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에 이르는 병
구시키 리우 지음, 현정수 옮김 / 에이치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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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느샌가 이상하게도 우발적으로 한 사람을 죽인 범죄자보다 계획적으로 여러 사람을 죽인 사이코패스 살인마에 대한 이미지가 더 좋아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평범한 사람들과 전혀 다르지 않은, 오히려 더 호감가는 인상에 주변 사람들과 대인관계가 좋은 스마트한 사람일 것이라는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이건 살인의 추억이나 한니발같은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배우들이 연기한 캐릭터가 인상 깊게 남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여러 사람을 살해하는 동안에도 붙잡히지 않았으니 당연히 치밀한 계획을 세울 정도의 지적인 능력을 갖춘 인물일 것이라는 추측 또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 책에서도 무려 24명의 무고한 아이들을 살해한 매력적인 사이코패스가 등장한다. 하이무라 야마토라는 이름의 이 남자도 역시 잘생긴 외모에 친절하고 젠틀한 빵집 사장님으로 10대 후반의 어린 남녀 아이들을 잔인하게 고문한 뒤 살해한다.

그는 자신의 범죄가 순탄하게 계속되자 한순간 방심하게 되고 결국 피해자가 도망쳐 경찰에 잡히게 된다. 그 후 자신이 저지른 모든 범죄를 인정했지만 단 1건의 살인만은 끝까지 부인한다. 그가 인정하지 않는 단 1건의 사건은 23세 여성이 살해된 사건으로 10대 아이들을 타겟으로 삼는 범인의 강박적 패턴에서 벗어나 있었다. 하지만 경찰은 그가 아무리 범행을 부인해도 신경쓰지 않았고 하이무라는 그 사건에 대해서만은 무죄를 주장하고 있었다. 어차피 그 1건이 무죄라도 사형수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지만 그래도 자신이 짓지 않은 죄를 뒤집어 쓰지 않겠다는 마지막 자존심으로 주인공인 마사야에게 도움을 청하며 이야기는 시작한다.

마사야는 어린시절 동네에서 영재로 이름 꽤나 날렸지만 각 지역의 인재들이 모인 명문고에 진학한 후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정신이 무너져버려 결국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검정고시를 치른 후 삼류대 법학부에 입학하게 된다.

예전이라면 상대도 하지 않았을 삼류대 동기들에 대한 혐오감과 이런 곳에 입학하게 된 자신의 현실에 자괴감을 느끼던 찰나 어린시절 자주 들렀던 빵집의 사장님이자 지금은 연쇄살인마가 돼버린 하이무라로부터 자신의 무죄를 밝혀달라는 편지를 받게 된다. 마사야는 하이무라를 면회한 후 어린시절 모두에게 경외의 대상이었던 과거를 떠올리게 되고 자신의 존재감이 살아나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어린시절에 대한 향수와 하이무라에 대한 알 수 없는 연민을 느낀 마사야는 결국 그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하고 하이무라의 과거 행적과 주변인들을 탐문하며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과연 하이무라는 자신의 말대로 누명을 쓴 것인지 아니면 마사야가 그의 거짓말에 놀아나고 있는 것인지 진실은 마지막 책장을 덮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

보통 반전에 자신있는 작품들은 표지에서부터 반전을 강조하기 마련이다. 그러다보면 독자들도 반전이 무엇일지 맞추기 위해 사소한 장면 하나 하나까지 의심하며 읽게 되는데 이 책은 반전에 관한 그 어떤 강조나 경고의 메시지도 없이 읽게 된 터라 마지막 반전은 더욱 강렬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이런 강렬한 반전을 선사하기 위해 작가는 주인공 마사야와 하이무라와의 관계에 대한 기초를 충실히 쌓는데 주력한다. 독자들이 마사야와 하이무라가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관계가 된 것인지 납득하지 못하면 결말에 대해 충분히 공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이무라의 어린시절을 지켜봤던 보호관찰자나 친구들의 입을 빌어 그의 불우했던 과거를 충실하게 설명해 줌으로써 마사야가 하이무라에 대한 동정심과 연민을 느끼게 되고 빵집을 운영할 당시 도움을 주었던 이웃, 연인 등 주변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하이무라의 민낯에 대한 의문을 갖게 만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피해를 입었던 피해자와 그 가족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잔인한 범죄에 대해 듣게 되는데 여기서도 하이무라가 저지른 가학적이고 잔인한 범죄에 대한 묘사보다는 어떻게 피해자들과 만나게 됐는지, 그리고 피해자들의 어떤 심리적 약점을 파고들었는지 그 과정에 집중하며 하이무라가 다른 사람들에게 환심을 얻는 방법이나 태도를 위주로 묘사한다.

 

 

단지 살인사건이 누명인지 아닌지 사실을 밝히기 위해 시작한 취재는 사실여부에 대한 판단보다는 하이무라가 왜 연쇄살인범이 될 수 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그의 본성이 진짜 악인인지 가려내는 방향에 집중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마사야는 하이무라에 대한 감정적 동조와 동경에 이르러 점점 그와 닮아가게 된다. 이후 마사야는 하이무라에 대한 동경을 넘어서 그의 살인욕구까지 닮아가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사형에 이르는 병'인 살인에 대한 욕구가 평범한 사람에게까지 전염될 수 있는 것인지 물음을 던진다.

타인에게 쉽게 흔들리고 동조하는 인간의 나약한 본성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던, 그리고 무엇보다 반전이 돋보이는 소설이었다. 누군가를 죽고 죽이는 서스펜스와 스릴을 느낄 수 있는 줄거리는 아니었지만 인간의 본성에 대한 고찰과 불우한 환경이 과연 범죄자에게 면죄부가 될 수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되는 시간이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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