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나의 집 모중석 스릴러 클럽 46
정 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9년 6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안전한 나의 집이라는 제목과 표지의 굳게닫힌 무거운 현관문의 표지를 보고 있자니 굳이 읽지 않아도 전혀 안전하지 않은 집의 이야기를 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나 줄거리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해야할 집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불행했던 한 가족의 이야기였다.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 2세대인 주인공 "경"은 성공적으로 미국에 안착한 한국인 교수 부부의 외아들로 미국에서 자라 미국인 아내와 결혼해 아이를 낳고 살고 있다. 경도 아버지와 같이 역시 교수로 재직중이고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학군 좋은 지역의 큰 집에 살고 있지만 실상은 그리 녹록치 않다.

부부는 부동산 경기가 한창인 무렵 예산을 훨씬 초과한 비싼 집을 구매했고 그 후에 집을 담보로 또 한번 대출을 받았다. 하지만 불황으로 집값이 폭락해버리자 집을 팔아도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할 처지에 놓이게되고 결국은 이자와 원금 일부라도 갚기 위해선 집을 내놓아야할 지경에 이르게 된 다. 부동산 중개인이 부부의 집을 보기 위해 방문한 그날, 경은 두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할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거실 창문으로 전라의 벌거벗은 여자가 경의 집 뒷 마당을 달려오는 모습이 보이는데 그 여자는 다름 아니라 경의 어머니 "매"였다. 도대체 그날 매에겐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이야기는 경의 어려운 경제상황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물론 현재는 경제적으로 어렵지만 나름 안정적인 직장에 현실적이고 다정한 아내 질리안과 귀여운 외아들과 함게 미국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하지만 경에게는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상처가 있었으니 그것은 아주 어린시절 지속적으로 행해졌던 부모님의 폭행이었다. 명망높은 대학교수인 아버지 "진" 은 밖에서 절제하고 억압했던 분노를 집에 와서 자신의 아내에게 폭력으로 풀어냈고, 어머니 "매"는 그 화살을 다시 어린 경에게 돌렸다. 그렇게 남들이 보기에는 아주 성공한 한인가족처럼 보였던 그들이 사실은 낯선 이국 땅에서 겪은 차별과 갈등을 원만히 풀어내지 못하고 서로를 파괴하고 갉아먹으며 살아왔던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어색한 관계로 꼭 필요할 때 외에는 서로 접촉을 피해왔지만 부모님의 급작스런 사고로 경과 경의 부모님이 한집에서 함께 살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한 집에서 매일 얼굴을 마주하게 되자 그 동안 외면해왔던 경의 상처는 결국 곪아 터지게 된다.

경의 가족과 질리언의 가족이 별장에 다함께 모이게 된 저녁, 여전히 너그럽고 고상한 교수 부부의 역할에 충실한 부모들의 모습을 보자 경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동안 쌓아뒀던 울분을 토해낸다. 경은 부모의 가식적인 모습과 지난날의 과오를 모든 사람들 앞에서 까발리면서 부모로부터 사과 받고싶어 하지만 그 결과는 경의 의도와는 달리 뜻밖의 비참의 말로를 가져오게 된다.

상황이 극단적으로 치닫고 말았지만 사실 그의 부모들도 낯선 땅에 온 이민자로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쳤던 나약한 사람들일 뿐이었다. 사랑의 감정도 없이 정략결혼으로 맺어진 부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로 치욕과 조롱을 받아야만 했던 환경. 그 속에서 진은 어떻게 분노를 해소해야할지 몰랐고, 타지에서 의지할데 없이 자신의 분노를 받아줄 수 밖에 없는 나약한 사람을 향해 모든 화를 쏟아냈다.

물론 가정 폭력이 정당화될 순 없지만 경의 부모님이 사이코패스이거나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던 사람들도 아니었고 하나밖에 없는 자식인 경을 사랑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날을 세우다 보니 서로를 돌볼 여력이 없었고, 어느 정도 여력이 생기고 다시 잘해보고자 마음을 다잡았을 때는 그들 사이의 틈이 너무 벌어져버린 후였다.

누군가가가 그런말을 했었다. 부모도 부모가 처음이라고. 너무나 미숙하고 어리석었던 부모가 자식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주고, 그 자식이 다시 성장해 부모가 되자 제대로 부모가 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자식은 자신의 상처를 되물림한다.

소설에서는 부부의 집에 침입한 강도들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하나 악인은 없다. 다만 처한 상황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 뿐이다.

사실 이야기는 초반에 부부의 집에 침입한 강도 사건을 제외하고는 이렇다할만한 큰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몇 십년에 걸쳐 켜켜이 쌓여온 상처들을 가슴에 품고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우고 있는 경과 그의 가족들의 미묘하고 날선 분위기가 시종일관 이어진다.

미국에서의 성공적이고 안정적인 삶을 꿈꿨지만 결국엔 끝까지 이민자일 수밖에 없었던 한국인 가족의 안전하지 않았던 집에 대한 이야기의 결말은 너무 늦긴 했지만 그래도 한 가닥의 희망을 발견하며 끝을 맺는다.

 

"미안하다." 나지막이 들려온 그 말에 경이 깜짝 놀라며 아버지를 돌아봤다.

"미안하다." 그가 다시 말했다. 그는 끝내 무엇이 미안한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하지만 경은 아버지의 표정만으로 그걸 알 수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그들이 잊지 못한 자신의 모든 과오에 대해 연신 사과했다.

미안하다,미안하다....

 

스릴과 미스터리가 넘치는 이야기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 재미한인 작가가 그려내는 한인 가정의 불화와 가정폭력으로 인해 고통받는 가족의 미묘하고 예민한 감정에 몰입하다보면 책장이 절로 넘어가게 된다. 그리고 굳이 타지에서 살아가는 이민자가 아니더라도 빡빡하고 힘든 현재를 살아가는 한국인으로써 진정한 가족이 무엇인지 그 의미를 되새겨보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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