건으로 아버지의 보험금을 요구하던 고모부가 잔해에 깔리게 되고, 마사야는 외삼촌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아채자 본능적으로 기왓장으로 머리를 내려친다. 그리고 마침 그 곳을 지나가던 미후유가 그 장면을 목격하는데 어떤 이유인지 미후유는 마사야를 신고하지 않았고, 위험에 처한 미후유를 마사야가 구해주면서 둘은 가까워진다. 그 후 미후유 또한 마사야의 살해 증거가 담긴 영상을 없애줌으로써 둘은 도쿄로 가 새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도쿄에서 미후유는 자신의 외모와 재능을 무기로 승승장구 하지만 자꾸만 자신의 성공에 걸림돌이 되는 인물들이 나타나고 그 때마다 마사야는 미후유의 성공에 방해가 되는 인물들을 처리해준다.

마사야는 미후유와 가정을 꾸리고 평범하게 사는 것을 꿈꾸지만 성공을 꿈꿨던 미후유는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 마사야가 아닌 다른 사람과 결혼을 선택하게 되고 마사야는 미후유가 정말로 자신을 사랑하는 것인지 의문을 품게된다.

하나둘 씩 의심이 피어나자 마사야는 미후유의 과거를 추적하기 시작하는데 그 동안 미후유에 대해 알고 있었던 모든 것들이 가짜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과정에서 미후유의 정체를 의심하던 다른 한 사람, 가토라는 형사가 등장하는데 계속해서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사건들이 모두 미후유와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계속해서 그녀의 뒤를 캐고 다닌다. 가토가 자신의 정체에 접근하자 미후유는 또 다른 계획을 세우는데...

히가시노 게이고는 매년 끊임없이 신작을 발표하며 공장장(?)이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최근 작품보다 2000년대 초반 작품들의 분위기를 더 좋아한다. 지금도 여전히 추리소설을 쓰고 있지만 최근 작품들은 약간 가볍고 따뜻한 분위기라면 2000년대 작품들은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로 당시 시대 상황이 반영된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의 느낌도 있다.

실제 1995년에 발생한 고베 대지진이라던가 거품경제로 인한 서민들의 몰락이라는 시대적 상황을 반영했다는 점과 성공을 위해 신분세탁을 했다는 설정에서, 줄거리는 다르지만 사회파 미스터리의 대모인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를 떠올리게도 한다.

이미 기존에 출간되었던 작품이라 인터넷에 찾아보면 결말에 대한 아쉬움을 이야기하는 독자들도 있는데 나 역시도 약간 고구마 먹은 듯한 결말에 쉽사리 책장을 덮을 수 없었다. 특히 이번에는 가장 마지막에 나오는 작가나 번역가의 말도 없어서 결말에 대한 약간의 궁금증과 아쉬움이 남았다.

하지만 미후유가 인생의 빛이자 전부라 믿었던 마사야의 입장을 생각한다면 그것이 그나마 자신의 상실감과 배신감을 덜어낼 수 있는 선택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환야는 살인, 실종과 같은 범죄가 벌어지는 추리소설이지만 좀 더 깊게 들어가보면 벼랑 끝에서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줬던 한 여자에 대한 한 남자의 지극한 순애보에 관한 이야기이기도하다. 그 순애보의 대상이 하필이면 희대의 악녀였고, 자신의 성공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모조리 없애버리는 잔인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범죄에 이르게 되지만 만일 미후유가 평범한 인생을 원했다면 결국 둘은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해피엔딩을 맞이했을지도 모른다.

손에 잡히지 않는 환상만을 심어주고 끝까지 마사야를 이용하기만 했던 미후유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그녀를 향한 사랑을 놓지 않았던 마사야의 마음이 안타깝고 슬펐던 소설, 환야였다. ( 근데 아니 그 형사는 뭔 죄냐고 ㅠ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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