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세에 은퇴하다 - 그만두기도 시작하기도 좋은 나이,
김선우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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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40세에 은퇴라니 꿈같은 이야기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무서운 이야기 같기도 하다.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회사가기 싫다는 말부터 나오는 직장인으로서 은퇴는 생각만해도 즐겁지만 은퇴 이후의 소득 절벽을 생각하면 앞이 막막해 무서워지기도 한다.

일은 하기 싫지만 그래도 소득이 없는 건 너무 두려운데 저자는 40세에 은퇴를 했다니 얼마나 대단한 사람일까 궁금해졌다. 그리고 40세에 은퇴를 하기 위해 저자가 특별히 준비한 것이나 저자만이 알고 있는 노하우가 있다면 나도 좀 알고 싶다~라는 생각에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저자는 용감하게 40세에 은퇴를 했으니 결단력 있고 심지가 굳은 사람이거나 뛰어난 사업수단으로 40대에 어마어마한 부를 이룬 사람이 아닐까라고 생각했으나 의외로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남들보다 튀려고 하지도 않았고 남들 안 하는 건 안 하고 남들 하는 건 다 하는 그런 평범한 사람으로 남들 하듯이 똑같이 취직해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물론 외국에서 경영학 석사를 받고 동아일보에서 기자로 생활했으니 평범보단 엘리트(?)라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모로부터 유산을 상속받았거나 주식이나 부동산으로 부를 축적한 것도 아니었고 기자로 월급 받아먹고사는 직장인이자 가장이면서 동시에 기러기 아빠였다.

'기러기 아빠'라는 저자의 상황이 40세에 은퇴를 결심하게 만든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는데 보통 기러기 아빠라고 하면 자녀들의 유학 때문에 떨어져 살게 된 부부를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저자는 미국에서 유학 중인 아내를 뒷바라지하는 기러기였다.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준비하는 아내와 함께 생활하는 첫째 딸은 어린 시절을 미국에서 보낸 탓에 미국 사람이 다 되어 있었고 둘째 딸은 5년 동안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서 엄마 얼굴도 잘 모르는 아이로 자라고 있었다. 처음 시작은 가족이 행복하고 잘 살기 위해 내린 결정이었는데 어느새 가족이 남남처럼 떨어져 사는 신세가 된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뜬금없이 퇴사를 결심하고 한국생활을 정리한 후 아내와 큰딸이 있는 미국으로 떠난다.

 


" 사표를 쓸 때 한 가지 생각만 했다. 

지금 잡고 있는 줄이 아무리 좋아도 다른 줄을 잡기 위해서는 지금 잡고 있는 줄을 놓아야만 한다는 생각."

-p22


"선택은 포기를 전제로 한다. 선택하지 못하는 건 포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알람을 맞출 때 고민한다. 어차피 스누즈 버튼을 몇 번 누를 테니 원래 일어나야 할 시간보다 10분 정도 빨리알람을 맞출지 아니면 그냥 정해진 시간에 맞출지.

이것이야말로 결정 장애 및 욕심의 끝판왕이다. 

제시간에 일어나고도 싶고 잠도 더 자고 싶으니까.

나 같은 사람에게는 스누즈 버튼이 없는 알람이 필요했다. 그리고 스누즈 버튼 없는 알람이 나에겐 사표였다."

-p34~35


사실 퇴사를 결정할 때 저자는 치밀한 계획 끝에 내린 결론이라기보다는 오랜 기자 생활에서의 회의감과 기러기 생활에 지쳐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퇴사를 결심한 것 같다. 아내가 박사 학위를 따고 교수가 되면 굶어죽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과 그래도 한국에서의 이력이 있으니 미국에서도 취직이 되겠지라는 다소 무대뽀 정신(?)으로 무장했으나 실상은 그렇게 녹록지 않았다.

한국에서 한국어로 글 쓰는 일만 했던 기자는 미국에선 생각보다 쓸모가 없었다. 예상과 달리 취직이 잘되지 않았고 한 달에 600달러를 받으며 인턴으로 들어간 농장은 손목터널 증후군으로 결국 1개월 만에 관두게 됐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40대라는 나이와 체력, 그리고 타고난 재능은 농장과는 맞지가 않았다. 이후 뭐라도 해보자는 생각에 카페나 마트에도 입사원서를 내봤지만 40대 동양인을 반기는 곳은 없었고 인테리어 공사를 배우기도 했지만 적성에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창업도 고민해 봤지만 이것저것 생각해보니 걸림돌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고 시키는 일만 하는 직장 생활에 익숙해진 탓에 새로운 일을 하는 게 너무 두려워졌다고 한다.

그래서 저자는 자연스레 은퇴를 생각하게 됐고 은퇴는 필연적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수입을 늘릴 수 없다면 결국 소비를 줄이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부부는 우선 미국의 한적한 시골마을에 조립식 주택이 딸린 땅을 구매했고, 그곳에서 직접 농사를 지어가며 기본적인 식재료들을 공수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리고 소비를 줄이기 위해 8 無 를 실천했는데 8 無란 TV, 스마트폰, 전자레인지, 식기세척기, 빨래건조기, 다리미, 토스터, 전기밥솥이 없는 생활이었다. 현대인에겐 없어선 안될 것 같은 가전제품들이지만 막상 시간이 남아돈다면 굳이 전자레인지도, 식기세척기가 없이 생활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다 시간이 충분하다는 전제하에서 가능한 일이다.

저자의 가족은 이 8가지 외에도 인터넷과 커피, 고기, 영양제, 술을 끊었다고 한다. 물론 외식이나 가끔 특별한 일이 있을 때는 고기를 먹기도 하고 술을 마시기도 하지만 매우 드문 경우다. 이것 모두가 지금은 없으면 안 될 것 같고 끊었을 때 금단현상을 겪기도 하지만 그래도 인간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어떻게든 적응하기 마련이다.

특히 TV나 스마트폰의 경우 예전에는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아이의 말에 건성으로 대답했다면 지금은 천천히 밥을 먹는 아이 옆에서 아이가 재잘거리는 이야기를 모두 들으며 대화를 나누게 됐다고 한다. 오늘은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텃밭에 어떤 식물이 잘 자라고 있는지 등등 여러 가지 사소한 이야기들도 모두 대화거리가 된다. 물론 하다하다 더 이상 할 이야깃거리가 없어져 심심해질 때도 있지만 그럴 땐 견디다 못해 책을 보기도 하니 독서가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놀이가 된다.

물론 저자도 한국에서의 화려한 쇼핑, 근사한 레스토랑에서의 식사, 해외여행이 아쉽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불편하더라도 단순하고 많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삶이 더 좋다고 한다.

돈을 벌어서 사고 싶은 물건을 살 자유, 좋은 집에서 편하게 살 자유, 멋진 곳에 여행 갈 자유.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을 벌어 뭔가를 할 자유에만 몰두하지만 사실 그 모든 것들이 정말로 자신이 원한 것인지, 아니면 모두가 앞만 보고 달려나가는 상황에 자신만 뒤처지는 것 같아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압박감을 느꼈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역설적이게도 뭔가를 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포기해야 하는 게 많다. 열심히 일하는 만큼 가족과는 시간을 적게 보내고, 돈을 많이 버는 만큼 생활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돈을 많이 써야 한다.
하지만 뭔가를 하지 않을 자유를 누릴 때는 내려놓는 만큼 얻는 게 있다.

욕심을 내려놓았을 때 느끼는 충만함이자 넉넉한 마음이다."

-P295

 

 

 

책을 읽기 전에는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40세에 은퇴할 정도로 자금을 모은 것인지가 궁금했는데 책을 다 읽고 나니 예상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난 지금은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무엇을 위해 위해 이토록 열심히 일을 하고 돈을 벌고 있는 것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물질적으로 좀 더 풍족하고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누리며 행복해지고 싶어 돈을 벌기 시작한 것이 결국은 주객이 전도되어 돈을 버는데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 행복이 멀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다.

물론 모두가 저자처럼 극단적인 선택을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지금 내가 직장에 쏟고 있는 이 시간들이 가족에게는 얼마나 할애되고 있는 것인지, 가족을 위해 일하는데 그게 결국은 가족과 멀어지는 상황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두들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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