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곧 쉬게 될거야
비프케 로렌츠 지음, 서유리 옮김 / 고요한숨 / 2019년 9월
평점 :
품절


<너도 곧 쉬게 될 거야>를 쓴 '비프케 로렌츠' 라는 이름은 다소 생소했는데 알고보니 '샤를로테 루카스' 라는 필명과 본명인 '비프케 로렌츠'라는 두 개의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샤를로테 루카스의 이름으로 발표된 작품들이 사랑스러운 로맨스 장르에 초점이 맞춰서 있다면 비프케 로렌츠의 작품들은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에 무게를 두고 있다. 같은 사람이 쓴 작품이라고 볼 수 없게 양 극단에 있는 장르이지만 두 장르 모두 필력이나 스토리의 흡입력, 구성 등 여러 면에서 뛰어난 작품들이다.

특히 스릴러나 미스터리를 선호하는 개인적 성향상 샤를로테 루카스보다는 비프케 로렌츠의 작품이 좀 더 흥미로웠고, 특히 이번 책을 계기로 머릿 속에 확실히 각인될만한 작가로 부상했다.

그만큼 이번 책은 강렬한 도입부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반전의 반전까지 숨쉴 틈 없이 몰아치며 독자들이 책에서 손을 뗄 수 없게 만든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책 표지의 "쉿, 스포일러 절대 금지" 라는 문구가 절대 과장된 게 아니란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이번 책에서는 반전이 중요하기 때문에 아무리 궁금해도 절대 마지막 장을 들춰서는 안된다.

프롤로그는 주인공인 레나가 현재 처한 극단적인 상황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

지금 레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3시간. 3시간이 지나면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딸 '엠마'가 죽을지도 모른다. 엠마를 살리기 위해선 범인이 요구하는대로 할 수 밖에 없다. 범인이 요구하는 것은 단 하나.

 

"자정까지 스스로 목숨을 끊어.

그러지 않으면 네 딸이 죽어."


과연 범인은 레나에게 어떤 원한이 있길래 이런 짓을 저지르고 그녀의 목숨을 원한 것일까.

병원에서 조산사로 근무했던 레나는 같은 병원에 알콜중독 환자로 입원한 다니엘을 우연히 만나게 된다. 레나와 다니엘은 첫 눈에 사랑에 빠지지만 당시 다니엘은 가정이 있는 남자였다. 하지만 다니엘은 곧 불행한 결혼 생활을 청산하고 레나와 결혼을 하게 된다. 결혼 후 몇 년 뒤 어렵게 임신하게 된 레나는 완벽한 가정을 꿈꾸지만 새로 이사할 집을 보러 가던 중 두 사람은 말다툼을 하게 되고 화가난 다니엘은 길에 레나를 내려두고 혼자 차를 타고 떠난다. 레나는 근처 주유소에서 택시를 불러 집으로 돌아와 다니엘을 기다리지만, 결국 돌아온 건 다니엘이 교통사고로 즉사했다는 소식 뿐이었다. 그 후 레나는 홀로 아이를 출산하지만 남편을 잃은 절망감과 극도의 스트레스로 지친 탓에 자신의 아이가 낯설기만 하다. 그러던 어느날 집에서 깜박 낮잠이 든 레나가 눈을 떠보니 어느새 날이 어둑해져 있었고, 아이가 그 사이 울지 않았었다는 사실이 이상해 방에 가보니 아이는 사라져 버렸다. 엠마가 누워 있어야 할 침대엔 잠든 엠마의 사진과 이런 쪽지 하나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말하면 네 딸은 죽어."


그 후 레나는 아이를 데려갔을 만한 의심스러운 인물들을 찾아다니는데 첫 번째 용의자는 다니엘과 전처의 딸 '조시' 였다. 조시는 부모님의 이혼이 모두 레나 때문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다니엘의 장례식장에서 다니엘이 죽은게 모두 레나 때문이라며 밀쳐 넘어뜨려 엠마를 유산하게 할 뻔한 장본인이었다. 설마 16살짜리 소녀가 이런 짓을 저질렀을 거라곤 상상도 되지 않았지만 혹시나하는 마음에 레나는 조시의 기숙사를 찾아간다. 하지만 조시는 이미 학교에서 사라진 이후였고 조시의 방에서 발견한건 레나에 대한 원망이 가득한 일기장 뿐이었다.

두 번째 용의자는 '슈스터 부부'로 조산사였던 레나가 돌봤던 아이의 부부였는데 레나가 아이의 건강상태를 체크하고 돌아간지 얼마되지 않아 아이가 갑자기 돌연사하자 모든 책임을 레나에게 돌리며 원망하고 있었다. 레나가 임신한 것을 알자 '당신도 당신의 아이가 죽어있는 것을 보는 경험을 하기 바란다'는 얘기를 하며 레나를 저주했는데 이들 역시 원래 살던 집에서 깜쪽같이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

의심스러운 용의자들은 하나같이 사라져버렸고 설상가상으로 다니엘의 전처이자 조시의 엄마인 '레베카'가 자택에서 사망한채 발견되고 조시와 관련해서 할 얘기가 있다던 레베카의 현재 남편 '마르틴' 또한 집에서 총을 맞고 사망하게 된다.

주변인들의 연이은 사망과 엠마의 실종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경찰에 신고도 할 수 없는 레나는 과연 아이를 무사히 찾을 수 있을지, 또 엠마를 데려간 범인은 누구이며, 어떤 이유로 이런 짓을 저지른 것인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이런류의 이야기 특성상 주인공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서 범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주변 인물들은 상황도 모른채 본의 아니게 주인공을 방해하다 죽음을 맞곤 하는데 다행히 이 책에서는 주인공을 심각하게 방해하는 인물들은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표지에서도 강조했듯이 "반전"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조력자로 보이는 주변인물들 중 과연 누가 범인인가에 대해 나도 모르게 끊임없이 의심하게 된다. 이런 의심은 주인공 또한 마찬가지기 때문에 필사적인 의지로 주변인들의 도움을 거부한다.

물론 읽다보면 도대체 왜 경찰에게 신고하지 않는지 답답하기도 한데 이번 경우는 아이가 인질로 잡혀있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주인공의 행동이 일정부분 이해가 간다. 그래서 레나가 범인의 놀음에 휘둘리더라도 답답함보다는 동정심이 더 크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야기는 주인공 '레나'의 시점에서 진행되는데 중간중간 범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레나에게 어떤 이유에선지 증오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레나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이 범인에게 어떤 엄청난 잘못을 저질렀고, 그 잘못으로 인해 너도 고통을 받아야만 한다는 메세지를 보여주는데 이런 범인의 이야기를 통해 범인 찾기 뿐만 아니라 레나가 과거에 도대체 어떤 짓을 저질렀던 것일까에 대한 궁금증도 함께 증폭된다.

주인공이 특수요원도, 그렇다고 비상한 머리를 지닌 천재도 아닌 그저 평범한 보통 여성이기 때문에 범인을 찾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용의자들의 행적을 조사하러 다니는 것 외에는 특별히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래서 주인공의 행적이 다소 밋밋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작가는 주인공의 불안한 심리묘사와 의도적으로 주인공과 독자들을 놀래키는 상황 전개로 이 과정을 지루하게 않게, 오히려 긴장감 넘치게 그려내고 있다.

다만 마지막 결말에서도 반전의 반전을 보여줬는데 에필로그에서까지 숨은 반전을 보여주는 것은 작가가 반전에 대해 지나치게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물론 앞선 이야기 속에서도 충분히 범인으로 의심할만한 인물들이었기 때문에 에필로그도 이해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어쨌거나 주인공의 특출난 활약상을 그리고 있지 않은데도 거의 500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을 전혀 지루하지 않게 끌고간 필력과 흡입력에 있어서는 백점 만점에 백점을 줄만한 작품이었다.

"쉿! 스포일러 금지" 를 강조한 데는 다 이유가 있으니 다른 독자들을 위해 되도록 스포일러는 하지 않도록 노력했다. 물론 스포일러를 알아도 그 과정이 충분히 재미있는 작품이지만 역시나 이런 소설은 범인을 몰라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