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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은 탐정도 불안하다 ㅣ 한국추리문학선 8
김재희 지음 / 책과나무 / 2019년 8월
평점 :

<훈민정음 암살사건>, <경성탐정이상>, <이웃이 같은 사람들> 등의 추리소설을 15년 넘게 꾸준히 써오고 있는 김재희 작가의 신작이 출간됐다.
<청년은 탐정도 불안하다>라는 현실을 반영한 듯하면서도 '탐정'이라는 단어가 없었다면 추리소설인지 전혀 몰랐을 것 같은 특이한 제목의 이 책은 '고한'이라는 지역에서 벌어진 미제사건을 두고 왕년에 날렸던 프로파일러 '감건호'와 '왓슨추리연맹'이라는 추리카페의 운영진들이 벌이는 추리 대결을 그리고 있다.
책은 자신의 집에서 다량의 피를 흘리고 깜쪽같이 사라진 한 여성의 실종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자극적이고 잔인한 묘사나 트릭 풀이에 초점을 두고 있지는 않다. 굳이 따지자면 본격 추리 혹은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라기보다는 코지 미스터리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제목에서부터도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하듯이 불안한 미래와 안정적이지 않은 직업에 고민하는 젊은 청년들의 심리나 이미 나이를 먹을만큼 먹었음에도 어른이 되지 못하고 대중들의 관심과 인정에 목말라하는 관종(?) 프로파일러의 모습을 통해 웃픈 현실과 인간적인 캐릭터들을 그려내는데 집중하고 있다.
사건과 관계된 인물들은 크게 3개의 그룹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한 그룹은 이제는 한물간 프로파일러 '감건호'와 <감건호의 미제 추적>이라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박피디'이고, 또 다른 그룹은 추리카페의 운영진이자 대학원에서 해부학을 전공하고 있는 '주승'과 '진영', 자칭 사립탐정이지만 의뢰가 없어 가락 농수산물시장에서 아버지와 함께 일하고 있는 '민수', 대학병원 중환자실 간호사로 근무하는 '선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실종사건의 당사자인 김미준의 어머니로부터 수사 의뢰를 받은 사립탐정 '정탐정'과 '공팀장'이다. 정탐정은 탐정이 너무 하고 싶어서 '순호'라는 원래 이름에서 '탐정'이라는 이름으로 개명까지 한, 그야말로 탐정이라는 직업에 올인한 독특한 사람이다.
이야기는 이 3개의 그룹이 각기 나름대로의 사정으로 인해 이 실종사건에 뛰어들고 또 나름의 방법으로 사건을 수사해 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들은 처음에는 프로그램의 화제성과 시청률을 위해, 혹은 용돈벌이나 기분전환 정도로 생각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이 일에 참여했지만 사건을 수사해 나가며 점점 피해자와 그 가족들을 위해 진심으로 사력을 다하게 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각자 개인들이 지닌 인간적인 고민과 약점, 두려움들을 드러내며 서로 치유받고 위로하는 과정을 겪는다.
앞서 말했다시피 소설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들은 열등감이나 불안, 두려움 등 각자 나름의 현실적인 문제들을 안고 있다. 감건호는 한 때 꽃미남으로 불리며 아줌마 팬들을 몰고 다녔던 유명 프로파일러지만 이제는 수사보다 아이돌처럼 슬림한 몸매와 외모 가꾸기에만 신경쓰는 속물이 되버린지 오래였고, 민수는 사립탐정을 꿈꾸지만 녹록치 않은 현실의 벽에 부딪혀 아버지와 함께 농수산물 시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청년탐정'을 운영하는 공팀장은 부모님의 반대를 무릎쓰고 탐정 자격증을 취득한 후 사무실에서 숙식을 하며 사건 의뢰를 기다리지만 의뢰 건수가 적어 외주일까지 닥치는대로 하고 있다. 또 중환자실 간호사로 근무하는 선미는 새로온 상사와의 마찰과 과도한 업무에 시달려 자신의 직업에 회의를 갖게 된다. 약간의 스포이긴하지만 실종사건의 당사자인 김미준이나 가해자 또한 현실과 이상의 괴리로 방황하다 잘못된 선택을 하며 안타까운 결말을 맞는다.
이야기 자체는 무겁지 않고 등장 인물들도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유형으로 그들이 안고 있는 문제와 고민들 또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어서 소설에 빠져드는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이야기 속에서 인물들이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과정들도 작가가 현직 탐정들과 형사들로부터 취재를 통해 나온 결과물이라 그런지 천재적인 몇몇 인물에 의지하는 추리소설보다는 현실적이면서도 발로 뛰는 현장감이 느껴진다는 점이 좋았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서로 다른 성격을 지닌 인물들 간의 갈등이 쉽게 해결되고 개인적인 고민과 불안들이 너무나 쉽게 긍정적으로 바뀐다는 점이었다. 특히 주인공인 감건호의 경우 그 전까지의 독불장군같고 제멋대로인 성격과는 다르게 다른 이의 조언을 너무나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받아들이며 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해 그동안 쌓아왔던 인물의 설정과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다.물론 감건호라는 인물이 좀 팔랑귀이다보니 다른 사람의 조언에 쉽게 동조하는 게 오히려 일관성이 있다고 하면 그럴수도 있긴 하지만.
어쨌거나 마지막에 가서는 각자 나름의 방법으로 조사한 끝에 같은 결론에 다다르게 되고 결국은 미제사건을 해결라게 된다. 그리고 이 사건을 통해 등장인물들은 불안하긴 하지만 앞으로 나아갈 희망을 얻으며 해피엔딩을 맞는다. 이런 점에서는 미제 사건 해결이라는 추리소설의 형식을 빌렸지만 실상은 개개인의 성장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본격 미스터리, 추리소설을 선호하는 독자들보다는 정겨운 사람냄새 나는 이야기, 어딘가 모자란 듯 하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의 따뜻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추천할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